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들, 평정심의 덕목
<왜 인문학을 공부하여야 하는지 저의 생각을 공유합니다>
우리가 인문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들은 많지만 사람다움을 위해서라고 꼽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에 드러난 이래로 인문학의 탑을 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탑은 때로는 바벨탑처럼 허망하게 무너지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문명을 건설하게 됩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사람다움을 위해서 인류사를 건설하고 진화시켰던 노력의 성과였습니다.
그 문명은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혁명에서 세워졌습니다.
오래전에 과학기술은 철학, 인문학의 한 범주였습니다.
과학기술이 인문학과 별개로 발달된 것은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들이 연쇄반응을 일으킨 것입니다.
오늘날, 이제 과학기술은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게 된답니다.
그렇기에 인류는 다시 한번 인문학의 가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류는 과학기술을 이끌어낸 그 사변의 시작이 인간다움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철학, 문학, 역사, 예술의 각주들이 얼마나 빛나는 인간다움을 각성시키는지,
AI 시대에 사람이 사람다움이 더욱 빛을 발하는 인문학을 배워야 합니다.
휴머니즘이 그 무엇보다도 앞서는 이유를 인식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시 겸손하게 됩니다. 진지한 배움은 더욱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게 합니다.
인문학을 배우고 익히면서 살아가는 이유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나를 발견하게 되면서 행복하게 됩니다.
물론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도 인생의 한 선택의 한 분야이지만,
사실 아무도 그 공부에서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문학도, 역사도, 예술도, 철학도 우리 생활에 와닿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에 대하여 인문학이 안내해 주는 길을 찾아갑니다.
치열하게 생존하기 위해서 경쟁하는 사회이지만, 그 중심에 나 자신이 있습니다.
인문학을 통해 배우는 덕목중에서 오늘은 <평정심>에 대하여 강조합니다.
감정과 이성의 생명체, 사람은 늘 감정과 이성에 흔들리는 갈대와도 같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다움 휴머니즘을 지켜가는데 평정심의 덕목을 강조한 선현들이 많습니다.
생존에 휩쓸리지 않는 나를 살펴 가면서 나를 잃지 않고 평정심을 갖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이 광대한 인류의 인문학 탑을 쌓아갔던 우리들의 인문학 선배들에게서
사람다운 나를 제대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인문학을 배울 수 있기에 우리의 삶은 허망하게 먼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배우는 인문학의 탑을 후대의 인류에게 남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을 열심히 배우고 인식하며 깨달아가면서 실천하는 삶이 행복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살게 된 이 삶을 매 순간 열심히 살게 됩니다.
생각은 행동을 바꾸고 행동은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좋은 생각이어야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좋은 생각은 허망한 상상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꿈을 위한 상상과 구체적인 접근이 도면처럼 만들어져야 한답니다.
상세한 도면, 인생의 설계는 인류가 쌓아온 지혜와 지식의 힘으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인류의 위대한 유산 인문학 공부가 필요합니다.
인문학은 지난 3000년간의 인류 정신문명 (과학문명까지 포함하였으나 오늘날 떨어인져 나감)의 총체이고 이는 우리 생각의 올바른 방향을 만들게 됩니다. 인문학이 필요한 지점입니다.
인문학은 통합, 융합, 통섭의 인간을 만듭니다. 지혜의 평정심을 가지게 합니다.
인문학적인 인간은 통합형, 융합형, 통섭형 사람의 생각과 실천을 만들어 냅니다. 21세기 인문학적 통합형 대표적인 사람으로 스티브 잡스가 있습니다. 그는 애플의 아이폰을 개발하기 전에 인도에서 인도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는 독일의 바우하우스의 디자인을 공경하고 애플의 문체로 활용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스마트폰에 모든 것을 융합, 통합하려고 한 혁명가였습니다. 그는 매일 최선을 다하는 삶인가 스스로 물었던 사람입니다.
인문학적인 인간은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입니다. 절대 편협하거나 비포용적인 사람은 인문학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인도로 자기수양의 여행을 다녀온 이유입니다. 종교마저도 크리스도교와 불교 모두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법당과 성당 앞에서 모두 기도를 올릴 수 있고 가르침을 메모할 수 있는 사람이 인문학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인문학은 치매를 예방한다'인 다소 과장된 표현인지도 모릅니다. 인류의 정신의 힘을 강조하여 보여주고자 하는 문장으로 호소력 있게 적었습니다. 수많은 역사적 증명들의 사례들을 볼 때, 정신력의 힘으로 어려움을 딛고 업적을 남긴 위인들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예술적 성취, 문학적 업적, 철학적 사유의 위업들을 이룬 그분들은 높은 연령까지 정신의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여주었습니다. 그 위인들은 인간의 삶이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창작과 글, 강연의 위업을 이어갔습니다. 그분들의 신념과 믿음이 인류에게 후대에게 커다란 동기부여와 영감이 되고 있습니다.
