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알레프의 영적체험을 만나세요!
파올로 코엘류의 <연금술사>를 읽어보면 꿈을 좇아서 여행을 떠나는 산티아고 주인공을 만난다.
그의 또 다른 소설 <알레프>에서도 영적인 꿈의 성장을 위하여 러시아 대륙 횡단 열차를 타고 떠난다.
독자들은 파올로 코엘류의 소설들을 통해서 신비롭고 오묘한 영적 여행을 떠나게 된다.
연금술사가 보다 쉬운 언어로 청소년까지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면,
알레프는 쉽지만 신비로운 언어로 19금 아니 29금의 소설 스토리가 그려져 있다.
성인들을 위한 영적인 경험을 그려낸 신비로운 소설이다.
연금술사의 주인공은 갓 청년이 된 산티아고지만,
알레프의 주인공은 중년의 중후반부에 다다른 작가이다.
연금술사는 주인공 청년 이외에 그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 특히 연금술사가 포함되는 여정이다.
그 사람들마다 지혜를 알려주고, 주인공은 표지석을 따라서 보물을 찾게 된다.
산티아고가 얻은 보물은 물질적인 것 이상이었다. 그는 꿈을 잃지 않는 지혜를 얻었다.
<알레프>에서 주인공 작가가 얻은 보물은 그가 여행을 통해서 얻고자 했던 신비로운 체험 그 이상이었다.
평행 시간의 여행이 아니라, 시공간을 넘어서는 여행, 영적인 체험을 통해서 주인공은 전생의 사랑, 구원, 용서를 만났다. 자신의 오늘 살고 있는 존재가 오랜 인연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알레프의 스토리는 주인공 작가가 500년 전부터 인연을 맺어온 힐랄이라는 여성과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 사랑 이야기는 오히려 야호라는 70대 초반의 건장한 무도인과 주인공 작가의 대련에 주목을 하면서 읽고 깊게 이해된다. 매트릭스에서 레오가 대련하는 모피어스와, 레오의 연인이 되는 트리니티를 연상하게 한다.
마음과 우주를 조화롭게 하라.
육체와 우주가 함께 호흡하게 하라
우주와 하나가 되어라."
파울로 코엘류의 <알레프> 중에서
산다는 것, 그것은 수련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수련할 때, 우리 앞에 있는 것에 대비한다.
삶과 죽움은 의미를 잃고, 존재하는 것은
오직 도전이다. 기쁜 마음으로 맞아들이고
평정심을 가지고 극보하는 도전만이 있을 뿐이다.
파울로 코엘류의 <알레프>중에서
화(도)를 추구하는 것은 빛과 열을 발생시키는 기도의 한 방식이다.
자신에 대해서는 잠시 잊어두고,
빛 속에는 지혜가 있고 열 속에 공감이 깃들어 있음을
이해하라. 이 행성을 여행하면서 하늘과 땅의 진정한 모습을 인식하고자
노력하라. 이는 두려움에 마비되지 않고,
모든 몸짓과 태도를 그대가 생각하는 바와 일치시킬 때에
가능해지리라.
파울로 코엘류의 <알레프>중에서
사랑이 구원이 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이렇게도 묻고 있다.
또한 용서와 사랑을 통해서 증오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도 묻고 있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은 내가 영광을 향해 나아가게 하기 위한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
힐랄은 성당에서 영과 대화를 하면서 용서의 기도를 한다. 용서를 할 만큼 사랑한 것이고, 고통마저 포용하는 용서가 되었다. 바로 이 지점이 진정한 사랑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가장 큰 삶의 지표일 것이다.
