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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프맨작가 Mar 24. 2023

그 시절 10대의 운동화 아버지 생각

<스니커즈 사피엔스>의 추억 청소년 시절의 성장통 

  10대 눈부신 성장통의 시대, 나의 청소년 시절, 어떤 신발도 좋았다. 그저 드넓은 세상을 아는 것이 좋았다. 외부에 드러나는 패션에는 한번도 민감한 적이 없었다. 다만, 감수성이 지독하게 예민하였고, 내적인 양식에 대한 갈증이 문학소년이 되어버리게 하였다. 상상력의 세계에 빠져서 어느새 병약해진 아버지와 그 짧은 인연의 시간이 지나가는 줄도 몰랐다.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남겨주신 한국시장 최초로 공급된 나이키 신발은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어버린 10대가 폭풍우처럼 지나갔다.    

       

  아무 종류나 브랜드에 상관없이 어떠한 운동화도 잘 신고 다녔다. 그 때 그 시절 10대에는 발을 보살피거나 발을 멋지게 보이게 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 시절 오로지 음악과 문학, 영화에 빠져서 살았었다. 이들 세 가지의 세상이 없었다면 아마도 사춘기 예민하던 그 처절했던 청소년 시절을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선화예술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면서 하루 6시간 이상 피아노를 연습하면서 중학교 생활을 보냈다. 하지만, 예술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포기하고 인문 고등학교로 진학하였다. 충격적인 청소년 시절 최초의 좌절이었다. 6살부터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내 꿈이 곧 아버지, 어머니의 꿈이었는데 부모님에게 실망을 안겨드리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선물로 주신 나이키 신발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랜드 피아노에 온몸이 또는 두 손이 눌려서 눈물을 흘리면서 깨어나던 악몽의 소년시절이었다. 피아노 전공자로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울었던 그 뜨거운 눈물을 지금도 기억한다. 너무도 여린 마음이었고 그 마음을 누구도 따스하게 안아주지 않았다. 차가운 주변의 시선만이 나를 쏘아보는 것만 같았다. 그 때까지 두 손과 열 손가락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철부지 피아노 전공자였다. 물론 피아노 연주를 위해서 두 손과 손가락이 창조하는 음악은 신체의 다른 부분과 비교될 수 없이 소중하였다. 손톱을 짧게 자르면서 두 손의 손가락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피아노와 빠진 운명적인 사랑을 절대 벗어나지 못할 줄 알았다. 그것이 피아노를 그만두면서 세상의 많은 다른 면들을 지각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피아노밖에 모르던 철부지 순진무구한 바보가 세상이 얼마나 광대하고 다른 깊고 그윽한 것이 많은지 눈을 뜨게 된 것이 열 여섯 소년이었다. 음악세상 말고 더 큰 세상 밖으로 질주하듯 빠져나오고 있었고 그 때 스니커즈 한 켤레를 아버지가 전해주었던 것이 이제서야 기억난다. 

  

   그렇게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내 인생을 바꾼 우정을 만나게 되었다. 데미안이 된 나를 안아주던 두 친구가 어린왕자처럼 새로운 세상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나는 꽤나 재수가 없었던 잘난척 가득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유난히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성격을 가졌던 나는 나의 운명을 바꾼 정말 좋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우리가 만든 문학동아리, ‘가브리엘’이었고 우리 셋은 밤까지 우리만의 세상에서 글을 적고 철학과 종교를 논하는 특별한 우정을 나누었다. 왜 가브리엘이었는지 기독교인이었던 두 친구의 영향이 있었다. 하지만 천사 가브리엘의 이름이 좋았다. 가브리엘은 마호메트에게 신의 계시와 신의 말씀을 전달하였던 것이니, 우리들은 그렇게 높은 긍지를 가진 동아리 친구들이 된 셈이었다. 그중에서 나는 문학적인 역할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종교를 포함한 다른 분야에서는 다른 두 친구의 몫이었다. 우리들은 음악 밴드를 조직하여 라이브 음악을 연습하게 되었고, 학교 축제때, ‘메모리(켓츠의 주제곡)’ 등의 노래를 함께 불렀다. 



