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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프맨작가 Mar 22. 2023

18c 신발제화 인문학 작가, 사뮤엘 드류와 호프맨작가

<스니커즈 사피엔스> 저자, 2000여 년 신발인문학 책, 5월 출간


   사뮤엘 드류(영국, 1765~1833)의 일대기를 알게 되면서 <신발, 스니커즈 인문학 책>에 대한 나의 열정을 불태웠다. 그의 삶에서 공감되는 이야기들이 모두 샘솟는 동기부여 에너지였다. 나는 신발을 만든다. 22년 긴 세월, 글로벌 브랜드들의 신발을 개발하고 생산, 전 세계에 선적하는 일을 해왔다. 하지만, 직업인으로서 생업의 고마움을 넘어서서 고백하고 싶다.  나의 영혼은 작가였고 인문학은 나의 필생의 질문들을 던지고 공부하게 만들었다. 


   "몇 년 동안, 나의 모든 여가 시간은 독서 또는 낙서에 전념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내 휴식을 자주 깨뜨렸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내 사업을 방해한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의 노동은 나의 생계에 달려 있었다. 문학적 추구는 단지 나의 즐거움 일뿐입니다. “ 그의 말들이 가슴에 박혀서 감격이 된다. 그는 오늘날 이 시대의 신발업계 근로자들에게 주는 감동적인 말을 남긴다. “신발을 만드는 사람은 자신의 임금을 확신한다 책을 쓰는 사람은 결코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한다." 사뮤엘 드류의 어록 중에서... 

나도 그의 말에 한 마디 보태고 싶다. ”신발공장에서 일하는 급여는 너무도 정직하고 순진한 급여랍니다. 그 급여로 책을 쓰는데 정직한 영혼의 글이 되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사뮤엘 드류의 문학의 길에서 대부분의 젊은 수필가들의 시도와 마찬가지로 그의 첫 번째 시도는 미완성이고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의 뮤즈(그리스신화의 학문과 예술의 여신)의 글에 가장 초기의 알려진 노력은 그의 여동생에게 시적인 서한이었고, 그다음은 그의 형제의 죽음에 대한 애가(哀歌), 비가(悲歌)였다. 그다음에는 몇 개의 짧은 시적 조각이 뒤따랐으며 그중 어느 것도 보존되지 않았다. 그는 원고에 약 1200 줄의 "성 오스텔에 대한 고찰"이라는 제목의 추정되는 조각을 남겼다. 교회뜰, 1792년 8월 일자. 그것은 영웅적인 시적 운율적 구성을 갖는 각운이 있는 시구로 쓰였으며 많은 훌륭한 습작들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문법과 검증에 너무 결함이 있으므로 비판의 시험을 견뎌 낼 수 없었다. 주요 부분은 논쟁적이며, 아마도 그것이 모델이 된 "인간에 대한 교황의 에세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몇 가지 주장은 영혼이 비물질적이며 따라서 불멸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경향이 있다. 이 시적 구성은 분명히 드류의 박수갈채를 받은 "인간의 영혼에 관한 논문"의 배아이다. 이 시가 쓰인 1792 년부터 1798 년에 그의 "영혼에 관한 에세이"가 시작될 때까지 그의 문학 생활의 특별한 상황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일생에 걸친 그의 처절한 노력과 연구 방식에서 배웠다.  <스니커즈 사피엔스> 이 책의 저자인 나도 그의 고백처럼 살아왔다. 그의 삶의 일부는 이 책을 쓰는 심정과 꼭 같다. 그의 끊임없는 배움의 노력, 그의 격정, 그의 인문학적 삶의 추구와 열정, 무엇보다도 가장으로서 생업에 대한 충실함 등이 모두 신발제화업계의 문학가가 담아야 할 눈물들이다. 사뮤엘 드류가 나를 눈물짓게 만든 그의 고백에서 가져왔다. 


