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를 꾸짖는 노자의 물, <정치인의 도>에 대하여

21대 대통령 선거일, 노자가 정치인의 도를 꾸짖다


공자가 노자를 만나서 예를 물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때 노자는 공자를 꾸짖었고 그 이유는 '공자가 인위로 예를 규정짓는다'는


노자의 철학에 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공자는 오히려 노자의 책망을 듣고 와서 그는 용 같은 분이라고 제자들에게 고백하였다.


현실주의자 공자와 달리 노자의 수준은 용의 경계에서 세상을 해석하였던 것이리라.


물론 용끼리 서로를 알아본 것도 공자와 노자 모두 범인의 경지를 한참 벗어난 대사상가들이었기 때문이다. 두 용 같은 성현이 모두 '도'를 얘기하였으나 그 도는 각기 다르게 해석되었다.



각자의 잣대로 각자의 도로 세상을 바라보는 용들의 이야기들은


꼭 유권자들 -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갈라선 현실의 메타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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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경하는구나! 마치 잔치에 가는 손님과 같다.


시원시원하구나! 마치 얼음덩어리가 차츰 녹는 듯하다.


순박하구나! 마치 가공하지 않는 듯하다.


광활하구나! 마치 깊은 골짜기와도 같다.


관후하구나! 마치 흐린 강물처럼 시비를 가리지 않는다.


어느 누가 능히 흐린 강물을 고요히 안정시켜


천천히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


<노자도덕경>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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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도', 즉 '물의 철학'이다.


노자에게 물은 잔치에 가는 손님과 같고, 얼음덩어리가 녹는 것과 같고, 가공하지 않은 것이다.


그에게 물은 깊은 골짜기를 흐르기도 하지만 흐린 강물이라고 시비를 가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노자는 그 흐린 강물을 고요하게 안정시키고 천천히 깨끗하게 되기를 바라였다.


노자의 비유 - 강물이 세상이 되어 - 그는 세상을 정화시키고 싶었던 것이리라.




노자의 사상은 결국 사람의 마음, 특히 지도자, 정치가의 마음을 다스리고, 세상을 다스리고자 하는 것을 인위적이 아니고, 물처럼 흐르게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물을 재단할 수도 없지만, 물을 담는 그릇은 만들 수 있다.


물을 가두면 섞게 되지만, 물을 흐르게 하면 생명이 생길 수 있다.


우리 일상에서 물을 컵에 담아놓을 수 있지만, 저수지만큼 크게 담아놓을 욕심은 필요 없다.


욕심을 내어 물을 차지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가야 할 물이 그만큼 줄어든다.


나에게 마실 물 만큼이면 충분하고 그 물을 통해서 생명이 되고 바다로 흘러가고 싶어진다.


각자의 깨끗한 물이 생명이 되어 쌓이고 흘러서 큰 강물이 되고 바다로 흐를 수 있기를 바란다.




노자를 읽으면 규격화된 세상이 달리 보인다. 예를 통해서 바라보면 잘 짜인 세상이 질서정연하게 보이지만, 노자의 물을 통해 바라보면 세상은 인위적인 잣대로 가두어져 있다.



물론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법과 규정이 있어서 도덕과 매너, 예를 가지고 살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 법과 규정마저 함부로 재해석하여 힘 있는 정치인의 시각으로 유리하게 판단하는 사례들이다.




결국 봇물을 터지고 그 안에서 진실의 물이 세상을 뒤덮게 될 것이다.


진실은 아무도 감출 수가 없다. 물처럼 가두고 고이면 섞게 된다.


거짓이 벗겨지고 세상에 드러나는 것은 물이 계곡에서 흘러나와 강물과 바다에 이르는 것과 같다.


거짓의 가면을 쓴 정치인들이 노자에게 꾸짖음을 당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정치인의 가면을 쓴 인위적인 도는 반드시 물처럼 정화되어 드러날 것이다.




오늘 제21대 대통령 선거날이다. 바른 <정치인의 도>가 올바른 세상을 만들기를 바랄 뿐이다.


물처럼 흘러가서 개울물, 강물이 바다에 이를 수 있는 큰 정치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국민들의 준엄한 도>가 정치인을 호령하듯, <노자의 도>를 만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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