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운전시절 갑자기 개가 나타나서 피하지 못하고 갑자기 멈춰 서는 접촉사고가 났다. 원래도 개를 좋아하지 않는데 그날부터 개가 더 싫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저 개가 싫다는 감정보다 무섭고 두렵다는 감정이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두려운 만큼 꿈에서도 개가 나타나면 아침부터 기분이 별로였다.
개는 나의 태몽에도 한몫을 했다. 절마당에 여의주가 떨어진 것을 개가 가져가려고 하는 순간, 엄마가 냉큼 가졌다고 했다. 그렇게 내가 태어났다. 태몽에서 조차도 개라는 존재는 나를 방해하는 방해꾼이었나라는 엉뚱한 생각을 들게 할 만큼 개는 내게 불편한 감정의 동물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교를 가는 길목에 큰 개를 묶어놓은 집이 있었는데 그곳을 지나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벽에 최대한 딱 붙어서 개의 눈치를 살피며 신경전을 하면서 지나갔다. 다른 골목으로 돌아서 가려고 해도 또 다른 개가 갑자기 나타나면 정말 난감해하며 지나가는 다른 사람 곁에 묻어서 가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동네에 개를 묶어놓고 키우기보단 풀어놓고 키우는 집들이 많았다. 지금 드는 생각은 개는 겁에 질린 나를 보면서 '나는 헤칠 생각도 없는데 저 꼬마는 혼자 왜 그러니?' 하면서 억울해했을 수도 있겠지만 워낙 겁이 많은 내게 그만큼 개는 마주 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운 존재였다. 멍멍 짖으면서 달려들 것 같고 그랬다.
요즘은 보면 반려견을 나 빼고는 다 키울 만큼 집집마다 정말 많이 함께 한다. 언제부턴가 유모차에도 아기가 아닌 강아지가 앉아있는 모습은 이제 낯선 모습도 아닐 만큼 반려견은 우리 일상에 너무 친밀한 존재가 되었다. 아들도 어려서부터 키우고 싶어 했지만 하루종일 아무도 집에 없는데 혼자만 있는 것은 가혹한 일이라며 설득하여 체념을 시켰다. 내가 만질 수도 없으니 감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엄두도 못 낼 일이니 빠른 단념을 시키는 게 옳았다. 반려견을 키울 마음 자체가 없었다. 그렇게 전혀 생각지도 않다가 훌쩍 커버린 고2인 아들이 다시금 반려견을 키우자고 이야기했다. 이런저런 생각과 고민 끝에 내게 꿈에서 조차도 상상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반려견과 함께 살게 됐다. 실버푸들이라 '후추'라는 이름을 지었고 그렇게 우리 집의 가족구성원으로 토이푸들을 입양했다.
그 속사정은 이렇다.
외로워서 여자친구를 사귄다는 말을 듣고 나니 그 말이 목에 가시처럼 마음에 걸렸다. 형제 없이 혼자 자라는 것이 때로는 염려스러웠는데 아이의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비집고 들어왔다. 어려서부터 출근이 빠른 엄마 탓에 늘 아침시간이 혼자였던 것이 언제나 미안했던 터라 자식을 위하여 마음먹고 용기를 냈다. 정말 털 하나도 못 만지는 내가 반려견과 함께 가족으로 살아가는 것을 잘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며 고민했지만 부딪혀 보기로 큰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 녀석이 들어온 날은 정말 내게 있어서 역사적인 날이다.
'내가 반려견을 키우다니'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모두 놀랐다. 처음에 몇 주간은 불리불안을 없앤다고 울타리를 쳐서 함께 생활했는데 그때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곧 울타리를 제거하는 날이 다가왔고 울타리를 제거하는 날 나는 어쩔 줄 몰라하면서 소파 위로 올라가 뛰어 올라갔다. 후추는 그저 반가움으로 내게 다가오는데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은 후추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한 동안은 후추를 피해 다녔다. 그렇게 새 가족이 되기까지 낯설고 어색한 시간들이었다. 점점 익숙해졌고 새 가족이 된 후추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절대'라는 말은 없구나.
우리는 간혹 "절대 그거 안 먹어" "절대 그럴 리가 없어" "절대 안 돼."라고 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단호하고 확실하게 말하고자 할 때 "절대"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런데 '절대'라는 말은 쉽게 쓸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살아가면서 "절대"라는 의미는 항상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집에 후추가 온 날 온전히 깨닫게 되었다.
후추는 집안에서 내가 어디를 가도 졸졸 따라다닌다. 그렇게 나를 따라다니는 후추를 볼 때마다 생각할수록 스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전의 내가 맞나 싶다. 반려견을 키우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절대적인 것은 없다. 우리 집에 또 다른 생명체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 한동안은 너무나 낯설겠지만, 우리는 세 식구에서 이제 네 식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