사랑받지 못하더라도 나는 사랑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빼앗겨도 줄 수 있고,
역경 속에 있더라도 행복하게 일할 수 있고,
완벽하게 홀로 버려지더라도 손을 내밀 수 있고,
눈물이 흘러넘칠 때에도 눈물을 마르게 할 수 있고,
아무도 나를 믿어주는 이가 없을지라도 믿을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을 첫번째 완독한 나는 알레프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2번째 읽으면서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알레프는 평행우주 - 기차의 객차들 각각의 우주 -일 수도 있다. 알레프는 영적인 만남의 순간일 수도 있다. 남녀가 사랑하는 순간이라고도 표현되었다. 먼 과거로 다녀올 수 있는 시간 여행 같은 것, 전생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차원으로 가는 것.. 신의 심장인 우주가 수축과 이완을 하는 곳이라고 했다. 보통 사람들은 그런 체험을 평생 하지도 못하고 저세상으로 가버린다. 하지만, 오늘날 명상, 묵상, 수행 등의 비법들을 주변에서 만나고 있는데 실천적인 체험에 눈을 뜰 수 있는 기회들이 널렸다.
이 소설에서 '알레프'는 단순한 물리적인 공간이나 개념을 넘어, 우주 만물을 연결하는 신비로운 존재로 묘사된다.
모든 것을 담는 무한한 공간: 알레프는 히브리어와 아랍어의 첫 글자이자, 수학에서는 '모든 수를 포함하는 수'를 나타내는 말이다. 소설 속에서 알레프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담고 있는 무한한 공간으로 표현된다. 동시에 알레프는 아랍어에서 묵음 또는 약한 소리라는 상징성도 있다. 우리는 알레프를 살면서 못느끼고 지나치는 것일 뿐이다. 언제나 무한한 공간은 존재하였다.
우주 만물을 연결하는 매개체: 알레프는 인간의 모든 경험, 기억, 감정뿐만 아니라,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연결하는 매개체다. 마치 거대한 거울처럼, 알레프를 통해 우리는 자신과 세상, 그리고 신과의 연결을 경험하게 된다. 시작과 끝이요. 언제나 무한한 가능성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있었다. 우리가 아직 연결되지 못하였을 뿐이었다.
영적인 성장과 자아 발견의 상징: 소설의 주인공은 알레프를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떠난다. 알레프는 곧 주인공의 영적인 성장과 자아 발견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감성, 지성, 이성, 그 다음에는 영성이라고 생각한다.. 그 모두 인간이 자아를 성장시키는 과정이다.
즉, 알레프는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하나의 상징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와 우주의 신비를 탐구하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이는 주인공이 바이칼 호수의 얼음장같은 물에 온몸을 담그고 칼끝의 시린 차가움을 즐기면서 영적인 순간을 맞이하는 것과 같다.
이 소설은 500년 전 마녀사냥이 있었던 시절로도 돌아가서 사랑했던 한 여인을 심문, 검시하고 죽이는 장면까지 그려진다. 그 기막히고도 애처로운 마녀의 심판에서 전생의 힐랄은 죽고 만다. 하지만 그녀는 용서의 기도를 통해서 그녀 자신뿐만 아니라 주인공과 주변의 모두, 그녀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던 사람들을 구원한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끝에서 두 남녀는 사랑의 헤어짐을 고통스럽게 받아들인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였으므로 헤어질 수 있었다. 어쩌면 주인공 작가와 힐랄 여주인공은 영원히 함께 결혼하는 인연이 아닌, 불꽃같은 사랑, 불의 고리로 연결된 사랑을 태우고 헤어지는 인연으로 만족해야 하는 관계일 뿐이다. 그런데도 함께 있는 동안 사랑하는 동안 알레프의 카타르시스를 공유하고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임에 그들을 사랑하고 헤어짐을 받아들인다.
파울로 코엘류의 작품들 중에서 성인들을 위한 <알레프>, 또 하나의 연금술사 보물을 만났다. 어떠한 특정 종교적인 체험에 치우치지 않는, 인류와 우주 사이의 영적인 경험을 이 책을 통해서 간접 체험으로 겪어볼 수 있음을 행운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