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음악은 내 인생.. 호프맨작가의 고백서
10대 시절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연주하곤 하였다. 그때는 밤을 좋아하는 감상적인 소년이었다.
50대 들어서서 드뷔시의 달빛 같은 곡을 너무도 연주하고 싶었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면서 드디어 연주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이미 드뷔시의 아라베스크를 북토크에서 공연도 해본 경험이 있다. 드뷔시에 대하여, 이 곡 달빛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아라베스크에 이어 이제 달빛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이곡 <드뷔시 달빛>이 등장하는 단편소설은 완성되어 언제인가 출간될 때를 기다리고 있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는 연주하는 사람들이 많다. 피아노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교과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뷔시의 곡들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연주하지 않는다. 교과서에서 벗어난 몽환적인 달빛의 느낌을 주는 이 곡은 신비롭고 아련하다.
<베토벤의 월광소나타>는 고전의 형식에 절제미를 가지고 있다. 이 소나타의 음계들은 침착하고 차분하게 오르내린다. 절대 함부로 커져서 당황하게 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감동이 있다. 서두르지 않으면서 고요한 음색들이 달빛처럼 감명을 준다. 하지만, 절대로 상상 너머로 빠지지 않고 현실의 테두리에서 극도의 아름다움을 다스리는 월광 소나타 2악장은 아다지오의 향연이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나는 피아노 독주곡으로 연주한다. 짧게 편곡된 이 곡은 내 인생 최고의 연주라고 할 수 있다. 이 곡은 협주를 할 수 없지만, 늘 독주하면서 협주를 상상하면서 함께 한다. 웅장한 선율들 만큼이나 다채로운 멜로디들이 흘러나오는 이 작품은 내가 맡고 싶은 인생의 모든 향기를 지니고 있다. 서사시와 서정시, 비장함과 달콤함, 통쾌함과 애잔함, 비장한 아름다움과 처연한 아름다움 등이 어우러지는 이 작품은 나의 독주곡이지만, 인생 교향곡이다.
드뷔시의 달빛, 아라베스크의 곡들은 낭만주의, 표제음악의 몽롱한 형식을 따르고 있다. 베토벤의 음악과 달리 훨씬 더 풍부한 서정성과 화려한 음색으로 달빛 같은 환상을 일으킨다. 감정을 감추고 있다가도 폭발시키는 매력이 사로잡는다. 이토록 푹 빠지다가 헤어나지 못할 것 같은 꿈을 꾸는 것보다 더 생생하다. 심지어 빠르게 흐르는 이 곡의 음악은 아다지오의 느림도 아니다. 아름다움은 빠르게 흐를수록 더 극대화된다는 것을 들여준다. 아니 보여주는 음악이 심미적 영상을 연출한다.
이제 다른 피아노 명곡을 연습하고 싶다. 인생의 광명을 모두 끌어안을 수 있는 곡이면 좋겠다. 새로운 작품을 연습할 만한 여유도 시간도 없다. 그렇기에 장기적으로 수 년에 걸쳐서 연습하려고 한다. 아직 그 작품을 찾아내지 못하였지만, 그 작품을 위해서 여러 가지 과정의 곡들을 연습하게 된다. 내가 연습하는 것을 동시에 글쓰기 창작의 준비를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나는 글쓰기 위해서 음악을 듣고 감상하며 피아노를 연주한다. 이 세상에서 두 가지만 선택하고 살라고 하면, 음악과 글쓰기다. 글이 잘 써지 않을 때, 음악을 들으면 샘물처럼 글이 솓아난다. 나에게 글과 음악의 관계는 밤하늘을 빛나게 하는 달빛과 같다.
다음 작품의 이름은 <햇빛 소나타>라고 가제를 정하었다. 베토벤과 드뷔시, 라흐마니노프를 모두 합친 그런 작품을 찾고 있다. 찾을 수 있을지 연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노력할 것이다. 아마도 그런 명작품은 아마추어인 내가 피아노로 절대 연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글로 연주할 수 있다고 믿는다. 글로 연주하는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글이 햇빛을 가져오고 글이 햇살이 되는 광명의 광시곡을 쓰고 싶다. 글로서 햇빛 소나타를 연주하고 싶다. 그런데 햇살은 추울 때 창문에서 강렬하게 내리쪼이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하지만 아직도 겨울이다. 햇빛 소나타를 기획하는 이 겨울에 햇살 같은 문장들을 만나려고 한다. 그 문장들이 이 세상에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햇빛 소나타 행복 희망의 바이러스를 세상에 전염하고 싶어진다.
새로운 단편 소설을 거의 완성하였다. 이번 소설은 햇빛 소나타 같은 소설이다. 찌질이 비관자였던 주인공이 대자연에서 구원의 깨달음을 얻어가는 내용이다. 폭풍의 언덕에서 주인공은 절망하지 않고 다시 희망을 찾게 되고 세상 바깥으로 나가는 엔딩 구조를 갖고 있다. 마치 피아노를 연주하듯 그런 느낌의 뭉클한 감성으로 적은 소설이다. 창작하고 퇴고하면서 여러번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세상의 모든 창작가는 작품에 빠져들어 눈물을 삼키게 되는 것이리라.
방콕에서의 업무가 절반쯤 왔다. 이곳 방콕의 호텔에서도 새벽 4시에 기상에서 글을 적는 것은 세계 어디서나 같은 나의 습관이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이토록 행복하니 세상천지가 글감이 차고 넘친다. 그 글을 쓰면서 언제나 음악을 틀어놓는다. 세상 어디라도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기에 행복하다.
방콕의 사원들을 지나가고 숙소에서도 작은 기도실을 만나게 된다. 문뜩 내 소설, 책들이 태국 사람들에게 읽히게 될 날이 올 수 있을까, 상상하게 된다. 업무차 온 한주이지만, 동시에 꿈을 꾸게 되는 한주가 고요하고 편온하게 흘러간다. 아마도 일요일 치앙마이의 대자연에서 이어진 감상이 사람들을 더 가깝게 마주하게 된다.
태국 사람, 미얀마 사람들과 일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코푼 카' 두 손을 합장하여 감사의 인사를 연발하게 된다. 불교와 힌두교의 나라 태국이라서 그런지 이방인도 금세 숙연해지는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들의 불교적인 합장의 인사를 만나면 절대 동요하거나 흥분할 수 없게 된다. 글을 쓰면서도 차분하게 묵상하듯 써진다. 내 마음이 그렇게 합장의 나라에 걸맞게 변해가는 것 같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도 두 손의 퍼포먼스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기에, 합장같은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글을 쓰는 것도 두 손의 합장이 자판기 위해서 수 천번 만나는 기적이 아닐까! 이 글을 쓰면서 수십 번 드뷔시의 곡들을 감상하고 있다. 언제나 음악처럼 피아노 연주를 하듯 글을 쓰고 싶다.
이제 5월에는 햇빛 소나타 2부 구상을 시작할 것이다. 이번 창작품은 음악이 배경이 될 것이다. 세상에 음악처럼 아름다운 정서와 메시지의 글을 전달하고 싶다.
- 태국 방콕에서 글쓰는 호프맨작가 -
머무르고 있는 방콕의 호텔에 있는 기도실과 호텔 벽면의 조각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