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프롤로그
오랜 시간 동안 브런치 글을 쓰지 못했다. 다이어리에 모닝페이지를 쓰곤 했는데 지난여름부터 힘주어 글씨를 쓰면 오른쪽 엄지 손가락이 아프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공부하면서 너무 많은 양을 쓰다 보니 생긴 병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앞으로는 컴퓨터에 글을 쓰는 쪽으로 점점 익숙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어로 글을 쓰는 일이 줄다 보니 점점 표현력도 떨어지고 있고 이곳이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에서 오는 설렘과 함께 종이 위에 글을 쓸 때는 느껴지지 않는 장벽... 장애 같은 것들도 있지만 그것 또한 연습을 통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두서없이 일단 다시 시작해 본다. 나는 좋은 글을 쓰고 싶고 나를 잘 표현하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 연습은 두렵더라도 사는 동안 계속하게 될 것 같다.
..........................................................................................................................................
요즘 나는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깊이 있게 탐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죽음이라는 것을 떠올렸을 때 내가 가야 할 삶의 방향.. 길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매일같이 이런 자각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오고 있다. 2년 전 발견한 지병 때문에도 나는 건강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내일도 정기 검진이 있는 날이다. 아직 젊은 나이이지만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내 삶의 일부로 떠올리게 되었던 계기가 병의 발견이었다. 다행히 약으로 정상인과 다르지 않게 지낼 수 있는 병이라는 게 밝혀졌고 그 계기로 오히려 적지 않은 결정들을 다르게 내리게 되는 것 같다. 공부를 하면서도 많은 것들을 내려놓기도 하고 조금 천천히 미루기도 하는데 그런 결정들을 함에 있어서 내 건강과 가족을 빨리 떠올리는 게 큰 도움이 된다. 어쩔 때는 그냥 편하게 살던 대로 최대한 욕심을 줄이며 지내는 게 내 건강과 가족을 위해서는 최선이 아닐까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를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으로 몰아서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것과 죽음에 더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 하는 극단적인 걱정이 들 때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한정된 에너지와 삶의 기간 동안 나는 무엇을 원하는 사람이고 어떻게 살고 싶은 사람인지를 알고 싶고 그것을 살아 내는 것도 내가 죽기 전에 이루고 싶은 커다란 소망이라는 것도 분명했다. 그래서 공부를 하더라도 너무 악착같이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정신까지는 내지 않으면서 천천히 하려고 애쓰고 있다. 최대한 즐거움과 의미를 찾아가며 그리고 무겁지 않고 가볍게. 물론 그렇게 설렁설렁해서 될 공부가 절대 아니기 때문에 많은 에너지를 공부에 할애하고 있기는 하다. 똘똘한 독일 새내기 대학생들과 경쟁하고 있고 매 시험마다 1/3 정도는 떨어지는 시험에서 거의 모두 통과를 하고 있으니 만족스러운 점수가 아닐지라도 그럭저럭 잘하고는 있는 것 같다. 공부 좀 했던 한국인의 기질 때문에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참 어렵다. 그래서 내 목표와 마인드셋을 확실히 하려고 노력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극단까지 몰고 가는 공부를 하겠다는 그런 욕심은 버리도록 한다. 최선, 내 환경에서의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자. 육아와 일까지 병행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나의 기대치를 20대 초반의 아이들과 동등하게 잡을 수는 없다는 것은 당연하니까. 앞으로 최종 국시를 볼 때까지는 최대한 내 페이스를 잘 찾아야 한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나에게 필요한 것은 채찍보다 격려다. 나를 몰아붙이려 하는 마음에 발동이 걸릴 때는 언제나 되뇐다. Memento mori.
괴테 박물관의 일부.
박물관을 너무 잘 만들어두어서 오랜만에 오랫동안 좋은 관람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