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Begin Again>리뷰
요즘 저는 시작, 출발, 열정, 희망, 용기 이런 것들에 관심이 많아요. 자꾸만 꺼내어보게 되는 저도 모르게 손이 가는 것들은 그런 것들이에요. 시작하는 건 잘 하지만, 그걸 이어나가고 끝까지 마무리하는 건 제게 가장 어려운 일이어서 늘상 고민이지요.
그래서 자꾸만 시작할 때의 첫 마음, 설렘, 떨림, 두근거림, 기쁨, 이런 감정들을 떠올려보고 싶은가 봐요. 그때의 마음들을 기억하고 싶은가 봐요. 그때의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보고 싶은가 봐요.
단지 그런 마음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꺼내보게 되었던 영화 <Begin Again>의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주인공 댄은 유능한 음반 프로듀서였지만 하루아침에 해고되고, 그레타는 남자 친구 데이브를 따라 뉴욕에 왔다가 이별하게 되어 갈 곳이 없어졌습니다.
어느 밤 우연히 펍에서 댄은 그레타의 노래를 듣게 되고, 그레타에게 음반 제작을 제안합니다. 데모를 만들 비용도 없고, 녹음을 할 스튜디오도 없지만 뉴욕 거리에서 음반을 만들겠다는 다소 엉뚱한 계획을 세워서 둘은 밴드를 구성해나가기 시작합니다.
노래를 부르고 싶어하는 사람,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만난 이들은 음악을 향한 열정, 에너지, 그것만으로 오래 알고 지내지 않았지만 서로를 끌리게 하고 단단하게 묶어주는 힘으로 느껴집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앞 옥상, 센트럴 파크의 보트 위, 골목과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음반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노력하지요. 영화를 보면서 눈과 귀가 함께 즐거운 한 편의 뉴욕의 거리 여행을 보는 것 같았어요. 극 중에서 댄과 그레타는 음악 하나를 두고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정서적인 공감대를 만들어냅니다.
음악 하나만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된다는 것, 댄에게는 어긋나기만 하던 관계인 딸과 아내와의 관계, 그레타와 전 남자 친구 데이브와의 관계까지 음악을 통해서 서로의 관계가 시작되고 연결되고 조금씩 더 깊어져 나가는 것을 영화를 통해서 만날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도 무언가를 더 나아지게 하는 힘이 있지 않았을까요? 바로 그 힘이 제게는 무엇이었을지 영화를 보며 떠올려보고 싶어졌어요.
전 남자 친구 데이브에게 선물했던 곡인 "Lost stars"를 부르는 모습을 보려고 그레타는 공연장을 향합니다. 이 곡의 핵심은 발라드인데 그 느낌을 살렸으면 좋겠다고 그레타는 데이브에게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원곡 버전으로 그대로 부르겠다는 약속과는 다르게 점점 고음으로 올라가고 이를 보던 그레타는 멀리서 데이브를 바라보다가 홀연히 사라집니다. 원곡이라면 그대로 끝났어야 함에도 관객들에게 열광하는 노래로 만들기 위해서 화려한 클라이맥스를 보여주는 데이브, 이제 스타가 되어버린 데이브는 예전의 순수했던 모습으로 그리고 사랑하는 그레타의 곁으로 되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비록 사랑을 되찾지는 못했지만, 그레타는 음반을 완성하기 위해서 꾸준히 길 위에서 녹음 작업을 해 나갑니다. 그레타와 댄, 이 영화에서 두 남녀는 각자 가정에서 그리고 해야 할 일과 사랑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음악을 통해서 다시 이들은 각자의 일로, 사랑으로, 가정으로 다시 출발할 수 있는 힘을 내며 한 걸음씩 전진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저는 길을 잃었던 사람들이 다시금 길을 찾아나가는 데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영화 속에서도 그 힘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건지 찾고 싶었고요. 하나의 이어폰 잭을 통해서 서로의 핸드폰에 있는 음악을 듣고, 서로 길을 잃었다는 것을 공감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씩 더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나아져가기를 바라는 서로를 향한 지지와 격려, 존재에 대한 인정 덕분이 아니었을까요. 둘은 그저 음악적인 교감과 정서적인 지지를 함께 나누는 관계일 뿐입니다.
영화에서의 핵심은 물론 음악이지만, 그 음악을 하게 하는 힘도 결국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지켜봐 줄 단 한 사람의 힘이면 충분하다는 걸요.
"다시 시작해, 너를 빛나게 할 노래를!"
영화의 카피는 노래를 시작하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한 사람의 존재로, 음악의 힘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갈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