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한 하루. 너무도 특별한 하루. 이런 날이 인생에 얼마나 있을까?
대부분은 오늘과 같은 하루. 내일도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은 하루.
나의 하루는 새벽 6시 10분쯤 첫째 아이의 ' 엄마' 하는 부름으로 시작되곤 한다.
늦게까지 무언가를 하다 자는 것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올빼미형이던 내가 인생의 커다란 축복인 아이들 셋의 엄마가 되면서 강제적으로 아침형 인간이 되었.. 아니 되어가는 중이다.
늘 모든 것을 규칙에 따라 모범적으로 해내는 스타일인 첫째는 비교적 먼 사립 김나지움을 다니느라 늘 우리 집에서 일 번으로 일어난다. 작년까지는 아빠가 기꺼이 1시간이나 일찍 일어나 출근 전 첫째를 데려다 놓았으나 6학년이 되면서 아이는 버스를 타고 혼자 오는 일을 시작하였고 다행히 잘 적응하고 있다. 문제는 나의 적응. 매일 6시 10분 정말이지 너무도 일어나고 싶지 않은 그 기분을 매일같이 극복하는 것은 거의 수행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극기하는 기분으로 늘 주섬주섬 일어나 아이의 빵을 굽거나 자르고 적당한 야채를 고르고 씻고 자른다. 적당한 용기를 씻고 닦고 냉장고에서 필요한 버터, 치즈, 햄을 고르고. 일단은 첫째 쌀 것 만을 생각한다. 둘째, 셋째, 남편까지... 아직도 싸야 할 도시락은 세 개가 더 남았지만. 일단은.. 이렇게 단순한 것만 같은 일이 왜 이리도 매일 같이 쉽지 않은 것일까.. 판단해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일까? 도시락을 싸야 하는 아이들 3명 남편까지 하면 네 명. 네 명에게 모두 똑같은 빵 종류와 안에 들어가는 햄과 치즈 잼의 종류를 같게 할 수 있다면 아이들이 먹는 과일, 안 먹는 과일의 종류가 같다면 나의 고민과 피로감은 확 줄텐데. 첫째는 살라미를 좋아하지 않고 빵에 쨈을 바른다. 둘쨰는 살라미만 좋아하고 절대 잼을 바르지 않는다. 좋아하는 빵 종류도 다르다. 셋째는 비교적 모든 것을 다 잘 먹지만 그래도 가리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남편은 일단 다 잘 먹긴 하지만 양이 많으므로 빵을 두 개 싸야 한다. 과일 중에 장미과 열매? 의 것들은 알레르기 반응이 있으므로 야채 과일을 쌀 때 주의한다. 그리고 Nachtisch(후식)으로 싸주는 것의 종류도 모두 다르다. 거기에 물통 씻기 그리고 물 채워 넣기.
이렇게 하나하나 숙제를 해치우는 마음으로 때로는 수련하는 마음으로 도시락을 싼다.
나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래도 혼자 옷을 챙겨 입는 첫째는 수월한 편이다. 둘째 셋째를 깨울 때는 늘 마음의 준비를 조금 해야 한다. 전날 늦게 잠들었다거나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신경질을 내며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므로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랄까. 이런 것이 늘 필요하다. 아직 내게도 남아있는 피곤을 애써 짓누르고 그 자리에 사랑을 충전한다. 아 귀여운 아가.. 일어나렴 일어나. 벌써 아침이 되었단다.
어느 정도 버둥거리며 신경질을 피우던 막내도 정신을 차린다. 대견한 아이들. 그래도 피곤하다고 학교를 안 간 적은 없다. 결국은 옷을 입고 머리를 빗고 주섬주섬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챙겨서 학교를 향해 걸어간다. 둘째 셋째는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1교시 시간이 맞는 일주일의 세 번은 함께 학교에 간다. 둘째가 기분이 괜찮고 등교 시간이 늦었다는 내 채근이 없는 날이면 셋째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걸어가기도 한다. 길이 꺾여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곤 한다. 안녕 내 아가들. 하루를 또 잘 살러 가는 어리지만 강한 내 아가들. 엄마도 하루를 잘 살게. 이렇게 잘 지내다 곧 다시 만나자꾸나!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이다.
나에게는 매일 아주 아주 거창한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