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고독의 시
《창작시, 절대 고독》
늦가을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
밟고 있는 절대 고독에 울고 싶어라
혼자 있어서가 아니다
그리워서도 아니다
숨길 수 없는 나를 만나기 때문이다.
나이들어가는 나를 만나면 아다지오가 된다
불쑥 놀라지 않으려고 천천히 거울 속 나를 만난다
사라진 매미 소리에 놀라 계절이 바뀌어도
깨어있는 깊은 나를 만나리라
절대 고독 삼키고 대신 글을 적어라
주워 담을 수 없으니 글에다 쏟아라
나를 찾아가는 길 속에 은둔하라
낙엽처럼 바람에 휩쓸리지 말고
황금들판 자연에서 깨어나라
울긋불긋 단풍의 예술에서 깨우쳐라
혼자임을 즐길 수 있을 때
늦가을은 절대 고독의 양식이 되느니
겨울이 오기 전에 그 양식으로 동굴에서 동면에 들리라
낙엽 밟는 고독은 동굴에서도 나를 살찌우는 영양소이니
<호프맨작가 '절대 고독'>
늦가을 더 늦지 않게 한 번이라도 고요한 글을 적어보세요. 고독할 때 창작하세요. 외로움과 고독은 양면의 얼굴이지만 다릅니다. 외로우면 그저 혼자 있는 것이 싫은 것이지만, 고독은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수준이 됩니다. 그때 찬찬히 나를 거울에서 만나세요. 그 거울 속의 나를 그리는 초상화 같은 글을 써보세요. 고독조차 달콤하게 나를 찾아가는 여정의 열차표가 되어 줍니다.
고요한 것이 고독의 수레바퀴이고 다른 한 축은 깨어있는 겁니다. 그렇게 고독을 즐기려면 고요하게 깨어있는 상태가 되어야 하고, 수행자가 되어보는 지름길입니다. 고요한 명상의 수행에서 깨어나는 길을 찾고 싶습니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나를 알아봐 주면 그만입니다.
나의 삶을 아름답게 살 수 있다면 조금 더 욕심부린다면 그 삶을 화폭에 담듯 글로 적어내어 기록할 수 있다면 그렇게 예술가처럼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에서 고독을 즐길 수 있을 때 행복할 수 있다고 한다.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을 때 그때 삶은 비로소 진정한 행복감을 주게 된다고 했다.
그것은 고독조차 즐길 수 있는 초월적인 역량이다.
그 의미를 젊은 시절 몰랐기에 늘 누군가를 찾아서 살았다.
고독은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고 혼자서도 무언가 의미 있는 시공간을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을 준다.
절대 고독은 혼자 있든 아니든 우리의 삶을 혼자서도 만들어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일이다.
가을이 깊어간다. 나무는 절대 고독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이제 곧 화려했던 꽃과 열매, 잎새들을 떨구고
최소한의 모습으로 나무는 동면에 들어갑니다. 온갖 치장도 시끌벅적한 소음도 겉치레이고, 오로지 본질 - 나무의 뿌리와 줄기만으로 저 겨울의 추위를 이겨낼 준비를 한다.
이 깊은 가을에 절대 고독을 배우지 못하면 다가오는 겨울은 살을 에는 추위일 뿐이다.
절대 고독은 나쁜 것이 아니다. 자신의 내면을 거울처럼 비추어 볼 수 있는 기회다.
절대 고독을 양식으로 삼아 겨울이 되기 전에 영혼이 살찌고 싶다.
자신이 살아온 길처럼 가을이 뿌려주는 낙엽처럼
늦가을 달콤한 고독을 헤아리고 싶다.
<릴케>의 어록
"고독한 사람만이 동물이나 식물의 모든 아름다움이 사랑이나 혹은 동경의 조용하고 변함없는 모습임을 깨닫게 된다. "
<박목월 시인의 글>
"가을은 고독과 외로운 계절 고독은 즐기는 것이고 외로움은 슬픈것"
<노천명 시인의 글중에서>
"오히려 고독이 단 하나의 친구임을 드러난다. 시인은 고독을 ‘그’로 지칭하여 의인화함으로써, 더욱 내밀하고 사적인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이때 그는 사색의 호숫가로 나를 데려가 얼굴을 비추어볼 수 있게 하는 존재이며, 이것은 고독이야말로 자아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감정의 거울임을 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김현승 시 중에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절대 고독)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젊은 시절 고뇌와 방황)와
백합의 골짜기(장,노년의 아름다운 내면세계)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순수 본질만 남은 최후의 경지, 화자가 도달하려는 절대 고독의 경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절대 고독의 상징)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