  특히 하단의 그의 고백은 22년의 신발업계 현업에서 나의 삶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의 고백이 곧 나의 고백이며 250년 세월과 다른 국적과 이국땅에서 살아온 제화장인 문인으로서 깊이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문학적 추구 동안나는 정기적으로 그리고 끊임없이 내 신발사업에 참석하며신발을 구입한 한 고객이라도 이러한 수단을 통해 실망한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습니다글쓰기와 공부의 나의 방식은 아마도 그들에게 뭔가 특이한 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삶의 공통된 관심사에 몰두하면서나는 내게 둘러싸고 있는 것들보다 더 숭고한 대상에 대한 나의 생각을 들어 올리려고 노력합니다그리고 내 (신발) 무역사업에 참석하는 동안나는 때때로 논쟁의 섬유를 잡고나는 주목하려고 노력하고그 목적을 위해 펜과 잉크를 보관합니다이 상태에서내가 수집할 수 있는 것낮 동안하루의 사업이 파기될 때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종이에 남아 있고내 가게가 문을 닫을 때나는 가족 한가운데서저녁에 낮에 내 마음을 가로질렀던 그런 생각을 분석하려고 노력합니다나는 공부가 끝이 없다 공부에 은퇴도 없다’ 나는 내 아이들의 울부짖음과 요람 속에서 이렇게 글을 쓴답니다그리고 종종 내가 쓴 것을 검토할 때, '얼룩 지을 예술'을 기르기 위해 더욱 노력하십시오,라고 스스로 고백합니다이것이 내가 추구한 방법들이며내가 쓰는 그런 단점들입니다." 

~ 사뮤엘 드류에 관한 백과사전 및 그의 전기에서 인용 - 

 22년 전 30대 초중반 저는 신발의 ‘신’자도 모르는 젊은이였습니다. 하지만, 용감무쌍하게 꿈을 위해 큰 세상에 도전하였습니다. 그 당시 글쓰기도 접었고 오로지 생계를 위해 애쓰는 한 가장의 가장이었습니다.   

달리 보면 해외 무대에서 경력을 쌓자고 무조건 도전하던 무모한 젊은이였지요. 스니커즈 세계도전기를 대항해의 콜럼버스 정신으로 밀어붙인 억척스러운 한국인의 중국대륙, 동남아 여행의 22년 기록이었습니다.

  

 대기업 사무직에 근무하던 경력을 접을 만큼 해외 글로벌 매니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신발업계에 데뷔한 것이 30대 초중반, 6살 난 딸아이의 아빠였습니다. 한국의 친구들, 지인들은 모두 미친 모험이라고 하였습니다. 갑자기 어찌 중국대륙으로 향하는지? 한국에서 잊힌 사양산업이라고 치부되던 신발공장 근무 결정에 주변에서 웅성거리면서 의아해하였습니다. 


  그때부터 22년간 신발은 미움과 애정이 가득하게 제 인생을 몽땅 차지하였습니다. 스니커즈에 대한 애증의 세월만큼이나 나는 스니커즈 사피엔스가 되고 말았습니다. 스니커즈 글감과 소재로 수많은 글을 짓고 있으니 사피엔스를 붙혀도 되겠지요.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생업에서 매일 만나는 수많은 종류의 신발들을 바라보는 직장인의 심정을 여러분들 쉽게 상상할 것입니다. 처음에는 먹고살기 위해서 일해야 하는 작업 - 그것이 애증으로 신발에 비추어졌습니다. 또 신발공장에서 또 공장의 기숙사에서 생활해야 하는 도시의 젊은이가 공장근무환경에서 과연 내 선택이 잘된 것이었나 돌이켜볼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긴장의 연속이던 업무는 숨 가쁘게 1,2년이 뚝딱 지나갔습니다. 신발을 모른다고 수십 년 경력의 선배 신발장인들이 무시하더라도 배우려는 젊은이에게 찬물을 끼얹자던 것에도 인이 박혀버렸습니다. 매일 새로운 신발 용어(중국어, 영어 한국어 3개 국어)와 기계공학 - 금형설계, 화학, 구조적인 기술들이 봇물처럼 터져버려도 그 물이 차오르는데 잠겨있지 않고 숨을 쉬면서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러한 것이 제 신발인생에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첫째, 글로벌 브랜드 개발 및 수출공급의 성취감이 무엇인가요? 이제 스스로 묻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흥분하게 만들었을까요? 신발이 탄생하고 고객에게 출고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던 것입니다.

