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가르침! 정승 나무들!
나무는 잘려나갔다. 사람들이 그렇게 결정하였다. 생명체로 이 땅에 살아가던 나무들은 어느 날 그렇게 몸뚱이가 몇 토막으로 나누어졌다. 뿌리가 어디인지 찾을 수도 없었다. 가지들이 앙상하게 드러난 채로 나무들을 목재로 바뀌었다. 그 나무들을 보면 사람들은 참으로 영물이다. 이 지구를 제 마음대로 경작하는 만물이 영장이란 존재이다. 나무를 처참하게 조각내어도 아무렇지 않게 전시해둔 사람들은 식물들을 우습게 보는가 보다.
나무들 입장에서 보면, 처참하게 도륙한 사람들이 미울 것이다. 살 터전을 많이 달라고 요구한 적도 없다. 그저 그 땅에 그만한 크기로 자란 것이 전부이다. 나무들 사이의 공간이 없다면 그런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의 요구에 맞추어 몸집도 그렇게 좁혀서 살았다. 이웃 나무들의 설자리를 베어내려 하면서 빽빽하게 숲을 이루었다. 그런 나무들을 어느 날 도끼의 톱날로 싹둑 베어버리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나무들에게 주어진 그 땅은 사람들의 결정으로 콘크리트 바닥으로 변할 수도 있겠다. 그것도 아니면 탁 트인 전망을 위해서 나무들을 베어낼 수도 있겠다. 왜 그곳에 원래의 자리에 심었는지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베어내었으니 나무는 슬픈 존재이다.
사람은 식물들에게 모질게 하면 안 된다. 나무는 아낌없이 주는 우리 삶의 이웃이었다. 나무가 없는 세상에 사람이 살 수 있을까? 나무가 주는 공기도, 자연의 순환 질서도 모두 인공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오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게 수천 년 동안 베어 왔어도 나무는 사람들에게 시위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나무가 사람의 언어를 가지기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들도 그들의 언어로 얼마나 울었을까? 벌목 현장에서, 베어버린 나무들 동료들의 시신 앞에서, 벌거숭이산과 숲에서 나무는 통곡하였다.
베어진 나무들이 쌓인 공원 한쪽에 살아남은 나무들이 눈꽃을 피우고 서있었다. 그 나무에 눈을 털어내리면서 내 손을 얹었다. 내 손의 온도가 필사의 투쟁으로 살아남은 나무에 옮겨졌다. 파르르 떨리는 나무의 몸통을 부여잡게 되었다. 살아남은 자, 그 나무의 안심에 내 손이 뜨겁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헐벗은 나뭇가지를 간지럽힐 때까지 나무는 삭풍을 이겨내어야 한다. 사람들은 옷이라도 입던지, 아니면 실내에서 따뜻한 난방시설에 몸을 녹이면 되었다. 겨우내 살아남은 나무들은 북풍에 깎여도 견뎌내었다. 나무의 언어는 공정한 침묵이었다. 정의의 침묵으로 사람들에게 웃고 우는 모습을 감추었다. 성인의 묵언수행으로 나무는 엄동설한을 버텨낸 것이다. 그 나무들의 잔가지를 흘깃 건드리는 바람은 햇살을 머금고 있다. 2월 1일 설 연휴가 지나서 바람의 온도는 달라지고 있다. 고향의 봄은 나무에 비둘기가 되어 소식을 전하는 것 같다. 까치 소식이 되어 나뭇가지에 봄소식이 깨어난다. 고향의 봄소식을 기대하면서 나무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내일 새벽 다시 여름나라의 일터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내가 떠나도 사람 대신 저 나무들은 고향을 지킬 것이다. 사람은 고향을 떠나도 나무는 베어내지만 않는다면 그 자리에 우두커니 경비 나무가 된다. 세상 사람들이 고향을 등져도 나무는 배신하지 않는다. 나무는 세상을 저버리지 않는다. 뿌리내린 그 땅에 사람보다 더 충실하다. 나무는 고향의 수호천사다.
나무야, 이 땅 고향의 나무야,
내가 떠나가도
그 자리를 지켜주련.
내가 내년에 돌아오면
그 자리에서 한결같이 반겨주련.
묵언수행하는 너를 믿고 떠난다.
정승나무들아,
이 땅을 편가르지 말고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네 공정한 묵언을 이해하리라!
- 호프맨작가의 작별 인사
설 연휴 휴가를 고향땅에서 잘 보내고 내일 새벽 다시 해외 일터로 떠납니다. 고향의 나무들에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나무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한참 그 곁에서 맴돌았습니다. 그 묵상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여도 그가 나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욕심이었습니다. 고향의 나무들은 희망의 전도사, 수호신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도 고향의 나무들은 한결같이 우리 땅을 지켜내고 보호하고 있을 겁니다. 고향땅의 나무들은 청렴한 정승나무들이요, 오로지 우리나라와 국민들을 위해서 올바른 정치를 독려할 거라고 믿습니다. 나무들은 편가르는 말없이도 묵묵하게 그렇게 이 땅을 사랑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