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회상의 자기보호기제에 이어
앞서 회상에 대한 내용에 이어 새로운 것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어느 덧 30대 중반이 되어 더 이상 철없이 내 맘대로 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을 알아가며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할 것을 구분하게 된다. 이는 20대 때와 달리 단순히 '가능성'을 넘어 내가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판단'에 가까운 결정이 된다.
예를 들면 대학원을 다니면서 내가 생활비에 대한 고민 없이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을까? 이후 계속 내 전공으로 학위를 계속 이어나가려면 해외대학원 진학을 해야 하는데 내가 과연 현재 가능한 상황일까?와 같은 내가 던졌던 질문에 내가 "불가능하다"라고 결정했던 것과 같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당시 내가 좀 더 피나게 노력했더라면 가능했을 수 '도' 있다. 그런데 다시 당시의 집안 형편이나 나의 상황을 다시 떠올려보면 당시의 상황이 최선이기도 했다. '국제'라는 단어가 들어간 학문을 공부하면서 외국 한번 나가보지 않았던 내 스스로의 모순에 답답해하다가 결국 뒤늦은 해외유학(이라기보단 어학연수에 가까운)을 떠날때도,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위해 다들 만류하는 휴학을 해야했었다.
대략 3개월 동안 일을한 뒤, 그 비용을 모아 신체검사와 비자비용, 보험료, 3개월치의 학원비를 내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이 350만원 가량이었다. (그나마도 왕복 항공권은 부모님이 지원해주셔서 가능한 것이었다.) 정말 아끼고 아껴서 딱 3개월을 버틸 수 있는 돈이었고, 본 글과는 맞지 않는 내용이라 각설하지만 굉장히 어렵고 힘든 기간을 거쳐야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따로)
이후 여러 시간을 거쳐 졸업을 해서 석사학위를 가지고, 꽉 채운 6년의 경력과, 작은 기업부터 업계 내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는 기업까지 거치고, 프리랜서 생활까지 해본 이후에 깨달은 것은 더 이상 내 결정이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다라는 것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생각해보면 과거보다는 지금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이 늘어났다는 것이기도 하다. 옵션의 역설이기도 한데, 이는 선택지가 늘어날 수록 선택의 과정이나 결정이 어려워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더 이상 내가 하고 싶어서, 왠지 좋을 것 같아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어서라는 이유만으로 시도하기엔 아쉬운 것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보수 vs 혁신에서 전자는 어리석고 후자는 열정적이다?
그런데 이게 나쁜걸까?
우리는 때때로 안정 추구적인 결정과 머뭇거림을 좋지 않은 것으로,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좋은 것으로 나누어 사고하는 경향을 보이곤 한다.
이는 곧 보수 vs 혁신의 프레임으로 전자는 어리석고 과거에 안주하는 사람들의 선택, 후자는 미래지향적이고 열정적인 사람들의 결정으로 나누곤 한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혁신은 실패를 가져오고 이전까지 열심히 쌓아온 성과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조금씩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가 더 어렵고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나면서 나에게도, 그리고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우리들에게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금의 내가 선택을 앞두고 고민이 많아진 것은 그때의 내가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에게도 '가진 것'이 생겨서 선택을 두고 고민을 깊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아직은 다른 선배(?)분들과 비교하면 한참이나 남았지만 조금씩 현실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내며
앞으로 다가올 더 어려운 결정을 내릴 나에게 잘 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앞서 제시한 나의 말이 스스로 부끄럽게 여겨지지 않도록 그만큼 앞으로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열심히 살아야 겠다고 다짐해본다.
그리고 조금은 아쉽고 조금은 칭찬해주고 싶은 나에게 잘 이겨내왔다고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