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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프맨작가 Jul 04. 2024

나의 스승, 헤르만헤세, 세계시민의 작가

진정한 노벨문학상 작가, 헤르만헤세 나의 스승


고등학교 시절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은 청년의 마음을 방랑자로 만들었다.


헤르만 헤세 작품 속의 골드문트, 나르치스나 데미안을 만났을 때, 서양문명에 대한 동경을 갖게 되었다.


그의 방랑적 기질들이 그의 소설 작품에 들어있었고, 


<싯다르타>마저도 그의 순례, 동방의 여정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을 소설로 승화하였다. 


그 시절 문학청년은 헤르만 헤세처럼, 그의 작품 속의 주인공처럼 글을 쓰려면 방랑해야 하는 줄 알았다.  


나의 영웅, 나의 스승, 헤르만 헤세를 따라 하면서 살고 싶었다. 














서양인 헤세는 동양을 탐독하고 동양의 철학과 미학에 빠져있었다. 


그는 세계인으로서 세계시민들을 위한 고전을 집필하게 된 편협하지 않은 동서양 융합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시대에 나치즘의 광풍으로 독일인이라면 동조하지 않기가 힘들었지만, 헤세는 그에 타협하지 않았다.  그는 그 미친 광풍을 피해서 그의 세계로 도피하였다. 




전통적인 신학, 선교사, 목사 가문에서 태어난 헤르만 헤세는 신학교에서 15살 때 탈출하였다. '시인이 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시절 짝사랑에 실패하고 자살까지 시도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하였다. 그의 사춘기 시절은 그야말로 폭풍의 언덕 한가운데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18세에 학업을 그만두고 서점이나 시계 견습공으로 수년간 일을 하면서 20세를 맞이하였다. 서점원으로 일하는 동안 책을 통해서 삶의 안정을 찾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즈음 그의 첫 작품 <페터 카멘친트 (향수)>가 6만 부 이상 팔리면서 유명 작가로 주목받았으나, 그때부터 불행은 시작되었다. 반전주의 태도에 극우파로부터 매국노의 비판을 받았고, 나치즘에도 비판을 하는 헤세에게 독일은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이에 스위스로 망명,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고 그곳에 정착하였다. 드디어 그는 위대한 독일인이었으나 독일인의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여 세계시민 세계적인 작가로서 인정받게 된다.  









헤르만 헤세 (1877~1962)


독일계 스위스인 소설가이자 시인. 단편집·시집·우화집·여행기·평론·수상(隨想)·서한집 등 다수의 간행물을 썼다. 주요 작품으로 《수레바퀴 밑에서》(1906), 《데미안》(1919), 《싯다르타》(1922) 등이 있다. 《유리알 유희》로 194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결혼하고서도 헤르만 헤세는 수년간 인도, 싱가포르, 수마트라, 실론의 동방을 여행하였다. 그의 방랑은 그의 작품에 영감이 되었다. 특히 <싯다르타> 작품은 그의 동방 여행에서 얻은 작품이라고 해야 한다. 물론 그의 사랑이 쇼펜하우어의 고통에 대한 영향 - 불교적인 영향이 있었던 것도 분명하다. 




헤르만 헤세 에세이 <삶은 견디는 기쁨>에서 인용, 


"우리를 마법의 사슬로 옭아매는 동양 예술의 배경에는 우리가 갖지 못한 동양적인 느림의 미학이 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여유로운 기질이 예술로 승화 발전한 것이다."




헤세는 동양적인 느림의 미학은 여유로운 기질이 예술로 승화 발전시켰다고 한다. 확실히 동양의 미학은 서양의 것과는 멈추어있는 것 같다. 그 멈춤이 시간도 공간도 생각도 행동도 느리게 한다. 수묵화를 보면 흑백사진, 흑백영화처럼 느리게 시공간을 잡아내는 것 같다. 거기에 우리는 글을 함께 지어 넣는다. 서양 미술에 없는 우리만의 아름다움이다. 미술과 서예를 융합하여 철학을 심어놓은 것이다. 





"애석하게도 우리 서양에서는 시간이 아주 작은 단위로 나누어졌고, 그 하나하나가 돈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그렇지만 동양에서는 아직 시간이 나누어지지 않은 채 도도한 물결이 되어 세상의 갈증을 채워 주고, 바다의 소금이나 천체의 불빛처럼 영원히 마르지 않은 채 흐르고 있다."




현재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쿼츠 시계는 1927년 캐나다 벨 연구소의 전자 통신 연구원이던 워런 매리슨에 의해 개발되었다. 태엽이 아닌 수정 진동자를 이용하여 전지로 작동하는 시계. 수정의 압전 현상을 이용하여 일정한 전압을 가하면 안정된 진동을 얻을 수 있다. 헤르만 헤세가 서양의 시간이 작은 단위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은 쿼츠 시계의 탄생과 그가 살았던 스위스 시계 장인 정신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헤세는 그 당시 서양인 작가들 중에 동방의 철학과 불교 철학을 가장 많이 이해하는 작가였다. 그에게 동방의 시간은 바다의 소금이나 천체의 불빛처럼 영원히 마르지 않은 채 흐르고 있다고 표현되었다. 




헤르만 헤세는 청소년 시절부터 나의 영웅이었다. 또한 국적 민족 불문하고 세계인의 스승이었다. 그는 독일 우파 또는 나치 정부에게 비난을 받아 망명한 작가였지만, 대신 세계인의 존경을 얻게 되었다. 그는 신학을 배워야만 했던 목사 아버지와 유서 깊은 신학자 어머니의 아들이었지만 신학교를 자퇴 탈퇴하였다. 그는 독학으로 작가가 되었고 그 이후도 끊임없는 인문학 공부를 하였다. 그는 천부적인 시인이자, 소설가, 수필가이자 화가였다. 동서양 시공간을 넘나드는 천성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가 문인이었다. 그를 닮고 싶었던 나의 청춘, 중년에 다시 그를 책에서 만나면서 더 깊이 공경하지 않을 수 없다.  













헤르만 헤세 연보


출생 1877.7.2~ 사망 1962.8.9


1877

7월 2일 독일 뷔르템베르크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남.


1883

스위스 시민권 취득.


1890

스위스 국적 포기하고 독일 시민권 회복.


1891

마울브론 수도원학교에 입학했으나 7개월 뒤 도망침.



1892

6월, 자살 기도 후 슈테텐 신경과 병원 입원.


칸슈타트 인문고등학교 입학.



1904

마리아 베르누이(Maria Benrnoulli)와 결혼.



1906

수레바퀴 밑에서》 출간.



1910

장편 《게르트루트 Gertrud》 출간.



1912

단편집 《우회로들 Umwege》 출간.

스위스 베른으로 이주.



1914

화가소설 《로스할데 Rosshalde》 출간.



1919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데미안》 출간.



1922

싯다르타》 출간.



1927

황야의 늑대 》 출간.



1930

《나르치스와 골트문트》 출간.



1943

유리알유희》 출간.



1946

노벨 문학상 수상.



1962

8월 9일 몬타뇰라에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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