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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팡세> 헤르만 헤세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신이시여! 칸트의 신, 철학의 신보다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의 사랑의 신


파스칼(1623 ~ 1662) 의 팡세를 읽어보면,


위대한 수학자로서 그의 논리적 문장에 흡수되게 된다.


더군다나 크리스도교의 신앙에 대한 그의 믿음을 논리적으로 기술하는 종교철학의 문장들에서


빨려들게 된다.



파스칼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수학자가 될 수 있었으나, 그는 종교와 철학에 그의 남은 인생을 바쳤기에 그는 버금가는 위대한 수학자 대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 블레즈 파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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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은 이슬람교, 마호멧에 대하여 가혹하게 비판하였고 오로지 크리스도교, 특히 예수님에 대한 그의 무한한 신앙심을 팡세를 통해서 설법하였다.


그의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면 악덕을 없애고 미덕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원죄도 사해지고 신성을 알게 된다고 적었다.


자신의 죄를 알게 되는 것을 찬미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을 알고 삶과 죽음을 안다고 하였다.







인간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이 모순은 신의 위대함과 인간의 비참을 하나로서


체현(體現)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비로소 해결되는 것이다.


이 중개자가 없다면 신과의 모든 교섭은 단절된다.


<팡세의 내용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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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인간의 편에서 동정와 위로를 구하신다. 이러한 것은 그의 삶에 있어서 단 한 번밖에 없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얻을 수 없다. 제자들이 자고 있기 때문이다. "






예수께서는 이 세상의 종말까지 고민하시리라. 그동안 우리는 자지 말아야 한다.


- <팡세>, 블레즈파스칼 지음, 하동훈 옮김 -






파스칼은 주장한다.


"크리스도교를 통해 우리가 가장 크게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희생입니다. 그분은 예수님을 버린 제자들부터 그에게 돌을 던진 자들까지 모두 사랑으로 감싸안으셨지요. 파스칼은 잠들지 말것은 경고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날 제자들이 자는 것을 지적하였지요. "



예수님의 희생은 분명히 세상 모든 이들에게 큰 감명의 메시지이고 신앙인들에게는 빚을 지게 된다.


비신앙인인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도 파스칼의 논증과 주장은 공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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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2~1226,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헤르만 헤세의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는 <팡세>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일맥하는 부분도 있지만 좀더 실천적이고 감명을 주는 내용들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신앙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모든 것을 던져서 스스로 가난한 신분이 되어 실천한 것에서 오는 감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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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의 깊은 일체감 속에 프란치스코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종교적으로 무관심한 사람들에게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신비로운 마법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는 즐거운 삶에서 오는 기쁜 마음으로 세상 만물과 친교를 맺었고, 자기와 관련된 모든 존재를 환영하고 사랑했다. 그는 교회로부터 물든 모든 상징에 사로잡히지 않았으며, 그가 보여준 시대를 초월한 인간성과 아름다움은 후기 중세 역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하고 고귀한 현상에 들었다.


-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헤르만헤세 지음, 정성원 옮김






종교적 신앙심을 가지기 못하였기에 예수님을 말할 자격은 없다. 다만, 예수님을 성인으로서 인류에게 가르침을 준 분으로 공경한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와 같은 분을 통하여 그의 말씀을 증거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파스칼적인 논리적 신앙적인 증명보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의 실화 스토리가 더욱 감동을 받게 된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가 새들에게 이야기한 일화는 유명하다.


프란체스코의 설교는 새들마저 감동을 받았다는 증거이다. 신의 말씀이 세상에 어떠한 존재에 차별이 되겠는가! 예수님은 절대 종교와 민족에 차별을 두지 않으셨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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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세와 아시시의 성 프렌체스코 책을 한주간 동시에 만났다.


철학적인 팡세 속의 논리로 예수님을 증명한 책과


자신의 모든 부유와 귀족신분의 것들을 버리고 그의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장 지고지순한 실천을 보여준 아시시의 프렌체스코에서 보여주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신앙인에게도 비신앙인에게도 하느님의 음유시인, 가난한 이들의 친구였던 성 프란체스코의 예수님을 더 공경하게 된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는 카톨릭뿐만 아니라, 개신교 성공회 루터회 등 모든 그리스도교의 분파들 모두에게 공경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칸트(1724~1804)는 존재론적, 우주론적, 자연신학적으로 신을 증명을 철학적으로 해석하고 비판하였다. 칸트의 신은 파스칼의 논증보다 더 웅장하고 철학적이며 광대하게 묘사되었다. 칸트는 세 비판서의 후반부에서 최고선( das höchste Gut)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론이성은 신의 존재, 영혼의 불멸, 의지의 자유와 같은 사변 형이상학의 질문에 답을 제시할 수 없다고 보았다. 칸트는 신이 인간의 도덕적 가치를 보장한다고 믿었다. 나는 칸트를 몹시 공경하고 그의 형이성학의 철학을 배우고 있다. 하지만, 철학적으로 신을 논증하는 것이 한계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신은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의 그분의 모습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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