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탈고 후 감동 글쓰기 행복합니다.
이 짧은 인생이 글쓰기처럼 적을 수 있기를 바란다.
몽당연필처럼 삶의 시계는 너무 쉽게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아쉬움 때문이다.
글쓰기처럼 인생을 담아낼 수 있다면 좋겠다.
시계바늘 인생의 속도를 늦추고 곱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이 시간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이 연출하고 싶은 공간이란 무대라면 글쓰기로 '시간의 대화'를 연기할 수 있다.
글쓰기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연기가 된다.
글을 쓰면 삶은 작가정신으로 살 수 있게 된다.
작가는 삶을 관찰하고 쪼개고 묘사하고 느낌을 옮겨 넣는다.
매일의 삶이란 페이지마다 허투루 흘려버리지 않게 된다.
우리가 삶의 글쓰기를 노트북 다이어리처럼 채우기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글쓰기는 화가가 초상화를 그리거나 풍경화를 그리는 것과 같다.
자화상을 글쓰기로 옮기면 자신의 마음과 외모의 모습을 글쓰기를 통해서 묘사하게 된다.
풍경화를 글쓰기로 그리면 자아를 넘어서서 타자와 자연의 인상을 포착하여 깨닫게 된다.
올해도 글쓰기를 통해서 가장 성장한 것은 나 자신이다.
그렇게 세상과 마주하게 된 것은 나를 위한 성장이 되었다.
인생을 글쓰기로 사는 것은 스스로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세상에 이로운 집단지성을 성장시키는 인간성의 성취감이 된다.
그렇기에 소중한 인생을 글쓰기로 살고 싶다.
무명작가이면 어떻고 필명으로 글 쓰면 어떠하랴!
내 마음이 글쓰기로 다져진 인생이 될 수 있다면 이 한 평생 살만하였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세한도를 그린 것처럼
글쓰기가 한 폭의 그림 같은 일생이 된다면
한겨울의 엄동설한에도 춥지 않고 한밤의 어둠도 어둡지 않다.
내 글이 나의 삶을 따뜻하게 밝혀주면 그만이다.
<결론, 우리가 글을 써야하는, 글쓰기 이유는? >
시계 바늘은 매일 360도 흘러가도 닳지 않습니다. 인생의 시계는 닳아서 사라집니다.
휴대폰의 시계도 휴대폰 저장물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인생의 시계는 저장되지 않습니다.
시계 바늘도 휴대폰도 충전하면 되지만 몽당연필은 충전할 수도 재생할 수도 없습니다.
대신 몽당연필은 자신의 살과 힘을 바꾸어서 글쓰기를 하게 해줍니다.
몽당연필이 닳아 없어지더라도 글쓰기로 원고에 담을 수 있은 인생이면 좋겠습니다.
몽당연필의 흑연심이 없어지더라도 우리네 짧은 인생이 글에 담겼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정신없이 갈피 못 잡고 살다 보면 흩어지고 스러지는 인생이 아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모두 소중한 인생극이기 때문입니다.
종이책의 내용물을 컴퓨터에 담아 보관하듯, 21세기는 디지털로 수많은 인생들이 담깁니다.
하지만, 각자의 소중한 삶은 꼭 스스로 써가야 합니다. 짧아지고 사라지는 몽당연필의 검은 흑연심이면 좋겠습니다.
닳아없어지는 것을 스스로 바라보면서, 다시 깎아내어 쓸 수 있도록 꼭 몽당연필처럼
한번뿐인 소중한 인생을 적어가고 싶습니다. 그것이 작가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새로운 제 인생 소설을 탈고하고 내일부터 퇴고에 들어갑니다. 글쓰기가 너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