젊어서 이러한 질문을 깨달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젊음은 세상과 사회를 배워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빛나는 젊음 그 자체로 너무 아름다웠던 시절이었기에 의미가 있었겠지요. 하지만, 늙어가면서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만 찾을 수 없는 상황이 올 겁니다. 인문학에서 진선미의 답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중장년은 남은 삶의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의 질문에 명쾌하게 답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시적인 쾌락을 벗어나서, 혹은 육체적인 몰두에서 해방되어 정신의 힘을 발휘하는 창작, 창조, 봉사 등의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조금씩 노력하면 육신이 조금 허약해지고 잔병이 있는 것조차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 정신의 힘은 평정심이 기본이 됩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인류사적인 업적을 남기는 일은 요원합니다. 다만, 우리는 인문학을 공부하여 인류사적 업적을 통해 스스로 질문하고 자신을 거울처럼 닦고 다스릴 수 있습니다. 교양의 힘이 곧 정신의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맑은 정신으로 늙어가는데, 인문학 공부를 강추합니다. 기쁘게 살아가는데 정신의 힘이 가장 큰 위로와 동기부여가 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그중에서 평정심은 지혜와 진리에 다가가기 위한 중요한 단계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이 평온한 마음으로 성찰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게 됩니다.
평정심은 흔들리지 않는 철학적 자세이면서
세상의 모든 흐름들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갖추는 배우는 자세입니다.
불교에서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찌 마음의 평정을 얻지 못하면, 모든 불문을 읽어도 소용이 없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법화경"에서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합니다. "마음이 평정하면 세상도 평정하다"라는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화엄경"에서는 평정심을 얻는 것이 모든 공부와 훈련의 근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경전에서는
"마음만이 만물의 근본이며, 평정심만이 모든 진리의 근원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승기신론"에서는 평정심을 통해 진리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공동체의 평화와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 책에서는 "평정심을 얻는 것은 모든 사람이 함께 이루어야 하는 공동의 목표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있는 고대 중국철학은 도가학, 유학, 불교, 유교 등 다양한 철학적 전통에서 평정심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노자 (道家): "위대한 도는 평온하며 간단하다. 사람들이 복잡함을 찾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평정심을 얻을 수 있다." 이 말은 도가학의 중심 개념인 '무위'를 통해 바라보는 평정심에 대한 노자의 견해를 잘 보여줍니다.
장자 (도가학):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 세상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장자는 이렇게 말하면서 인간의 내면의 평온함이 외부 환경의 변화에 대한 저항력을 강화시킨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공자 (유학): "마음이 평온하면, 언행도 올바르다." 공자는 이런 방식으로 평정심이 도덕적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하였습니다.
맹자 (유학): "마음이 평온하면 사물을 올바르게 볼 수 있고, 사물을 올바르게 보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맹자는 이렇게 평정심과 올바른 인식 사이의 상호작용을 강조하였습니다.
평정심은 욕망에서 벗어나게 도와줍니다. 종교인들이 실천하는 기본 덕목이랍니다.
달라이 라마는
"사람들은 열 개의 손가락을 가지고 있지만, 스무 개의 반지를 산다"
그렇게 과욕을 부리지 말라고 합니다. 과욕을 억제하는 사람에게 평정심이 작용합니다.
다윗은 3미터의 골리앗 앞에서 싸울 때도, 사울에 쫓기어 죽음에 직면하여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기에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겁니다. 그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였기에 평온하고 침착하게 대처하였겠지요.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가 도미니크 수도회의 탁발 학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부유한 가문의 가족들에게 감금당했습니다. 그 시절 매춘부까지 고용해서 젊은 그를 유혹하였던 겁니다.
하지만 그의 평정심과 신념을 막을 수 없었기에 가족들은 그를 놓아주었습니다.
이제 가장 현실적인 21세기 SNS 세상에서도 평정심의 덕목을 찾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하루의 몇 시간을 SNS, 특히 연예인들과 같은 인스타그램에 쏟고 있나요?
물론 인스타그램, 특히 유튜브 좋은 강연에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주는 채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면 쾌락에 치우친 SNS 채널에 몰입하지는 않는지요?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을 몇 시간씩 둘러보면 자존감이 낮어진다고 경고합니다.
여러분은 최종적인 직업적 사회적 성공 다음에 무엇이 인생에 올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성공에 쏠려서 진정한 자신을 잊어버리고 무엇이 인생에 참된 것인지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에 대한 답은 오랜 시간 평정심의 묵상으로 자신을 성찰을 해야 얻어낼 수 있습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한 첫 단계가 '평정심'을 갖는 것입니다. 자신의 올바른 사유와 사변을 통해서 참나를 찾아내는 길을 걸어야만 합니다. 그 길의 시작은 평정심이고 그 길을 걸어가는 동안 잃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인문학 공부를 통해서 여생을 풍족하고 풍부하게 즐기면서 공부할 세상을 만났습니다. 그 공부 또한 평정심으로 흔들리지 않고 가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