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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eer Editor Aug 05. 2018

당신의 마음에도 길이 있다면

영화 <더 테이블>리뷰 

만약 우리들의 마음에도 길이 있다면요. 어느 길로 가야 할지, 혹은 누구와 함께 이 길을 걷고 싶은지, 어떤 풍경들을 오래도록 담아두고 싶은지, 어떤 길의 끝에 닿고 싶은지 당신은 알고 있나요?  마음이 지나가는 곳, 카페에서 하나의 테이블을 두고 하루 동안 오고 가는 만남들을 다룬 영화 <더 테이블> 리뷰입니다.       

   

저는 작업거리를 들고 카페로 자주 향하는 편이에요. 카페라는 공간은 제게는 주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일을 하는 공간이지만, 대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곳이지요. 영화는 카페의 테이블 위에서 오고 가는 이야기, 사람을 담고 있습니다. 배우들의 클로즈업을 담은 장면, 카페의 아기자기한 사물, 풍경을 담은 장면들은 영화의 묘미입니다. 아주 작은 카페에 앉아서 옆 테이블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기울여서 듣게 되는 흐름으로 영화가 이어지지요.     


#1. 오전 열한 시, 유진과 창석     

영화의 시작은, 오전 11시 옛 연인과의 재회를 하는 유진과 창석의 만남입니다. 창석은 유진에게 많이 변했다고 이야기하고, 유진은 별로 변한 게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유진은 옛 남자 친구와의 만남을 기대했을 텐데, 창석은 증권가 찌라시에서 오가는 연예인 스캔들과 성형 의혹 등의 가십성 질문들을 쏟아냅니다. 심지어는 회사 동료들에게 확인시켜주기 위해서 카페 밖 건너편에서 구경까지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인상을 찌푸릴 법도 한데 같이 사진을 찍으면서도 미소를 짓고 있는 유진의 웃음은 씁쓸해 보입니다.     

옛 연인과의 만남, 한편은 설렘이 있었고 한편엔 배려와 눈치가 없는 질문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또한 예전에 자신이 연예인을 만났더라는 것에 대한 자랑을 하고 싶어하는 마음까지요. 에스프레소와 맥주처럼 쓰고도 거품이 빠져 버린 것 같은 허무한 만남이었어요.     



#2. 오후 두 시 반, 경진과 민호

     

개인적으로는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만남이었는데요. 하룻밤의 사랑 이후에 긴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온 민호를 마주하는 경진은 민호의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합니다. 서로 말을 높이며, 한편으로는 어색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경진은 뭔가 섭섭한 듯한 얼굴이지만, 민호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에 앞으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한 계획까지 늘어놓습니다. 경진은 해외여행을 길게 다녀온 민호가 이해가 가지 않고, 못마땅해 보입니다. 예민하게 날이 선 듯한 경진의 표정이, 민호의 가방 속에서 생각날 때마다 샀다는 선물꾸러미에 활짝 펴지고야 말았습니다. 서로의 상황에 대해서 전부 다 알지 못했고, 완전히 오해가 풀린 건 아니겠지만 이렇게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인연을 이어갈 모양입니다. 두 사람의 테이블에 올려 있던 달콤한 초콜릿 무스케이크처럼요. 그리고 민호의 대사처럼요.     

"우리 이제 알아갈래요?"           

              

#3. 오후 다섯 시, 은희와 숙자     

은희와 숙자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결혼사기를 통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입니다. 은희의 결혼식에서 가짜 모녀 역할을 위해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요구와 알아야 할 사항들에 대해서 일적인 이야기만을 나누게 되지요. 가짜 엄마와 가짜 딸 역할을 위해서 만난 두 사람에게서 인상 깊었던 것은 모든 게 가짜인 사이에서 진심을 발견하는 대목이었어요. 오후 다섯 시 창가 사이로 비치는 햇살, 따뜻한 라떼 두 잔, 더 이상 알리지 않아도 되는 서로의 이야기들까지.  두 사람의 만남은 라떼처럼 닮은 모습을 띠고 있었어요.     

"좋아서 하는 거예요, 진짜 좋아서."     

원래 작업을 의도한 남자와는 다른 남자를 진짜로 좋아하게 되어버린 은희와 그녀를 바라보며 마음이 움직여서 자신의 진짜 딸 결혼식에 입고 가려던 옷을 준비하겠다는 숙자. 둘은 가짜 모녀를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만큼은 진짜 모녀처럼 서로를 위하는 마음과 관계들로 보였어요. 진심은 어떤 상황에서든, 아니 누구에게든 통할 수밖에 없는 거구나. 그래서 그게 진짜 마음인 거구나 싶었어요.          


#4. 늦은 저녁 아홉 시,  혜경과 운철     

둘은 헤어진, 그리고 혜경의 결혼으로 완전한 이별을 앞두고 있는 연인입니다. 혜경은 운철과 완전히 다른 길에 서 있는 것을 아직 인정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또는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왜 사람 가는 길이랑

마음 가는 길이 달라지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가볍게 툭툭 던지는 한 마디 속에 혜경은 진심을 담았습니다. 

자신이 결혼할 때까지만이라도 자신과 만나자는 말은 어쨌든 진심이니까요. 

운철은 선택을 했다며, 혜경에게도 선택을 하라며 말합니다.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어느 것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을 좋은 선택으로 만드는 방법은 오직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선택 후의 결과에 대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온전히 책임지고 살아낼 수 있는지 말이예요.

이내 둘은 헤어지고, 두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식은 커피와 홍차만이 남아있습니다. 

혜경과 운철은 같은 방향으로 함께 걸어가는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둘은 커피와 홍차처럼 서로 섞일 수 없었고, 이후에도 헤어진 인연으로 그렇게만 남겠지요.    

 

하루 동안 카페를 찾았던 여덟 명의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또한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던 관객들과 함께 나누었겠지요. 

영화 속 테이블 위에서 마주한 인연은 뒤돌아서기도 하고, 새롭게 시작되기도 했어요.


마치 우리네 삶 속의 인연처럼요. 

네 가지 이야기 속에서 제가 찾은 공통점은 바로 '마음'이었습니다.


서로에게 닿지 않기 위해서 빙빙 돌려 말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또 그 마음을 끝내 모른 체 하려고도 하고, 

가짜 속에서 진짜 마음을 발견하며, 결국엔 서로의 마음을 알아볼 수밖에 없었어요. 


영화는 끝났고 이제 테이블 위에 남은 건, 우리의 마음인 것 같아요.

카페에서 누군가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면 당신은 어떤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요? 

만약에 당신의 마음에도 길이 있다면, 지금 그 마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나요?     


* 덧붙이는 글 : 리뷰를 정리하면서 느낀 건데요. 한 명 한 명 여자 주인공들이 모두가 너무 예쁘지만, 이 모습이 영화 속에서 더욱 빛나보이는 건 사랑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옛사랑을 마주한 유진, 막 사랑을 시작하려는 경진, 위장결혼이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은희,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랑 앞에 서 있는 혜경까지. 영화를, 일상을, 우리가 서 있는 풍경과 자리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건 사람. 그리고 사랑의 힘이 아닐까요. 우리가 보다 순수하고 진실하고 용감해지는 건, 바로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 있을 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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