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장편소설, 달너머로달리는말

달, 글, 달리는 말의 우리 민족의 역사를 생각하다


김훈 작가는 역시 언어 문장의 달인이다. 그의 장편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을 읽으면 선사 시대 역사 속에 빨려 들어간다. 아니 사람과 말이 조우하던 시대, 사람과 말이 생과 사를 공유하던 시대 속으로 사람이 되고, 말이 되어 깊숙이 들어간다.



문명이 시작되는 시대, 초원과 농경 민족들이 죽고 죽이던 시대에 죽음이 삶이 되고 삶이 죽음이 되는 그런 스토리는 문자와 칼이 그려낸 소설이다.



문자를 두려워하고 가두던 시대와 문자를 활용하여 문명의 진화를 이루려던 시대가 만났다.


초원의 민족, 농경의 민족, 어느 민족들이 이길 것인지 그 당시는 소멸과 생성이 혼재해 있었다.



심지어 이 소설의 두 주인공의 말, 토하와 야백의 이야기 또한 갇혀있는 말 길들여진 말과 초원을 달리는 말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서 비유가 있었다. 그 메타포에 인류사가 깃들어 있다.



초원의 역사 <시원기>와 농경 시대를 연 역사 <단사>에 대한 역사서의 조각을 붙혀서 서술한 대서사의 스토리가 정말 그 시절 그런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믿게 한다.



우리나라 우리 민족의 역사가 그 안에 담겨 있을 수 있겠다. 아마도 시원기도 단사도 우리의 역사가 아닐까 생각하게도 된다. 판타지 역사처럼 그려졌지만 그 스토리에 김훈 작가의 키워드가 있다. 바로 말(언어)과 말(달리는 말)이다.




초원은 말(달리는 말)이 중요하였고 말을 다스리고 말로 이동함으로서 살았던 최초의 문명국가를 이룬다.


하지만 남쪽의 농경국가로 땅에 붙이고 사는 사람들에게 말(언어)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우리의 언어로 같은 발음의 말(언어)와 말(달리는 말)이 겹쳐지는 이 소설의 핵심적인 메시지가 이 단어에 있다.




주인공인 말(달리는 말) 토하(암말)와 야백(숫말)이 죽어가는 장면들, 다시 만나지만 결국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였고 함께 쓰러지는 엔딩 장면이 가슴을 울렸다. 초원 문명은 결국 언어의 문명에게 풀처럼 사라지든 풀이 되어갔던 것이다. 지금 현대의 인류사는 정착 민족이 우세하고 정착 민족 농경민족들 덕분에 인류 문화가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그 농경민족 국가들의 무기는 말(달리는 말)이 주가 아니고 말(언어)이다. 법률을 제정하는 언어로 다스리고 기술문명을 언어로 확산시킨 혁명을 성장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는 말이 우리의 환상 같은 이상향에 남아있는 것은 왜일까? 우리 민족의 DNA에 말을 타고 달렸던 초원 민족 유목 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달리는 말을 보면 누구도 그 자유로운 기상과 해방의 느낌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말에 올라타고 함께 초원을 가르고 달리고 싶은 욕망이 있다. 자연과 한 몸이 되어 바람을 가르면서 말갈기를 잡고 말 등에서 균형을 이루면서 달리고 싶어지는 그 욕망은 사람과 말이 함께 공존하던 통쾌한 시대였다.



이 소설에서 농경국가 단나라는 돌을 쌓고 불을 질러서 초나라는 멸망시키려고 하였다. 이 나라가 치나(중국 한족) 민족인지 한민족의 한 갈래인지 구분이 안되나, 여하튼 초나라는 풀로 사라졌다는 기록을 이 소설이 보여준다. 안타까운 역사적인 스토리의 해석이지만 말로 이동하여 세상을 정복하였던 민족들은 오늘날 거의 남아있지 않다. 훈족, 거란, 말갈 들이 그러하였고 만주 요동 요서의 고구려, 우리 직계 고대국가가 그러하였다. 그들은 이제 역사에서 다른 형태의 국가나 민족으로 살아남았든, 아니면 흔적을 찾을 수조차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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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말이 한민족의 언어에서 동일음이지만 완전히 다른 단어인 이유가 있을 법하다.


말이 전하는 속도보다, 말을 타고 달리는 속도가 더 빠른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추정이다.


말이 사람의 생사를 쥐락펴락하였고, 전쟁에서 말을 타고 싸우는 기마병이 전세를 갈랐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말이 후대에 전하는 내용은 글이라는 활자를 타고 오래도록 확산된다.


말과 글은 한참 다를 수 있다. 말은 즉흥성의 언어, 사라질 수 있기에 암기해야 놓치지 않는다.


달리는 말은 활자 없이 그대로 달리고 싶을 뿐, 재갈을 물리고 안장을 채워도...


우리들에게 사육되기 전 선사시대부터 그렇게 초원을 달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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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탐하고 언어를 탐미하며 언어를 통해 세계관을 구축하는 사람이 글 쓰는 작가이다.


말이 글이 되는 과정도 어쩌면 초원 위를 달리는 말이 안장을 얹어서 사람과 함께 달리는 말과


유사하다 생각해 본다. 말은 소멸되고 휘발되지만 글을 사람들과 함께 공유되고 기록되어 다음 세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는 초원으로부터 농경 지대로 수많은 역사와 신화를 화살처럼 바람처럼 써내려왔다. 우리의 민족들은 그 과정들을 통해서 문자를 만들었던 인류 최초의 민족 중에 하나라고 믿는다. 가림토 문자, 갑골 문자.. 말과 글의 민족이 한민족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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