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에 의하면 2019년 글로벌 명품 매출은 1조 3000억 유로(약 1744조 원) 2020년 1조 유로(약 1341조 원)로 코로나 19 영향으로 소비가 급격하게 위축되었다. 연 매출이 약 23%나 감소했으니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사실 코로나 시대에 명품 소비가 위축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경기가 안 좋은데 어떻게 고가의 상품을 살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예외 상황은 언제나 있는 법. 전 세계적으로 명품 소비는 크게 위축되었지만, 반대로 늘어난 나라도 있다. 중국, 한국이 대표적이다. 소위 '명품만' 잘 팔렸다. 여성의류, 남성의류 등 백화점의 메인 카테고리 상품들이 끊임없는 하락세일 때 명품만은 계속해서 성장했다. 실제로 작년 2월 기준으로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 현대백화점 매출이 각각 전년 대비 22%, 15.8%, 12.1% 감소했을 때, 명품은 각각 16.7%, 16.4%, 15.3% 증가했다. 2020년 주요 백화점 매출이 생각보다 큰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은, 명품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코로나 시대에 명품 소비가 역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코로나 19 피해를 덜 받아서? 그렇지는 않다. 여전히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영업자,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기업들은 넘쳐난다. 코로나 19로 인해 수혜를 받은 기업도 종종 있지만, 그 수는 소수이기 때문에 적어도 경기와 연관 짓기는 힘들어 보인다.
'편백족' 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편백족'이 그 이유를 알려주고 있다. 편백족은 편의점과 백화점의 앞글자를 딴 용어로, 생필품 등은 편의점에서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고, 백화점에서 명품 같이 비싼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이다. 소비를 줄일 수 있는 곳은 최대한 줄이고, 나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명품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일탈'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코로나 19로 인해 집콕 생활만을 해야 하는 답답함을 명품 소비로서 충족시키려는 것이다.
2030 현대백화점 명품 매출 비중
코로나 시기에 명품 소비가 가장 늘어난 연령층은 2030대이다. 명품 소비의 주 연령층이 40~50대인 것은 지금도 여전히 변함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2030 명품 소비가 4050과 비슷해지는 것은 멀지 않은 미래일 수도 있다. 그만큼 2030대 명품 소비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은 물론, 명품 브랜드에서도 이를 의식해 2030 타겟 100만원 안팎의 '엔트리급' 제품을 계속해서 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이비통 빨대
그뿐인가? 루이비통, 프라다, 샤넬 등 명품 패션 하면 바로 떠오를만한 브랜드에서는 이제는 이색적인 제품들을 하나둘씩 선보이고 있다. 루이비통 빨대, 에르메스 마작 게임세트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이색적인 제품들을 선보인다는 것은, 확실한 마케팅 효과를 누리고자 하는 것이고, 확실한 마케팅 효과를 노린다는 것은 이제 기존 주 고객층(40~50대)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타겟층을 넓혀보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굳이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명품 소비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 코로나 19는 그것을 증폭시켜줬을 뿐이다. 코로나 19가 어떻게 명품 소비를증폭시켜주었는지 그 이유를 2가지로 요약해보았다.
네이버 트렌드 '여름옷' 검색량 추이
1. 해외여행 중단
해외여행이 중단되면 패션 쪽은타격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도 해외여행은 '일탈'을 맛볼 수 있는 특별한 활동이기에, 이 기대감에 맞춰 패션수요도 급격하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해외여행이 가장 활발한 7~8월에 맞춰 사람들은 이때 입고 갈 옷을 1월부터 고민하기 시작한다. 패션 산업의 성수기 3~5월 수요 중 상당 부분은 해외여행을 위한 옷이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해외여행의 중단은 명품에게 탁월한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여행, 그것도 해외여행의 가장 큰 특징은 '일탈'이다. 그 일탈을 위해 길게는 1년을, 짧게는 1~2달을 기다리곤 한다. 그런데 이것이 모두 막혀버린 것이다.
해외 출국 3천만 시대에 출국이 막혀버린다면, 이들은 어떤 곳에 돈을 쓰게 될까? 당연히 또 다른 '일탈'에 소비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 일탈에 가장 어울리는 명품이 떠오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해외여행은 더 이상 소수가 가는 활동이 아니다. 이 일탈이 막혀버린 시점 또 다른 일탈은 흥행을 할 수밖에 없다.
스니커즈 '리셀'(되팔기) 열풍
2. 시즌을 타지 않는 고 가치 상품
지금 이 시기에 패션 산업이 땅바닥을 칠 수밖에 없는 것은 패션 상품 대부분은 시즌성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19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있다면, 미리라도 사겠지만 지금처럼 불확실한 상황일 때는 굳이 사기보다는 잠잠해지는 시기를 기다릴 뿐이다. 그래서 패션 산업은 확실한 정보가 나오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침체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명품은 다르다. 시즌성이 덜한 상품들이 많을뿐더러, 시즌성이 있는 상품이라고 해도, 그 가치가 묻히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커지는 경우도 여럿이다. 최근 롯데백화점에서 스니커즈 '리셀'(되팔기)을 시작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명품은 일탈의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투자까지 생각해볼 수 있으니, 점점 더 매력적인 상품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으로 중저가 상품들은 하락세인 반면, 오히려 명품의 수요는 계속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시즌을 타지 않고 꾸준히 '고 가치'를 풍길 수 있는 제품. 게다가 언제든지 팔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까지. 집콕 생활 속에 바라만 봐도 흐뭇할 수 있는 상품인 것이다.
'일탈'의 개념을 넘어서서 '투자'의 개념까지 장착한 명품의 전망은 향후 몇 년간 계속해서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여러 대기업에서 명품 리셀 산업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것은 시간문제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번 코로나 19로 발견된 10~30대들의 명품 소비 가능성. 코로나 19로 10~30대들의 명품 소비 가능성을 파악한 기업들이 앞으로 어떤 이색적인 제품들을 선보일지, 그리고 입문용 제품으로 가격을 어느 정도까지 낮출지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