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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프맨작가 Apr 03. 2023

보헤미안 히피문화의 스니커즈 이야기

스니커즈 사피엔스의 못다 한 스토리들 저자 이야기 


<스니커즈 사피엔스> 5월 출간 패션 인문학 책은 문화적인 영향이 어떻게 스니커즈를 발전시켰는지 적었다. 고대의 스니커즈부터 소개하였지만, 18세기부터 기술혁명과 산업혁명의 시대를 관통하며 20세기 이후 오늘날까지 문화적인 혁명이 스니커즈와 함께 해온 것이 스니커즈 혁명 이론을 만들게 되었다.


스니커즈는 다양성과 개방성을 포용한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진화하였고 그 진화는 문화, 예술을 먹고 성장하였다. 인류사의 혁신적인 문화를 포용하면서 구체적인 대중 패션으로 승화시켰고 고립되지 않고 모든 세대에 공감할 수 있는 개성적인 민주화 혁명을 진행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모두 스니커즈 사피엔스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스니커즈 사피엔스>에 미흡한 부분에서 '보헤미안'이라고 언급하지 않은 대목이 있어서 이 글을 통하여 스니커즈 사피엔스와의 연관성을 설명하고자 한다. 내 안에 이미 보헤미안의 피가 흐르고 있기에 지금은 당당하게 적을 수 있다.



보헤미안(Bohemian)의 어원은 프랑스어 보엠(Bohême)으로,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에 유랑민족인 집시가 많이 살고 있었으므로 15세기경부터 프랑스인이 집시를 보헤미안이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된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사회의 관습에 구애되지 않는 방랑자,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예술가·문학가·배우·지식인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실리주의와 교양 없는 속물근성의 대명사로 되고 있는 필리스틴(Philistine)에 대조되는 말로 쓰였다. ‘보헤미안’이란 영어를 일반화시킨 작가는 사카레이다. 또한 이 말은 집시처럼 방랑하는 방랑자(vagabond)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백과사전적 의미)


<스니커즈 사피엔스> 책에서 재즈를 이렇게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는 재즈가 흑인들의 해방과 창조의 꽃을 피워준 문화였기 때문이다. 20세기 스니커즈 역사는 미국의 흑인 문화 없이는 발전할 수 없었다. 재즈 뮤지션들의 신발은 무대용 신발 종류였다. 하지만 20 세기 후반에 레코드된 스니커즈 재즈 음악과, 21세기의 재즈 뮤지션 중에서 자신들을 ‘스니커즈 재즈 밴드(Sneakers  Jazz band)’라고 부르는 그룹들이 여전히 부활하여 건재하다. ‘스니커즈‘라는 단어는 오묘한 음악적 앙상블을 내포하고 있다.

<스니커즈 사피엔스> 인문학패션 책중에서 인용 


스니커즈 진화의 역사에서 아메리카 대륙의 흑인들이 주인공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심지어 댄스 신발 - 스펙테이터 같은 구두 종류의 신을 신고서 재즈 뮤지션들이 활약하였던 20세 초 그 패션이 이렇게 21세기에 상기 사진과 같이 스니커즈의 패션의 재즈 뮤지션마저 탄생하게 만들었다.


남미, 북미 사회의 흑인들은 스포츠 스타, 재즈, 힙합, 레게 뮤지션 등의 스타들로 현대 문화를 바꾸었던 주역이 된다. 1863년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선언 이후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들이 백인 위주의 미국 사회와 문화의 흐름을 바꾸었고 새로운 포스트모더니즘의 21세기 현대 대중문화를 창달하였다.


스니커즈는 1950년부터 히피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대표적인 것은 유니섹스 즉 남녀 구분이 없는 스니커즈 디자인이 확산된 점이다. 여성들은 남성적인 스니커즈를 꺼려하였던 이전의 사회적 문화에서 히피 문화는 결정적인 패션의 변화를 이끌어내었다. 또한 히피 문화는 자연친화의 생활을 강조하였다. 오늘날 21세기 친환경, 친자연의 제품들, 그러한 스니커즈 문명에 큰 영향을 준 최초의 시도들이 히피 문화에서 태동된 것이다. 스니커즈는 딱딱하고 절제와 규정이 강조되는 구두와 달리 히피 문화의 패션에 잘 어울리는 도구가 되었다.


컨버스(Converse) 스니커즈는 여전히 1960년, 1970년대까지 미국의 농구 신발로 휩쓸고 있었고 청년들의 신발로 미국의 아이콘이었다. 스니커즈 운동화가 스포츠 정신에 잘 어울리는 젊은이의 상징이 된 것은 현대 인류에게 커다란 아이콘이고 영향력이었다.


1960년 말부터 1970년대 뉴욕에서 탄생된 흑인들의 비보이 문화는 할리우드 영화에까지 진출하면서 대중문화의 일대 획기적인 변화를 만들었다. 이는 1980년대 세계 팝의 황제로 떠오른 마이클 젝슨의 문워크에서 절정의 현상을 일으켰다. 마이클 잭슨은 그의 특유한 패션 고집으로 브레이크 댄스에서 스니커즈를 착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들에서 보이는 브레이크 - 비보이 비걸들의 거리 댄스에는 스니커즈가 돋보이는 반려 신발이었다.


이들 모두가 포스트모더니즘과 보헤미안의 흐름이 스니커즈에 옮겨 붙은 것이다. 그러한 거대한 흐름 속에 세계를 바꾼 노래가 탄생한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프레디 머큐리의 퀸이 팝뮤직의 천정을 뚫게 되었다. 1775년 리버풀에서 공연된 이래로 아디다스를 신고 선보인 프레디 머큐리의 활처럼 굽은 몸의 공연무대에 우리 모두 열광하였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감상한 사람들은 대중팝 아티스트가 이렇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 퀸과 프레드 머큐리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팝음악을 모르던 사람들에게도 현대 인류사의 위대한 팝뮤지션에 대한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스니커즈 신발을 보라! 그의 음악적 예술적 영혼이 이 스니커즈에 담겨 있다!



1985년은 스니커즈 문화의 판을 바꾼 해이기도 하면서 스니커즈 마니아를 형성하기 시작한 해로 기록된다. 나이키는 농구계의 전설, 마이클 잭슨과의 협업으로 시그너쳐신발 조던 시리즈를 히트시킨 첫해가 된다. 더불어 아디다스는 최초로 런 DMC 힙합가수 그룹과 백만 달러의 협업 계약을 하면서 <마이 아디다스>의 노래를 전 세계에 각인시킨다. 다시 한번 미국 사회의 흑인 아티스트, 흑인 스포츠 스타들이 세상을 바꾼 일대 사건 혁명이 지속되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를 흑백을 떠나서 보헤미안 문화라고 포용하여 불리고 싶다. 스니커즈는 자유분방하고 예술과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반려 신발이다. 고립되지 않고 이주하면서 자유롭게 사고하고 창조하는 사람들, 보헤미안이 되고 싶은 사람들은 스니커즈를 신는다. 그렇게 개방적 예술적인 생활을 존중하는 삶이라면 스니커즈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스니커즈 사피엔스라는 단어의 정의를 처음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확산시키려고 하는 저자가 되었다. 우리 모두 스니커즈 사피엔스로서 보헤미안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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