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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용기를 내어 일해야 한다! 지하철도 건너야 한다

건너야 한다. 삶의 철학 이야기


베트남의 일터로 바다 건너 다시 돌아갑니다. 이 글을 발행하면서 인천 공항의 출발장 위에 오릅니다.


일터로 돌아가면서 바다 너머로 건너가야 합니다. 고국에서 추억을 한아름 안고 다른 세상으로 건너갑니다.



부처님의 말씀 반야심경에 "건너야 한다"의 내용이 있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결코 무지개 너머를 볼 수 없다는 겁니다. 멈추어 있는 사람들은 절대 다리 건너의 세상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알고 싶은 사람들은 용기를 내어 무쏘의 뿔처럼 건너가야 한다는 겁니다.



이를 최진석 철학가는 책의 제목으로 <건너가는 자>로 낸 것을 연재 강의로도 듣고 감동을 받습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야 하는 것이 참으로 현실적인 이야기기도 합니다.


전철에서 이 열차에서 저 열차 객차로 건너가면서 이 글감이 생각났습니다.


편안한 이 자리에 머무르면, 저쪽으로 건너지 않으면, 다리를 넘어가지 않으면 절대로


무지개 너머를 볼 수 없습니다. 이제 휴가에서 깨어나 일터로 가야만 하는 정말 음력 새해 일터의 첫날입니다. 설 연휴도 끝났고 심장박동을 들을 정도로 다시 뛰어야 하는 월요일 코앞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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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 기간 1호선 2호선 분당선 등 전처로 이곳 저곳 건너다녔습니다.





설국열차에서 각 등급별 객실이 구분되어 있는 충격적인 미래의 사회에 대한 영상이 기억납니다.


가장 낮은 노동자 신분들이 지배자 신분의 객차로 밀고 쳐들어가는 스토리가


열차 객실의 차별성을 생생하고 파격적인 비주얼로 사회계층 갈등을 설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적어도 지하철 객실은 설국열차의 신분 계층의 간극은 없습니다.


월요일 수많은 도심 근로자들이 똑같이 전철 열차 객차에 몸을 싣고 일터로 갑니다.


일해야만 살아남을 있는 법칙은 99%의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적용됩니다.




파울루 코엘류의 <알레프>에서도 객차 요금이 차등되는 객차의 승객에 대한 묘사가 철학적, 사회적 현상으로 길게 묘사된답니다. 주인공 작가에게 다가오는 여인은 바이올린 연주가인데, 그녀는 작가에게 다가오기 위해서 모든 신분적 계층을 넘어서는 객실을 건너온답니다. 그녀는 용감하게 사랑하는 남자에게 객실을 건너왔던 겁니다.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도,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도 우리는 전철을 타고 일터로 갑니다.



2025년 지금 공항행 열차 칸으로, 반나절만에 바다 건너 비행기를 타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인류의 교통 수단은 이만큼 발전한 것입니다. 인류는 전 세계 모든 지역에 이주 이동할 수 있는 시대에 살아갑니다. 설국열차 같은 신분 계급의 차별은 더 이상 적어도 보이는 세상의 교통 수단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원전 축의 시대, 부처님께서 인도의 카스트제도 깊은 갈등의 골을 무너뜨렸지요.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게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함께 수행하면서 노력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법한 것이 오늘날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로부터 25세기가 지난 오늘 나는 서울의 고향에서 인천 공항으로 지하철로 이동하였습니다.


지난 휴가기간 동안 서울의 대중교통 지하철을 탑승하면서 세상이 참으로 좋아졌다고 확신하게 되지요.


오늘날 적어도 지하철 객실에는 신분 계층, 부유한 정도에 따라 구분되는 현상은 없어졌다고 봅니다.


부처님의 세상처럼 적어도 평등한 기회가 주어진 대한민국 서울 전철의 객차는 달려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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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지하철 대중교통뿐만 아니라 개인 차량으로 이동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대중교통 버스도 있고, 자가용 차량, 택시도 있습니다. 이동하면서 살고 있는 '건너가는 체험'을 모두를 우리는 날마다 경험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25년 해외살이로 운전하는 것을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대중교통이 편해졌지요. 대중교통은 누구에게도 평등합니다. 신분의 차이, 부의 차이, 모두 허물어지고 자리가 있으면 앉고 없으면 서면 된답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자신들이 모두 같은 출발선에서 각자의 목적지로 가고 있는 건너가는 사람들입니다. 출발역에서 목적 지역으로 갈 수 있기 위해서 우리는 두 발을 움직여야 합니다. 가만히 상상을 하면 몸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것은 움직이는 사람에게 주는 공평한 혜택이 됩니다. 노력하는 사람이 건너갈 수 있고, 목적지로 다가설 수 있습니다.




모두가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공평한 선택의 시간 -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시 일해야 하기에 달콤한 연휴가 끝났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연휴에 머무를 수 없는 것은 그리되면 세상은 멈추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다시 일해야 세상의 경제도 사회도 국가의 시스템도 움직이게 된답니다. 그곳에 어떠한 예외도 없이 모두가 동참해야 합니다. 일터로 가는 것도 건너가는 일입니다. 휴가에서 일터로 건너가는 월요일 아침 정신을 단단하게 무장해야 하는 일입니다.



바다를 건너갑니다. 바다는 나의 인생을 파도치게 합니다. 구비치는 파도처럼 멈추지 않고 다른 해안을 향해 달려갑니다. 건너가는 자가 됩니다. 그렇게 다시 고향을 떠나왔습니다. 고향에서 해외의 일터로 다시 건너왔습니다. 25년째 이렇게 고향에 다녀갔다 오면 고향 휴유증이 있지만, 마음을 고쳐 다잡습니다. 일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올해 설날의 고마운 추억을 안고 떠날 수 있었던 것은 한해 열심히 일한 보상이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왔기에 고향의 시공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다시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도 일하러 떠나는 것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지요. 비행기를 타고 누구에게도 공평하게 주어진 일터로 가는 길 충분히 감사하게 됩니다. 아직 열심히 일할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생에 주어진 사명감으로 일할 수 있는 중년의 나이가 감사합니다.



내가 살아야 할 일터 그 자리로 건너가기 위해서, 성장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갈 것을 다짐하게 된답니다. 이 글이 세상에 뿌려질 때, 바다 건너에 있을 겁니다. 호프맨작가는 직장인 작가로서 2025년도 열심히 달려갈 겁니다. 고마운 글벗들, 이웃님들의 일터, 생업에 좋은 결실이 맺히는 2025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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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 지하철로 이동한 추억들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동할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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