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Still Alice> 리뷰
몇 해 전 훌쩍 떠난 여행지 강릉에서 만났던 영화 '스틸 앨리스'
흥미진진함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잔잔하고 담담해서 더 기억에 남는 영화였어요.
언어학 교수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로 살아가던 앨리스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게 되고,
점점 기억이 사라지는 두려움 속에서도 그럼에도 여전히
앨리스로,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부단히 애쓰는 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앨리스는 강의 도중에 아주 쉬운 단어들이 기억나지 않고,
익숙한 길로 조깅을 하던 중에 갑자기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자신의 음식 레시피가 기억나지 않아 구글링을 하게 되는 등의 이상 징후들이 생겨납니다.
병원을 찾은 앨리스에게는 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굉장히 현명하고 능력 있는 언어학 교수로 인정받았던 그녀가 기억과 언어를 점점 잃어갑니다.
지금까지 그녀가 쌓아온 경력과 기억이 서서히 사라져 가기 시작합니다.
결국 그녀는 대학 강단에 서는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픈 그녀를 돌보아주고 지켜주는 힘은 바로 가족이었습니다.
앨리스의 바람대로 대학에 진학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연기를 하겠다는 막내딸 리디아는
앨리스와 멀리 떨어져 살면서도 엄마의 입장이 되어보려고 노력하고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남편이 회사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면서 큰 딸, 아들과 함께 앨리스를 요양원으로 보내기로 합의하지만
리디아는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의 곁을 지켜냅니다.
괴로워하는 그녀의 곁에서 함께 하는 남편 존은,
내 일처럼 걱정하고 그녀와 같이 운동하며 옛날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녀의 기억이
조금이라도 감퇴되지 않기를 애쓰는 모습입니다.
기억을 잃고, 자신의 존재가 누구인지조차 찾을 수 없는 앨리스에게 잃어가는 것들을
채워주는 빈자리는 바로 가족의 사랑임을 저는 이 영화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앨리스는 알츠하이머 모임에서 연설할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언어학자로서 기억의 축적으로 소통하기 위해서 애써왔던 한 존재로서,
의지와 노력 지성을 가지고 성실히 살아낸 그녀는 지금 여기를 살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매일 상실의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지옥 같은 고통입니다.
우리의 모습에서 멀어지는 우리는 무능하고 우스워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병일 뿐입니다.
저는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
예전의 나로 남아있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순간을 사는 것,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지 않는 상실의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영화는 너무나 잔잔해서, 빠르고 인상 깊지는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미세한 파도 물결이 이는 듯한 잔잔함은 오히려 깊은 울림으로 남아있습니다.
질병으로 인해서 자신에게 매일같이 일어나는 변화들을 받아들이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기 위해서 치열하게 질병과 싸워내는 앨리스의 모습은
저 또한 대단한 일상, 엄청난 변화, 서프라이즈 하지 않은 오늘 하루도
그렇게 담담하게 살아내야 하는 것임을 잊지 않게 해 주었습니다.
극 후반부 기억을 완전히 잃어가면서 앨리스가 나지막이 내뱉은 한 마디
바로, "Love"였어요.
영화는 앨리스가 기적처럼 회복되는 해피엔딩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기억을 잃더라도 가장 소중한 가족들과 함께 하는 따뜻함을 보여줍니다.
고통스러웠을 그녀의 여정을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했던 힘,
그건 바로 가족의 사랑이 아니었을까요?
여행지에서 만났던 영화, <Still Alice>의 엽서를 저는 책상 한편에 꽂아두었습니다.
앨리스로 존재하기 위해서 애쓰고 분투하던 그녀를 잊지 않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녀를 지켜주었던 가장 든든한 힘인 가족의 사랑 또한 기억하고 싶었어요.
당신을 가장 당신답게 지켜주는 힘 그리고, 사랑은 어디에 있나요?
지금 그 자리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으로 존재하고 사랑하고 살아내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