글로벌 브랜드사와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하면서 종이 한 장의 디자인에서 신발이 개발되고 대량생산되면서 출고까지 이르는 선순환 사이클을 겪으면서 성취감이 쌓였습니다. 내가 만든 신발이 전 세계의 시장으로 출하되는 기쁨을 맛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없던 것이 만들어지는 창조의 성취감과 이를 위해서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력, 커뮤니케이션에서 생업의 성취감이 배가되었습니다. 그 성취감들은 머나먼 신발인생 항해의 동력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인류사에서 신발의 역사가 과연 몇 년일까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각 브랜드들, 신발의 역사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100년 글로벌 브랜드들이 왜 그렇게 자부심을 갖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신발의 역사, 패션, 문화를 접하면서 신발에 대한 애정이 쌓여갔습니다. 특히 글로벌 브랜드 사랑으로 이어졌고 신발매장에서 내가 만든 신발들이 전시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2000년이 넘는 신발의 역사부터 300여 년의 스니커즈 역사까지 역사적인 신발문화들이 차곡차곡 내 마음의 지식과 감수성의 창고로 축적되어 갔습니다. 오시리스의 고대 이집트에서 스티브 잡스와 일론 머스크의 IT업계에 이르기까지 신발의 역사는 인류의 혁명 시대를 관통하고 있었답니다.    


  

   세 번째, 인문학적인 세계관과 통찰력, 질의문답, 사색이 함께 하게 된 삶이었습니다. 

저는 선화예술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그 당시 음악이 세상의 전부였던 10대 시절을 겪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음악, 미술, 철학부터 영화, 드라마까지 광적인 관심을 갖고 예술세계를 탐미하였습니다. 

그렇게 신발을 예술적으로 미적인 감수성으로 또 패션 라이프스타일의 시각으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이 한 켤레의 신발이 세상에 이로운 가치를 갖고 지난 3세기 이상 진화된 것을 볼 수 있게 되었지요. 그 진화의 깨달음을 적기 시작하였습니다. 메모하고 적는 것이 쌓여서 <스니커즈 사피엔스>라는 원고를 탈고하고 한꺼번에 10여 군데 출판사들과의 수많은 출간요청을 받게 된 기적과 같은 기회가 제 삶에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제 자신이 ‘스니커즈 사피엔스’가 된 것입니다. 예술처럼 너무도 인간적이고 인문학적인 통찰을 입힌 신발 - 스니커즈의 작가가 된 것을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스니커즈는 길을 만들고 걸어가는 동기부여의 반려신발이니 우리의 길, 그 궤적에서 성찰한 삶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제 소개는 <스니커즈 인문학 작가>라고 쉽고 간단하게 별칭으로 명명하고 싶습니다. 출판 업계에서 지어준 아이디어로 착상된 이름인데 저의 생업과 노력하면서 걸어갈 작가로서의 숙명이 잘 조화된 이름이라고 믿습니다. 이 이름에 걸맞은 글들을 창작하고 세상에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30여 년 재야에서 숨어서 글을 지어보았으나, 이제 스니커즈와 함께 세상 밖에서 이야기보따리들을 풀어내고 싶습니다. 22년 세계 무대, - 중국대륙, 동남아시아에서 해외살이 체험부터 미국, 유럽 신발업계의 출장을 수없이 다녀온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스니커즈의 한 족에 집결된 기술이 있는 듯 없는 듯, 우리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서 정들어 편안함으로 옮겨가듯 그런 느낌으로 전달하고 싶습니다. 스니커즈가 밞은 길들에서 깨달은 바와 배운 점들을 전문가 작가가 아닌, 이웃들의 입장에서 블로그를 쓰듯 책을 엮어보려고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브런치를 통해서 <스니커즈 사피엔스> 인문학 책의 내용들과 못다 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적어보도록 할 작정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스니커즈 사피엔스>를 세상에 선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는 반니 출판사(인터파크)의 편집자님께 감사드립니다.



https://blog.naver.com/seol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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