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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프맨작가 Nov 13. 2024

<문학의 향기>헤르만 헤세, 전장의 젊은이들에게,

인생론, 픗사랑에 관한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 


오래전에 지나간 사랑을 기억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의 읽어본 이야기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러브스토리의 내용이 기억난다. 


크눌프는 헤르만 헤세처럼 방랑객 시인이다. 어찌 보면 헤르만 헤세의 모습 중에 또렷한 한 부분이 '사랑과 방랑'이었느니 그에게 아끼는 소설 속 캐릭터로 크눌프를 꼽는 것이 당연하다.









크눌프는 친구의 마을에 잠시 며칠 머무르면서 떠나기 전에 아름다운 처녀와 저녁 몇 시간 데이트를 나눈다. 그 데이트라는 것이 산책으로 시작되어 작별 키스로 마감되는 극적인 것이었다. 사실 저녁 산책을 하자고 처녀를 감히 유혹한 것은 예의 바른 신사같은 방랑시인의 도발적인 태도였고 그 또한 이유가 있었다. 다시 유랑하기 위해서 떠나기 전 마지막 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빠져버린 처녀는 남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면서도 저녁 산책 데이트를 결행한다. 단둘이 남녀가 저녁에 산책을 하는 것이 처녀에게는 몹시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그런 처녀에게 크눌프는 산책길에서 무도회장에서 춤을 주자고 하였다. 이에 고민 끝에 처녀는 크눌프와 행복한 춤을 추었다. 크눌프는 춤꾼이었던 모양이다. 그녀와 다리에서 헤어지기 전에 이번 한 번의 데이트를 끝으로 다시 길을 떠난다는 것을 알렸다. 딱 한 번의 데이트에 빠져버린 남자 크눌프는 작별 키스까지 하고 만다. 작별의 아련한 키스까지 응답한 처녀는 안타까운 헤어짐에 다리를 건너다가 다시 돌아온다. 크눌프가 노잣돈 한 푼 없이 다시 방랑을 떠난다는 것에 가지고 있던 돈을 주고 만 것이다. 옥신각신하면서 겨우 조금의 여행경비를 받게 된 크눌프는 그렇게 그녀와 헤어진다. 방랑의 시인다운 하룻저녁의 로맨스가 이렇게 가슴을 미어지게 하였다. 









젊은 시절 우리 모두 풋사랑으로 끝난 이야기들을 갖고 있다. 그때는 남자로서 여자로서도 성숙하지고 책임감 있게 사랑을 이어갈 수 있는 형편이 안되었다. 미완성의 젊음은 아름다운 사랑을 완성할 만한 시기가 아니었던 거다.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의 젊은 시절, 풋사랑 사랑이 영글기 전의 그런 사랑에게 젊은이들에게 주는 시사점이 있었다.  결혼으로 가족에 대한 책임을 갖고 살기 이전에 우리의 사랑은 모두 풋사랑이었다는 점이다.  



크눌프는 나이 들어 병이든 자신을 만난다. 그는 젊은 날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영혼과 화해를 하게 되는 것으로 이 소설의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과연 우리는 나이 들어서야만 후회되는 인생을, 이루지 못한 것들과 화해할 만큼 여유가 생기는 것일까? 젊어서는 실패하고 부딪히면서 상처를 입는 것이 당연할까? 헤르만 헤세는 그렇다고 말한다. 더불어 가급적이면 그 상처를 덜 입기 위해서 그의 글을 통해서 젊은이들에게 조언한 것이 헤르만 헤세의 진심이었다. 











"젊은 벗들이여, 내가 그 고통에 대해서 약간의 의심을 품고, 그것을 믿는다 하더라도 시간이 걸리고, 별로 마음에 내켜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용서해 주기 바란다. 자네와 자네, 그리고 저기에 있는 자네, 이렇게 그대들 모두는 과연 그대들의 민족을 위해 괴로워하고 있는가? 오로지 그대들이 조국을 위해서 고민하고 있는가? 그 조국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조국의 머리는 어디에 있으며, 심장은 어디에 있는가? 그대들은 조국에 대한 치료와 간호를 어디서부터 시작하려 하는가? 무어라고? 어제까지는 그대들이 걱정하고, 자랑하고, 신성시했던 것은 황제였고, 세계 제국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오늘은 어디로 가 버렸는가? 고통의 근원은 황제가 아니었다. 그렇지 않을진대 이미 황제는 존재치 않으므로 아직도 고통이 존재하고 그처럼 심하게 아플 수 있겠는가? 육군이나 함대가 고통의 근원도 아니었다."  


- <헤르만 헤세 인생론>, 헤르만 헤세 지음 / 송동윤 옮김 



헤르만 헤세는 젊은이들에게 많은 조언을 그의 작품, 그의 글을 통해서 남겼다.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쟁을 일으킨 국가인 독일의 청년들에게 안타까움이 많았을 것이다. 젊은이들은 미완성의 청년들이고 아직 연약하여 쓰디쓴 삶의 고통에 많이 치이고 상처 입게 되는 시절을 보내게 된다. 풋사랑도 완성하지 못하는 젊은 시절, 어른들에 의해서 희생당하고 비관적인 인생관을 잘못 가지게 되는 것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 그의 문장들은 모두 친애하는 젊은이들에게 주는 위로와 조언들인 것이 십분 이해된다. 지금 세계의 전장에서 죽음 앞에 가족들, 연인들을 그리워하는 젊은이들이 안타깝다.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하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것인데 전장에 끌려간 젊은이들에게 고향으로 무사 귀환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러시아 전쟁에 파견된 북한군의 젊은이들도 한 부모와 가정의 아들들인데, 그들이 불쌍하다. 




고백하면 나 또한 젊은 시절 방랑하였고, 허황되고 잘못된 사상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방황에서 비롯된 것이고 다행히 좋은 아내, 조언자를 만나고 사랑의 힘으로 극복하였다. 20대 크눌프처럼 머무르지 않고 방랑 시인이 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문학을 공부하고 문학가가 되는 것이 꼭 방랑을 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허황된 사고에 갇혀있는 것도 벗어날 수 있었다. 더 넓어진 시야를 갖고 약간의 의심을 갖고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는 시야를 갖게 되었다. 다행히 헤르만 헤세의 조언들이 옳았음을 몸소 깨닫고 실천하려고 글을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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