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se Jul 03. 2024

[단상]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했던 말을 짧은 시간에 반복해서 얘기하는 건 어느 정도의 증상인가요?"

"경도인지장애의 흔한 증상입니다. 섬망이 올 수 있고, 루이체 치매는...."


엄마를 옆에 두고 의사에게 조심스레 질문을 던진다. 엄마 앞에선 그동안 치매라는 단어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었는데. 의사가 연신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니 나도 모르게 포기가 됐나 보다. "이 약은 하루 한 알, 이 약은 아침저녁으로" 복용법 설명을 끝내자 주문했던 뽀얀 설렁탕이 나온다. "그만 그만" 설렁탕이 싱겁다며 소금을 뿌리는 엄마를 말린다. 요즘 점심 식사만 제대로 챙겨 먹는다는데 그냥 한 끼 맛있게 드시게 놔둘걸 그랬다. 지하철 역으로 향하는 엄마의 뒷모습, 한참을 바라본다.


"창환이 잃고 나서 저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가 뭔 줄 아세요. 그때까지 중요하게 생각해 온 것이 하나도 안 중요해지고 하나도 안 중요하게 여겨온 것이 중요해진 거에요"  박완서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中>


딴에는 큰일이라고 법석을 떨었던 그동안의 몇 가지 일이 그저 부끄럽기만 하다. 차분히 돌아보지 않으면 모르고 산다. 무엇이 중요한지 아닌지, 타인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남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큰 교만일 수 있는지. 책을 읽고 이렇게 몸이 들썩이도록 울어본 적이 있던가.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아들을 잃은 소설 속 씩씩한 창환 엄마가 기어이 참았던 눈물을 터뜨릴 때 나도 그만 함께 터지고 말았다. 어제 엄마의 모습이 소설을 읽는 내내 맴돌아서 더 그랬나 보다.

작가의 이전글 [촬영] 모두의 항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