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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한 나라의 주민A Jun 09. 2022

신에 관한 단편

22. 06. 09

  십자가를 등에 진 자여, 성역을 향해 절하는 자여, 연꽃으로 피어 명상하는 자여, 믿지 않는 자여. 밤이 꿈꾸는 낮에, 낮이 꿈꾸는 밤에 우리 신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세. 그대가 신을 무엇이라 부르던 혹은 부르지 않던 우리 모두는 삶의 아들과 딸들. 설령 갈라섬이 있을지라도 우리 형제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네. 그러니 형제여 한자리에 모여 먹고 마시자. 신의 피로 입술을 적시고, 축복받은 고기로 배를 채우자. 취기가 오르고, 배가 불러오는 건 매한가지일 테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신은 유일하다는 그대의 말에 나는 들에 핀 꽃 한 송이를 가리키겠네. 형제여 고개를 숙여 무엇이 너를 피어나게 했는가 들꽃에게 물어보게. 들꽃은 답하겠지. 나를 이곳으로 이끈 바람만이 나의 인도자이시다. 그러면 그 옆의 꽃이 말할 걸세. 내가 부모라 부를 자는 나를 품은 대지 어머니뿐. 또는 나를 살핀 햇님만이, 갈증을 채워준 빗방울만이 나의 신이라 말할지도 모르지. 이제는 그대에게 묻겠네. 저들 중 무엇만이 유일한 신이라 할 것이며, 무엇이 신의 것이 아니라 할 것인가? 그대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신은 유일하면서도 동시에 모든 것이라는 걸.     


  진리는 명확하다는 그대의 말에 나는 흐르는 냇물을 가리키며 말하겠네. 형제여 진정 진리가 명징하다면 내게 진정한 냇물의 모습을 보여주시게. 그대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가 냇물이라 답한다면 나는 재차 물을 것이네. 설령 그대의 말이 옳다 해도 시시각각 변하는 물을 어찌하여 같은 냇물이라 부른다는 것인가? 곤란해하는 그대가 한 움큼 물을 떠 와 이것이 냇물의 모습이라 한다면 나는 재차 물을 것이네. 흐르지 않는 걸 어떻게 냇물이라 할 수 있겠는가, 자네는 진리의 파편을 진리라 부른단 말인가? 그대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진리란 하나 되어 노래하는 것이며,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것이라는 걸.      


  그러니 형제여 우리가 다툴 이유가 무엇이며, 나누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대의 기도를 무엇으로 헛되다 할 것이며, 나의 신앙을 무엇으로 부정한단 말인가? 그대와 나의 말이 다르다 한들 아버지라 부르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형제여 우리 힘써 사랑하자. 협력하여 선을 이루자. 그리하면 볼 것이니. 그대는 나의, 나는 그대의 얼굴에서, 신의 형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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