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한 나라의 주민A Jun 04. 2022

영원의 증명Ⅰ

2022. 06. 04

  영원에 대해 이야기하면 당신은 웃어버리겠지요. 당신은 묻어둔 상처의 묘비를 보며 이렇게 말할 거예요. 내가 가장 예쁠 때 나 또한 영원을 믿은 적이 있었지, 바보같이. 새끼손가락 감은 약속이 영원하기를 기도한 적 있었지, 순진하게도. 그러나 영원이란 실은 충동에 불과한 것. 사랑이 가장 뜨겁게 빛나던 순간의 찰나를 포착한 사진에 불과한 것. 언젠가는 빛바래 버릴. 영원은 입김으로 그린 그림과도 같은 것. 내게 모든 걸 주었지만 동시에 모든 걸 앗아간 원수와도 같은 것.     

 

  그러면 저는 당신의 낡은 앨범 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며 말할게요. 영원이란 지금 내 손에 들린 것. 영원이란 떠나가고도 이렇게 머무는 것, 영원히. 진정 영원이 죽어버린 것이라면 당신이 그때를 꿈꿀 일도 없는 것, 생생히. 영원이란 지나간 장마와도 같은 것. 온 세상을 덮을 것처럼 퍼붓다가도 번개처럼 물러가는 것. 영원은 떠나고도 남아 있다. 당신 기억의 골짜기에, 샘물처럼, 폭포처럼. 눈물이란 그 샘에서 솟아난 가장 뜨거운 한 방울. 떠나간 임에게 올릴 영원의 술, 당신과 임이 함께 빚어낸.     


  영원에 대해 이야기하면 당신은 회색 연기 후욱 뱉겠지요. 당신은 타고 남은 잿더미 가슴을 보이며 이렇게 말할 거예요. 인생이란 영영 사라지는 계절과도 같은 것, 당연하게도. 청춘은 봄의 꽃과 함께 지고, 정력은 여름의 태양과 함께 불살라지며, 황금빛 보리밭은 덧없는 이상향. 그 뒤에는 고독한 겨울만이 기다리고 있다. 영원한 건 죽음뿐. 그럼에도 영원을 믿고 싶은 건 발버둥일 뿐 진실한 믿음이 아니라고.     


  그러면 저는 흩어진 당신의 낱알을 주우며 말할게요. 재에서 날아오르는 불사조처럼 죽음은 부활의 징조. 죽음은 다시 태어남의 통과의례. 이 낱알은 밭에 뿌려진 당신, 재의 양분을 먹고 다가올 해를 기다린다. 그리하여 가을 뒤 겨울이 아닌, 겨울 뒤 봄에 새싹을 틔우는 것. 격정의 여름을 나고 가을에 장성한 벼들은 떠올리게 되리라. 그대가 지난 가을 스러지던 모습을. 그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마찬가지로 수많은 그대들을 떠올리게 되리라. 계절에 꼬리는 없고, 봄은 영원히 오며, 겨울은 영원히 가버리는 것. 그대가 부정하는 순간에 조차도 봄은 오고 있다고.

이전 12화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