  청춘시대 그 시절 우리들은 한번도 패션에 관심이 없었다. 가난하지도 않았지만, 아마도 부자집 아이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선화예술학교의 부잣집 아이들처럼 새로산 옷이나 신발 브랜드들에 관심이 없었다. 한영고등학교 - 인문고등학교의 우리 세 친구는 그저 브랜드도 모르고 신었던 운동화로 걷고 뛰고 달렸다. 웃고 수다를 떨면서 청춘시대를 토론하는 것으로 행복하게 보내었다. 또 자전거를 타고 지평선 끝까지 친구들과 달리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두 손만큼이나 두 다리 두발이 있어서 부모님 슬하를 떠나서 혼자서 멀리까지 갈 수 있다는 그 자가발전 동력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열 여섯에 새로 태어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두 발에 쥐가 날 정도로 걷고 뛰는 것에 익숙해졌다. 새로운 에너지로 다른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느니 전혀 다른 소년으로 부활하게 되었다. 여전히 음악을 사랑하였지만 편협하지 않았고 신발 패션에는 무관심했지만 내면의 패션에 관심을 갖고 친구들과 또는 혼자 걷는 것을 좋아했다. 고등학교의 교내 뒷산은 숲과 연결되어 있는 호전한 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을 홀로 걷고 시를 짓고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다시 친구들과 만났을 때는 보물을 발견한 피터팬처럼 떠들고 꿈을 이야기하였다. 그 시절 친구들이 세상의 전부였다. 우정을 나누고 꿈을 키워나가는 것에 친구만한 동료가 없었다. 우리가 함께 걸었던 교정, 함께 자전거 여행을 하던 시골길이 모두 우리만의 세상이 되었다. 그렇게 아름다우면 반항적인 10대 후반을 시련도 있었다. 그 모든 곤란함, 어려움을 딛고 있었던 것이 신발이었던 것을 그 때는 전혀 깨닫지 못하였다. 부모님이 사준 신발을 신고 그렇게 튼튼한 두 다리와 두 발로 성숙해져 간 것을 몰랐다. 

 

   그 시절 늘 한족 실내화를 끌고 다니는 집안 사정이 어려운 친구들도 있었다. 그에게도 우정이 싹트게 되었다. 거친 그 친구는 싸움박질을 잘하며 주먹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그 친구에게 아무도 다가서려하지 않았으나, 나는 그와 거리낌없이 얘기를 나누었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보다 색다른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 좋았다. 고교시절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새로운 세상을 탐구하는 것이 더 좋았다. 그렇다고 학문적인 탐구, 문학적인 탐구에 멀어져 있지는 않았지만 상상력의 끝단의 세계에서 나의 인생을 특별하게 설계해 보려고 하였던 특이한 고교생이었다. 하지만 남들처럼 대학교를 진학하여야 하는 별로 다르지 않은 고교생 졸업반이 되었다. 나의 모든 우정들, 친구들, 문학적, 예술적 꿈과 토론들, 어느 숲길을 걸으면서 행복하였던 그 호젓함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10대의 성장은 자로 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마치 신발 사이즈가 220에서 275로 급격하게 변화를 가져오는 그러한 폭풍우 같던 10대의 계절들은 내 생애 값진 피터팬의 시대였다. 꿈만 먹고 하늘을 날아갈 수는 없었지만, 좌절과 시련으로 침몰할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정상적으로 10대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세상의 길을 열 수 있었다.  

 

  지금은 모두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들, 유일하게 한 친구가 40년 가까이 내 곁에 남아있다. 이 소중한 친구와 함께 그 때 그 시절을 공유하였던 그 순수했던 순간들이 그 후로 40년 가까이 내 인생의 노를 젓는 인생관을 갖게 하였다. 그 청소년 시절의 친구들이여! 어디에 있는가!  혹시 이 글을 보거든 연락주거라!  내 10대의 꿈이 이제서야 이루어지는구나. 참되게 글짓는 사람으로 중년의 후반부를 열어가고 있단다. 그 모두가 10대 우리가 함께 걸어보았고 얘기를 나누었던 그 아름다운 추억들 때문이란다. 10대시절이 내 삶을 만들었고 그 추억을 잊지 않고 살고 있기 때문이란다.


   아버지가 삼나스포츠의 창립임원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나이키를 보급하였던 분인 것을 그로부터 수 십년이 흐른 다음에야 인지하게 되었다. 그 사이 나도 글로벌 신발업계 스니커즈업계에서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0살 너무 어렸을 때, 아버지가 저 세상으로 가셨다. 질풍노도의 청소년시절이 그렇게 막이 내렸다. 세상의 모든 고민을 짊어지었지만 세상 모르던 그 청춘시대 나의 보호막이었던 존경하는 아버지! 아버지가 너무 그립다. 돌아가신 아버지보다 더 나이들어버린 지금, 아버지의 자랑스런 아들로서 아버지 업력의 대를 잇고 있다. 그 때 아버지가 주신 나이키 스니커즈 코르테즈를 새로 사고 말았다. 70년대 청춘시대로 1세대로부터 지금 3세대가 되어버린 <스니커즈 사피엔스>의 책으로 모든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였다.



<호프맨 작가> 

     인문학스니커즈패션의 책 <스니커즈 사피엔스> 5월 출간 (반니출판사)의 저자. 22년간 해외글로벌 스니커즈 브랜드의 관리자로 중국을 거쳐 현재 베트남에서 근무중이다. 등단 수필가, 등단 시인이다. 호프맨작가의 좋은 수필, 에세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베트남 호찌민의 대학교에서 <스니커즈 사피엔스> 책관련 강연을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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