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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프맨작가 Jun 24. 2024

밤샘근무, 아르미테스의 달빛에서

아폴론의 태양 아르미테스의 달빛에서 글쓰기 


중국대륙에서 40대 후반 밤을 지새우면서 야간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회사 사정으로 50대 중반이 되어 오랜만에 밤샘 야간 당직을 여름나라 일터에서 맡게 되었습니다. 


피곤한 몸은 몽롱해지는 새벽 3시경, 달밤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 시간에 달밤에 흘러나오는 빛이 기가 막힌 밤하늘의 홍일점이었습니다. 


구름 낀 밤하늘 한가운데 달빛이 오묘하게 빛나면서 끌어당기고 있었어요. 


그 달빛에 비친 나의 얼굴은 피로에 쪄들었지만, 


아르테미스 여신의 달빛에 해맑게 미소를 보내게 됩니다. 


왜냐고요? 아직 밤샘 체력이 되고 아직도 이 몸이 가장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메멘토 모리라는 라틴어 경구가 생각합니다. 


"죽음을 생각하면서 지금을 열심히 살라!"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달빛에 몽롱해진 새벽의 정신에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는 것은 이 시간도 지나가면 없어진다는 겁니다. 


내 인생에서 깨어있는 이 시간에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차리게 된다는 겁니다. 


아직은 어두운 새벽 시간 달빛을 바라보면서 해돋이를 기대하면서 한 시간씩 시간이 흐르는 것을


온전히 느껴보는 것이 하루를 덤으로 더 사는 수혜를 얻는 것 같습니다.   


밤샘을 하면서 시간을 더 얻게 되는 뿌듯함이 더 희망찬 새벽을 기다리게 됩니다.






네이버 파워 인문학블로그입니다. 동영상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seolhon/223454847228



30년 직장 생활에서 24년을 해외살이 근무를 하였습니다. 


해외 생활의 대부분 글로벌 브랜드의 제조 수출 공장에서 일하였기에 가끔씩 야간 당직 근무를 책임질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처럼 밤샘근무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지요. 


그만큼 꼬박 밤을 지새운 오늘 밤이 지나면 추억의 밤이 될 겁니다. 




학창 시절 시험공부로 밤샘을 하였던 적이 기억납니다.


그때는 새벽빛줄기에 책상에 엎드려서 졸았던 순간이 달콤하였습니다.  


평소에는 실컷 놀다가 시험 앞두고 벼락치기 공부를 하는 못된 습관이었지요. 


그래도 그렇게 시험을 치르고 나면 해맑은 웃음을 짓고 해방되었습니다.


시험기간만 끝나면 밤샘 공부보다 스트레스 압력에서 눌렸던 몸과 마음을 탈출할 수 있었기에 


행복하였던 청소년 시절이었습니다.  




오늘 밤은 밤샘의 추억이 있는 학창 시절도 생각나지만, 그 무게가 다릅니다.  


가장으로서 열심히 살아온 30년 직장 생활도 영사기처럼 밤하늘 무대에 돌아갑니다. 


학창 시절은 반강제적으로 시험의 압력에 못 이겨 밤샘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가장으로서 일터에서 밤샘하는 것은 자율적인 결정이 됩니다. 


내가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나의 가족의 가정 살림이 순조롭게 돌아가야 하니까요. 


가장으로서, 조직의 리더로서 책임감으로 밤샘 당직 근무를 하게 됩니다. 















그 새벽 시간 이어령 선생님의 <지성에서 영성으로> 책을 열어 몇 페이지를 읽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밑줄 치는 교과서이지만, 이 책에는 왠지 밑줄을 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 책에 기도를 하는 마음을 적어주셨고, 따라서 노인이 된 시인과 작가님이 좋은 잔소리를 젊은이들에게


편협하게 늘어놓지 않겠다는 단호한 스타일의 문체였습니다. 




겨우 3~4페이지를 읽다가 글자들이 흐릿하여 눈이 따가워졌습니다. 잠결에 졸기도 하였습니다. 


