22. 06. 21
해는 무엇을 위해 떠오르나요. 그것은 몰락을 위함이 아니었던가요. 열매는 무엇을 위해 영그나요. 그것은 추락, 부패를 위함이 아니었던가요. 별의 반짝임은 뻥 뚫린 어둠의 전령, 봄의 만개는 작열하는 여름의 태양에 바쳐질 재물, 왕좌에 오름은 몰락의 동의어. 그러니 무엇으로 인간의 생만이 다르다고 할까요? 변론하고자 한다면 이 순간에도 죽어가고 있는 당신의 입술을 보세요. 죽음이란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으며. 어쩌면 오늘, 또는 내일에도 있는 것.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 삶이라면 의미는 무의미에 껍질이라 해도 이상하지는 않겠지요.
진리를 믿는 그대여, 저 사막을 보세요. 현자와 은둔자들이 진리를 찾아 투신한 저 땅을. 그들의 열정은 부서져 모래가 됐으며, 고뇌는 어지러이 아지랑이로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부당하게도 당신이 사막에 이끌리는 건, 부조리, 그것만이 확고부동한 진리이기 때문.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 확신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믿음. 그렇게밖에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라는 부조리. 인간은 선을 바라면서도 악을 추앙하고, 살기를 바라면서도 죽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대가 살기를 소망한다면 저는 그것에 따르겠어요. 당신이 위험한 강을 건널 때는 온몸 구부려 다리가 되고, 광야를 헤맬 때는 이 한 몸 불살라 길잡이 별이 되겠습니다. 이 정도면 당신의 가는 길이 외롭지는 않겠군요. 자아, 이리 와서 저와 함께 합시다. 우리 들 수 있는 게 부조리의 독배뿐이라면 그라도 한껏 마시고 취합시다. 오장육부 타오르는 고통에 몸부림으로 광기의 미학을 이룹시다. 어차피 썩어 없어질 몸이라면 열정의 용광로 속으로 몸을 집어던집시다. 흙 아래서 냄새나게 썩느니 한 줌 재가 되는 게 멋지게 날릴 테니. 그리하면 저는 당신을 이렇게 기억하겠습니다. 인간이라는 먹구름을 뚫고 나온 번개 한 줄기가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