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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말 깊은 가을 속으로, 세계 공통언어 나무 예찬

사각사각 고향나무를 그리워하면서


여행 중에 만나는 낯선 나무들은 낯선 사람들의 환영식보다 더 크게 나를 맞이한다.


특히 다시 방문하는 여행지의 나무들은 친구들처럼 정겹다.


나무들은 바람이 일렁이는 대로 내게 손을 흔들어준다.


그들의 언어는 그렇게 들리는 사람에게 세계 만국 공통언어이다.


나무들처럼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설법하는 그 언어로 책을 만들고 싶다.


나무들은 가슴으로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보이는 사람에게는 자연과 연결하는 영매의 언어를 들려준다.


계절이 지나가는 표현을 온몸으로 하고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경보-알람의 나무들,


여행지의 나무들이 고향의 나무들을 떠올리게 한다.


돌아갈 곳이 있다면 여행자에게 더 큰 산울림을 주는 것이 여행지의 낯선 나무들이다.





바람은 나무들을 간지럽게 하고, 바람을 통해 나무는 순환을 북돋은다. 움직일 수 없는 나무는 바람에 의존하는 것이다ㅡ 아리스토텔레스가 사람은 움직이여 한다고 하였다. 쇼펜하우어는 건강한 체력을 위해 움직이는 것 - 산책을 예찬하였다. 나무가 바람에 움직이고 펄럭이는 것에서 생명력을 충만하게 느낀다. 나무는 펄럭이면서 초록생명체로 살아있음을 알려준다. 처음 가본 나의 여행길 산책길에서 나무들과 대화를 하는 만남은 언제나 생명과 사람들의 세상을 따뜻하게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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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비바람, 폭풍우에도 꺾이지 않는다. 나무는 자연의 어떠한 시련도 고스란히 맞아들이지만 패배하지 않는다. 사람보다 어떠한 동물보다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나무는 고요한 강자다.


강렬한 햇빛의 고요에도 나무는 절대 주저앉은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의 온갖 궂은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 나무의 위대함을 배운다ㅡ 사람은 흔들리는 갈대인가? 나무만도 못한 연약한 갈대임이 부끄러워진다. 나무는 흔들려도 절대 뿌리까지 무너지지 않는다. 사람은 흔들리면 뿌리도 연약해지는 것이 부끄럽다.




나무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말수는 줄어들고 생각만 늘어간다. 나무의 언어는 사유의 언어다. 수다의 언어가 아니기에 나무는 모두 현자의 언어로 속삭인다. 그 언어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언어도 함부로 떠들지 않고 글로 쓰는 언어로 성숙해지고 싶다. 나무처럼 우직한 의지를 세우고 하늘을 향해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다. 나무의 뿌리처럼 이 땅의 흙을 향해 깊숙이 생각의 기둥을 올바르게 세우고 싶다. 그 기둥 위에 나무에게 어울리는 언어로 예술작품을 그리고 연주하고 싶다. 그런 언어를 배울 수 있다면 세상 어디에도 번역기 없이 소통할 수 있는 세계 만국 공통어를 익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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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디에서도 나무들은 세계 만국 공통언어로 말한다.


"여행자여, 그대는 이렇게 이 세상 끝에서 만나는 것처럼 격하게 환영합니다.


여행자여, 그대의 존재가 이토록 소중한 인연으로 나무들을 기억합니다."


나무는 지나치는 사람들에게도 오로지 그 나무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만


이 세상 스치고 지나는 것이 모두 인연이라고 말한다.


오직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사람에게만 나무들은 특별한 존재가 된다.




나무들은 말한다.


"여행자여, 그대는 날마다 옷을 갈아입지만


나무들은 한결같이 같은 옷으로 사계절을 맞이합니다. 다만 생명의 부활은 우리에게도 잎새를 바꿀 뿐 줄기와 뿌리는 한 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옷을 치장해도 근본은 그 속에 오롯이 같은 것임을 인식하리라.


그대가 어디에 있든지 그대 영혼의 뿌리를 잊지 말라. 그리하면 그대는 변하지 않고 그대가 갈 길을 스스로 지켜주리라."




집에 돌아오면 나의 정든 나무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 여행길에서 만난 나무들은 새로운 가르침을 되새기게 한다. 나무들이 이 세상 도처에서 나의 존재를 굳세게 한다. 그네들이 나무의 소명을 그 자리에서 지키는 나의 소명을 지키려고 한다. 어렸을 때 나무의 등걸에서 말타기 하던 그 소년은 어른이 되어 고향을 떠나서 살아왔다. 어른이 되어 세상 곳곳을 누비면서 살지만, 고향의 그 나무만은 언제나 그 자리에 그곳을 지키면서 살고 있음을 안다. 그 나무를 만나러 돌아가기 위해서 그만한 성숙한 자격을 갖추려고 한다. 세상의 여행지들 나무들과 무수한 성장의 이야기 꽃을 피우고 나무처럼 사는 법을 배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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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말 고향의 가을, 나무들의 잎새가 떨구어질 것을 안다.


세상 끝에 있어도 고향의 울긋불긋 단풍과 낙엽송들이 지워지지 않는다.


낙엽이 떨어지는 나무들의 거리에서 사각사각 밟게 될까 상상해 본다.


가을 속으로 나무들은 새로운 부활을 꿈꾸게 된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무들의 변화를 지켜보고 싶다.


나무는 저렇게 늦가을 피눈물을 흘리면서 소명을 지키려고 노력하는데, 그 가르침을 배우려고 노력해 본다.



이제 곧 고향의 늦가을로 노을이 접어들 텐데, 나는 아직도 바다 건너에 다른 상록수 나무들과 얘기를 나눈다. 너무도 오래 떨어져 살고 있는 고향의 나무들이 나를 기억할지 모르나, 중년의 나는 고향의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살아간다. 내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 그 나무들을 가슴에 담고 살아간다.




1월 말 겨울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면 그 나무들을 부둥켜안고 노래하리라!


세상의 절반을 돌아서 왔어도 변함없이 나무들은 나를 환영해 주니 참으로 고맙다!


남은 한 평생 나무를 예찬하면서 살련다. 떳떳하게 맹세할 수 있다.


나무들로 버텨왔고 내 영혼의 언어를 채워왔다.


고향의 나무만큼 25년 지난 세월 해외살이로 성장한 나를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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