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지성인 지도자들을 꿈꾼다<크세노폰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가 페리클레스를 만나듯, 현자들이 지도자들을 만나는 시대..


우리 시대 소크라테스 같은 현인들이 페리클레스 같은 정치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페리클레스는 실제로 소크라테스보다 25년 연장자였지만, 소크라테스를 깊이 존경하였습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면서도 30년간 아테네인들의 선거에서 당선되어 최고 지도자로 아테네를 이끌었던 페리클레스!



우리나라에도 그런 지도자 정치인들이 국민들과 대한민국을 올바르게 이끌어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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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클레스의 연설, 역사상 가장 유명한 감동 연설 중에 하나





크레노폰의 <소크라테스의 회고록> 중에서



페리클레스가 말했다. “소크라테스님, 저도 그대의 말처럼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어떻게 해야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물었다. “그대는 나와 함께 이 주제에 관해 논의하며 어떻게 해야 그런 일이 가능한지 검토해 보고 싶은가요?”



“그러고 싶어요.” 하고 페리클레스가 대답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아테나이인들이 보이오티아인들보다 수적으로 열세가 아니라는 것은 그대도 알 테지요?”



“알고말고요.”



“그대는 훌륭하고 잘 단련된 신체를 어디에서 더 많이 고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요?


보이오티아인가 아테나이인가?”



“그 점에서도 아테나이인들이 뒤지지 않는 것 같아요.”



“어느 쪽 사람들이 서로 더 화목하다고 생각하는가요?”



“아테나이인들입니다. 많은 보이오티아인들이 테바이에 착취당하는 것에 분개하지만, 아테나이에서는 그런 것을 볼 수 없으니까요.”



“또한 아테나이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보다 더 명예를 사랑하고 더 고결한데, 이런 자질이야말로 명예와 조국을 위해 자기희생을 감수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랍니다.”



“그 점에서도 아테나이인들은 비난받지 않을 겁니다.”



“또한 선조의 위대한 업적을 아테나이만큼 많이 물려받은 나라는 없는데, 아테나이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그런 본보기에 고무되어 미덕을 함양하고 자신이 용감한 전사임을 보여주려 하지요.”



“그것은 모두 맞는 말씀입니다, 소크라테스님. 하지만 보시다시피 레바다이아에서 톨미데스와 수천 명이, 그리고 델리온에서 힙포크라테스가 참패한 뒤로 아테나이인들과 보이오티아인들의 계는 뒤바뀌어 보이오티아인들에 대한 아테나이인들의 위세는 꺾이고 테바이인들의 긍지는 높아졌습니다. 그 결과 전에는 자기 나라 안에서도 라케다이몬인들과 다른 펠로폰네소스인들의 도움 없이는 감히 아테나이인들에 맞서지 못하던 보이오티아인들이 지금은 스스로의 힘으로 앗티케를 침공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으며....,



<소크라테스 회상록>, 크세노폰 지음 / 천병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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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아테네가 최강국의 시대를 열었던 것은 현명한 지도자와 현자들이 함께 나라를 이끌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결코 일방적인 지도자의 힘이 아니었다고 확신합니다. 더불어 페리클레스는 인문학을 사랑하는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는 민주주의 사회의 정치가가 어떻게 연설(대화)을 통해서 민중을 이끌어야 하는지 잘 알고 실천하였습니다.



페리클레스는 최강의 아테네 전성기를 지혜로 이끌었던 최고 지도자였습니다. 그가 권력의 정점에 있는 동안은 스파르타와 전쟁을 지연시키고 해양왕국으로서 델로스 동맹의 맹주로서 아테네 제국의 기틀을 만들었습니다.




페리클레스는 집권 기간 동안 아테네 문화를 융성시키고, 유네스코 1위 유적지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아크로폴리스를 부활시켰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민주시민사회, 외교에 이르기까지 모두 최고 수준으로 아테네를 이끌었던 페리클레스가 최고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소크라테스 같은 철인들에게 경청하고 자유로운 지식과 지혜를 펼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허망하게 떠드는 말뿐인 철인이 아니었고 몸소 실천하고 산파법으로 젊은이들과 깨우치는 대화를 나누는 철학가였습니다. 페리클레스 사후 그러한 소크라테스를 껄끄러워하는 아테네 정치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성자로 추앙받는 현자, 소크라테스는 아테네를 위해서 살았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3차례 참여하였고, 아네테인들을 구했으나 묵묵하게 보병으로 용맹하게 싸웠습니다. 하지만, 전쟁의 비참함에 더욱 깊이 철학에 빠져들었습니다. 한 번도 아테네 땅에서 벗어나 여행을 하지도 않았던 그는 진정 아테네를 사랑하였습니다. 심지어 소크라테스는 도주할 수 있었으나 아테네 민주주의가 주는 사형 언도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순교하였습니다.




한국의 국민들도 아테네인들처럼 투철한 나라 사랑이 있고, 명예와 자존감이 강하며 세계적으로 우수한 역량이 넘칩니다. 우리를 똘똘 뭉쳐서 앞으로 나아갈 페리클레스 같은 지도자들이 이끌어준다면 한국인의 부지런함과 창의성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지도자들은 멘토들과 전문가들의 조언에 경청하고 국민 통합해야 하는 시대정신을 이끌어주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지도자들이 무엇보다도 인문학을 사랑하는 지성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페리클레스가 일부 아테네인들조차 꺼려 하던 소크라테스 같은 철학, 사상가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게 해주는 장을 열어주었고, 그도 귀 기울였던 것처럼... 우리 시대도 그런 분위기로 인문학적인 민주주의를 이끌었으면 좋겠습니다.


아테네 역사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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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여행기>초간단 그리스 역사, 아테네 소크라테스가 걸었던 그곳, 아크로폴리스 아래에서

최초의 순교자 철학가, 소크라테스를 흠모하고 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에 대한 공경이 흠모欽慕로 격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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