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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은나의것 Nov 18. 2023

또 이럴 때나 글을 쓴다는 게 절망스럽지만

번아웃을 인정한다.


사로잡혀있다 또 우울한 기분에. 무엇이든 잘못했고 잘못되었으며 다시는 잘할 수 있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기분에.


지난 삼주 아니 한 달간의 시간을 떠올려보면 번아웃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할 만큼 너무 매몰되어 한 가지 일을 하며 지냈다. 일주일 단위로 줄줄이 이어진 시험공부.


이번주 월요일 마지막 중요한 시험을 보았다. 마침 그 시험은 여느 때와 다르게 오후 2시에 시작하여 5시에 끝나는 바람에 해가 다지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꽤 열심히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를 받아 들고 머릿속에 잔뜩 구겨 넣었다 생각한 많은 지식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헤매는 데에만 얼마나 긴 시간을 사용했는지 모르겠다. 목차를 쓰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려버렸고 그마저도 허술한 것 같았으나 두 시간이 채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이 목차의 내용을 풀어내야 했기에 일단은 시작. 이번 시험은 그 어느 때보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풀어내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고 시험을 보면서도 '역시 나는 너무 부족한 건가'라는 생각이 가뜩이나 어려운 시험을 더 어렵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면서 어제까지 잠도 잘 자지 못하고 공부에 몰두했던 시간들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사로잡혔다. 방대한 공부. 당연히 어려울 것을 알고 있었고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닌데 지금의 걱정과 생각이 어쩌면 다 부질없는 것일 테지만... 내 고질적인 마음의 취약성은 이럴 때 도무지 지체할 줄을 모르고 드러나와 버리고 만다.


내 마음을 어디에라도 털어놓고 싶었다. 도움도 받고 싶었으리라. 나는 그만둘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들면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나 '그래도 잘할 수 있어'라는 격려를 어느 정도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말해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가끔 너무 성급하게 내 마음속에 있는 이런 어지럽고 미성숙해 보이는 걱정들을 바보처럼 쏟아내 버리기도 해서 며칠 지나 이내 후회를 하기도 한다. 그런 급작스러운 '쏟아냄'의 열망은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그것들을 쏟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담가에게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도록 하자. 그런 극단의 마음들을 잘 타이르고 찬찬히 가라앉을 때까지 일단은 아이처럼 떼쓰지 않는 것. 아직도 나의 훈련이 필요한 부분이다.


월요일 그런 풀 죽은 마음으로 저녁에 이메일을 열었는데 마침 내가 본시험과목의 교수에게서   이메일이 와있다. 12월 중순에 있을 짧은 개인 발표 주제를 전달해 주시는 메일이었고 거기에는 형식적이었을지도 모를 문구가 적혀 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메일을 잘 받았음을 확인해 달라고 하셨기 때문에 확인 내용을 쓰면서... '마침 오늘 시험을 마치고 많이 실망해서 온 후였는데 혹시 괜찮으시다면 전반적인 공부와 교수님 과목에 관련한 질문을 해도 될까요? '라는 내용을 첨부하여 보냈다.


평소에 굉장히 사려 깊은 사람일 거라는 인상을 준 교수님이었기 때문에 그런 용기도 가능했던 것 같다. 교수님은 곧장 답장을 하셨다. 이번 금요일이 어떠냐고.

난 다음날 아침 곧장 후회를 했다. 왜 그리 성급하게 만남을 요청했을까 하고. 왠지 모를 부끄러움. 내가 이렇게 부족하다는 것을 다 까발린 것은 아닐까. 공부하고 있는 영역과 어울리지 않을 법한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인 내 마음상태에서 쓴 메일이었기에 막상 만났을 때 할 말도 없는 건 아닐까 등등...


하지만 교수님에게 있을 혜안에 대한 어떤 기대가 드는 것도 사실이고 지금껏 교수님을 이런 이유로 직접 만나 뵌 적은 없었기 때문에 한 번 도전해 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난 그래도 지금껏 실전에 강한 사람이었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기 때문에. 잘 될 거라고. 조금의 용기라도 다시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독일에는 며칠째 비가 내리고 있다. 추운 날씨. 어두운 분위기. 시험을 망친 것 같은 내 마음. 도무지 다시 시작하고 싶어지지 않아 이것저것 의미 없는 것들을 뒤적이고 있는 심난한 상태의 나.  그렇지만 당장 다음 주 월요일에 하나의 작은 시험이 남아있고 22일까지 완성해야 하는 특허 관련 번역프로젝트와 공증번역건 두 개가 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할 수 없을 것 같고 하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으로 어떻게든 꾸역꾸역 하고 있다.

얼마간 이렇게 쉬다 보면 다시 제 리듬을 찾아갈 수 있을까?


번아웃의 증상인 것 같다. 그런데 쉬는 게 무엇인지도 잊은 것 같다. 무엇이 어떻게 해야 쉬는 것인지. 일단은 조금 이 상태로 더 살아보자. 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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