책의 문장들에 집중하지 못하고 결국 졸음도 이겨내지 못합니다.


이어령 선생님의 영성에 대한 영감만을 담고 종이책을 덮었습니다. 




그 덕분에 이 글쓰기에 몰두하게 됩니다. 달빛에 싸인 공장의 새벽에 책 읽기는 글쓰기보다 못합니다. 


환한 달빛 같은 컴퓨터 화면 안에 글쓰기는 확실히 어둠침침한 독서하기보다 좋은 몰두와 집중이 된답니다.  이어령 선생님 책의 제목처럼 새벽의 글쓰기는 지성보다 영성으로 쓰이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일터에서 바라본 저 달은 이렇게 이야기를 건넵니다. 


지난 30년 묵묵하게 가장의 역할을 해내온 나에게 달빛의 충고가 들려옵니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을 때


밤을 밝혀주었답니다. 


묵묵히 달빛을 밝혀서 


어둠에서 희망을 잃지 않도록


밤하늘을 지켜왔답니다. 


그것이 달빛의 운명이라면


사람들은 절망할 것이 없쟎아요. 


달은 밤에만 살지만, 


사람들은 아침햇살과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이 있잖아요. 


어둠과 빛은 누가 어떻게 지켜주는가에 


달려 있는 겁니다. 


어떠한 어둠에서도 희망을 잃지 마셔요. 


밤하늘은 내가 지켜내니까요. 


당신의 마음에 어둠을 걷어내셔요. 


곧 해돋이가 기다리고 있답니다. 






달빛은 누군가에게는 어두운 시간을 이겨내어야만 하는 희망의 메시지랍니다. 


아르테미스의 달빛은 큐피드 에로스의 모자의 화살도 비껴갈 만큼 인류 문명사 모든 사람들에게 영감이 되어 왔습니다. 


베토벤의 월광소나타의 희망의 음악이 그러했듯, 드뷔시의 달빛이 연주했듯, 달밤 야경은 가장 깊은 밤에 가장 아름다운 이유입니다. 


누군가에게 달빛은 낭만이 될 수도 있지만요. 하지만 토끼가 살고 있다는 동심은 황당하다고 믿지 않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대신 야성적으로 사냥의 여신으로 군림하는 아르테미스처럼 달에 지구 밖 위성기지를 건설하려는 야심찬 우주시대를 살고 있음을 동감합니다.


21세기의 사람들은 달을 새로운 기회의 위성으로 다시 한번 정복 개척하려고 합니다.


수 천년 달빛만 바라보다가 그 실체를 손아귀에 쥐려는 우주 시대의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밤이 지나면 새로운 하루가 밝아오면 지난밤이 되어버릴 이 시간에 희망을 품게 됩니다. 


드디어 새벽하늘이 떠오르는 순간, 모든 피로가 씻겨옵니다. 


공장 기숙사의 창에 비친 오색빛깔의 아폴론 환영이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아르테미스와 아폴론은 거대한 우주라는 부모의 남매였음을 증명하는 순간입니다.


코스모스, 달, 지구 그리고 밤샘을 성공한 나에게 주는 새로운 하루의 기회입니다.   








셀레네 보름달이 떠오를 때, 나에게 기다리는 사람이 돌아온답니다. 


세 여신의 이름으로 달을 부르게도 됩니다. 달을 여신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 참으로 어울립니다. 


셀레네가 보름달, 아르테미스가 초승달, 헤카테가 그믐달을 관장하는 식으로 다 함께 형태별로 달을 관장하기도 하지요. 그리스인들은 달을 주관하는 신적 존재로 이 세 명의 여신들로 봤는데, 처녀인 아르테미스는 초승달과 소녀를 상징하고, 셀레네는 보름달과 성숙한 여인, 헤카테는 이지러지는 달과 노화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아폴론의 정신이 되어 뜨겁게 일하고 공부하면서 열심히 살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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