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하버 빗줄기 속에서 18년만에 재회
지난달 결혼 30주년 기념여행으로 무려 18년 만에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 하버브리지의 풍경에 풍덩 빠져 버렸다. 사진 속이 아니고 실제 상황이었다. 장마철 폭우기간, 장대빗속에 온몸이 젖어버렸다.
무려 2시간 이상 빗속에서 우산의 의지한 채 시드니 도심에서 오페라 하우스까지 바짓가랑이 푹 젖어서 걸었다. 신발 속은 이미 빗물이 고여들어 양말이 흠뻑 젖은 채로 걸어야만 했다.
그렇게 어렵게 다다른 그 아름다운 곳, 오페라 하우스의 바닷가는 여전히 빛나는 곳이었다.
18년 전에 이 풍경을 바라보면서 피자와 스파게티를 세 가족이 즐겼던 그 추억이 고스란히 저 테이블과 의자에 남아 있었다. 그때는 젊었고 활달하였으며 회사에서 승진 성장하는 것에 몰입하였다. 그런 젊은 날,
시드니의 마천루 빌딩들이 더 많이 눈에 들어왔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18년이 흐른 2024년 오늘, 오로지 하버브리지와 오페라 하우스 그리고 갈매기들이 내 눈을 온통 사로잡았다. 하염없이 내리는 빗줄기에서 날씨 탓을 하기보다도 이렇게 다시 찾아온 이곳이 변함없는 풍경을 간직하고 있어서 감사했을 따름이었다.
도쿄와 시드니를 연결한 초호화 대형 유람선을 앞에 두고 갈매기들이 내려앉았다.
인도인처럼 보이는 중년의 관광객이 갈매기들을 유혹하는 먹거리를 풀었다.
그는 시드니의 갈매기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갈매기를 만나기 어려운 곳에 살고 있는 나 대신 그는 무슨 마법 같은 주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 주문에 홀려서 갈매기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그 풍경이 한 폭의 그림보다 아름다웠다.
인도 사람이 갈매기들에게 밥을 주고 있는데, 그 주변에 사람들이 모인다.
그들이 무척 다정하게 보였다. 관광지이 여유로운 갈매기들도 그들에게 먹이를 주는 인도계통의 중년 남자는 그 갈매기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모두들 관광으로 바쁜 일정에 오고가는 길에, 이들의 뜻모를 대화에
빠져들어 멈추어 있게 되었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우산도 삼켜버린 날씨였다. 그래도 너무 아름다운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광장이었다.
아내와 나는 결혼 30년의 기념촬영을 하였다. 이곳을 영원히 잊지 못한 무대로 만들었다.
18년 전 방문때 그 사진들은 어디 찾을 수도 없게 된 세상에서, 갤럭시 휴대폰 카메라가 너무 고마웠다.
너무도 고마운 순간이었다. 그 순간 행복하게 박제되고 싶었다. 아내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한 시공간 중의 한 장소에서 사진을 남겼으니 인생의 한 꼭지를 완성한 것 같았다.
다시 이 아름다운 시공간에 돌아올 수 있을까! 그대로 만족하게도 된다. '아쉬울 때 떠나는 것이란다.'
질질 끌면서 아쉬움을 참지 못하면, 지금은 사라진 울고 짜는 신파극을 넘어서지 못한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광장을 내려오면서 빗줄기가 그치지 않았고 덕분에 뿌옇게 변해버린 하늘이 온통 회색빛이었다. 그래도 눈에 담고 싶었다. 내 눈에서 그 비 오는 오페라 하우스를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눈에 모두 담을 수 없어서 마음에 담는 한계에 부딪혀서 더 많은 동영상, 사진들을 담아왔다.
블로그에 담으면 앞으로 18년 이후에 다시 열어도 그대로 살아있을 것만 같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추억의 장소 중에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주변은 단연코 다섯 손가락에 꼽는다.
이 세상에서 가족들과 함께 가장 잊지 못할 시드니 항구의 정경들은 비처럼 눈물 젖었다.
하늘을 뚫려서 눈물을 멈추지 않았고 빗물이 흘러내리는 시드니 브리지의 정경들은
결코 슬프지 않았다. 그저 비에 젖은 그곳이 감사하게 남게 되었다.
떠나기 싫어도 떠나야 했다. 내리는 비를 맞기 싫지도 않았고 맞으면서 행복하였다.
그대로 시드니의 추억은 내 마음속에서 박제가 되었다.
빗줄기가 끊어지지 않았기에 시드니의 여행은 더욱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물론 15년 전 방문하였을 때 그 좋은 날씨의 시드니는 아니었다.
빛과 광채가 시드니의 걸어가는 도보를 위한 거리조차 윤기났던 그런 날씨는 없었다.
하지만 비 오면 어떠랴! 이렇게 이곳을 담을 수 있으면 충분히 행복하였다.
빗줄기에 흠뻑 젖은 테이블들에 손님들은 없었지만,
그곳을 스쳐가는 나그네들의 눈 속에 시드니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들 여행객을 받아주었다.
비 내렸던 시드니의 하늘과 바다, 하버브리지의 풍경과 오페라 하우스는 그렇게 빗줄기를 타고 흘러내려갔다.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다.
조개껍데기의 지붕을 테마로 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14년 만에 1973년 완공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공연장 중에 하나다. 200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시드니 하버브리지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 9년의 공사를 통해서 1932년 개통되었다. 대공황을 이겨내는데 수많은 노동자들이 참여한 역사가 있다.
시드니를 떠나면서 아내는 장대비 빗줄기 속에서 길을 잃을까 봐 젤라또를 먹을 여유도 없었다고 아쉬워하였다. 아쉬움이 없는 여행은 은은한 향기가 풍기지 않는 여운이 없는 것일 테다.
미련보다 감사함이 더 컸다. 18년 만에 다시 한번 그 아름다운 풍경에 주인공이 된 우리 부부에게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지난달 휴가 여행에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서 이 글을 쓰게 되어 고마울 따름이다.
시드니는 최고의 인생 휴양지 중에 한 곳이었고 이곳을 세 번째 다녀온 것이 꼭 인생 성장의 정점들을 찍은 것 같다. 첫 번째는 결혼 전 인생을 꿈꿀 때, 두 번째는 젊은 부부 시절, 9살박이 어린 딸과 아내와 함께, 세 번째는 중년 부부가 되어 다녀온 시드니 여행은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고 아름다웠다. 나의 인생도 그렇게 변하지 않고 아름답게 늙어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