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맨작가의 소설
"몸은 고향에 남으라는 강요를 받는데, 우리의 정신은 여행한다. 우리는 모방한다. 모방이란 정신의 여행(방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자기신뢰 - 인생의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_현대 지성 클래식 36>,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이종인 옮김
"산다는 것은 경험하는 것이지 삶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하고 앉아있는 것이 아니다."
<파올로 코엘류의 소설, 알레프 중에서>
파올로 코엘류는 순례자의 삶을 이야기하였다.
이 두 책의 두 작가, 두 가지 다른 사상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여행에 대하여 두 작가는 그들 작품 속에서 다른 시각, 다른 생각을 적은 것이다. 삶은 산티아고 순례자와 같은 여행인가? 아니면 여행은 방황인가? 고향이나 우리 동네, 각자의 집에 머물면 삶의 의미를 깨닫거나 깨닫기 위한 좋은 실천을 할 수 없다는 말인가?
일반적으로 구도와 순례의 여행 - 아니 적어도 인문학적인 여행, 다른 세상의 문화를 알려고 하는 여행에서 우리의 삶의 크기와 깊이는 분명히 확장한다. 설악산의 대청봉이나, 지리산의 천왕봉을 오른 사람은 산 밑에서 오르지 못한 사람보다 높은 시야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 높은 시야가 반드시 높은 식견이나 지혜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승이나 구도자들이 높은 산의 암자에서 수행하는 것을 보면, 그 세상에는 지상의 도심과는 다른 것을 깨닫게 되는 정기가 흐를 수 있다. 코엘류는 순례자의 여행을 그의 작품들에서 그렇게 구도적인 것으로 그려내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여행을 마음껏 체험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기껏해야 몇 년에 한번 해외의 유명 휴양지 명소를 다녀올 수 있을 뿐이다. 국내의 여행은 좀 다르겠다. 여하튼 장거리 여행 없이 이방인의 문화에 오랜 시간 노출됨 없이도 우리는 구도와 순례를 할 수 있을까?
에머슨은 <자기 신뢰> 등 그의 작품에서 심지어 피렌체에 억지도 여행을 갔다가 후회하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에머슨의 제자라고 할 수 있는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오히려 여행이 아니라 월든 호숫가에 은둔하였다. 에머슨이 정신이 여행을 모방하는 것을 경계하고 방황하지 말라고 했지 않은가?
나는(호프맨작가) 스무 살에 나름대로 구도 여행을 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때 전국 일주를 몇 개월간 하면서 밥을 굶어가면서 산천을 떠돌았다. 그때 깨달은 것은 책을 읽지 않고 공부하지 않는 여행은 방황이라는 지점이었다. 그 시절, 나의 청춘은 확실히 방황하였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얻은 것도 있었다. 방황을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하였기 때문에 얻은 점이 있었다. 확실하게 구도자가 되던가? 아니면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틀에 맞추어서 그 안에서 성장하는 방법을 실천하는 것이 좋았다. 전자의 방법은 온몸을 던져서 구도자가 되는 것이고, 후자의 방법은 일상을 통해서 천천히 단단해지고 성장하는 방법이다.
철학가, 임마누엘 칸트는 그의 시곗바늘처럼 정확한 산책의 시간을 지킨 것으로 그 동네 사람들이 시계를 맞추었다고 한다. 칸트는 그의 고향 쾨니히스베르크 반경 150Km를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또한 장 자크 루소의 <에밀>을 읽으면서, 또 '프랑스 시민혁명'을 접하고 놀라면서 그의 산책 시간을 잊어버렸다는 일화도 있다. 그는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고도 철학가의 철학 하는 여정의 삶을 80세까지 이어갔다. 그는 70세에 이르기까지 그의 철학서를 출판하였고 총장에 선출되는 영예를 안았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커피와 담배를 즐겼던 칸트는 1804년 2월 12일 새벽 4시, 80세를 향년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그것으로 좋다(Es ist gut)”라는 말을 남겼다는 것은 그의 삶은 구도적인 장거리 여행, 이국적인 문화의 여행이 필요 없었던 것이다. 그의 철학적 대집필은 서양 철학의 거대한 저수지로 플라톤의 각주들을 완성하고 현대 철학의 시작을 방류하는 집대성이었다. 그의 삶의 여행이라면 동네 산책이 고작이었지만, 보통 사람이 체험할 수 없는 특별한 삶이다.
연암 박지원 선생님은 44세 그의 인생 후반기에 청나라 여행을 다녀오면서 <열하일기>를 세상에 선보였다. 그의 삶이 구도적인 여행이었지만, <열하일기> 이전과 이후로 그의 인생은 양분된다. 그가 죽기 직전 남긴 유언에서 '깨끗하게 목욕시켜 달라'라고 하였단다. 우리 인생은 어차피 여행이 아닐까! 멀리 가던 가까이 가던 태어난 집을 나서면서 살아왔으니까 여행이리라. 삶의 여행 후에 목욕을 하고 저세상을 가는 것이 얼마나 깨끗하고 반듯하게 살아온 것의 증명이 아닌가!
여행을 방황이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일 게다. 하지만 여행을 방황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다. 또렷한 인생의 여정에 목표가 있어야 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그곳에 이르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흐릿하게 나그네처럼 이리저리 쏘다니면서 목표지점을 찾지 못하면 방황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반드시 목적이에 도착한 후 출발지로 돌아와야만 한다. 초심으로 돌아와서 얼마만큼 이루어내었는지 가늠하여야 할 것이다.
위의 글을 올리면서 오늘 이룬 개인적인 성과를 기록하여 함께 추가한다.
<호프맨작가의 2025년 6월 말 조그마한 성과>
새로운 작품 새로운 책 집필이 퇴고 완료되었다. 작품을 집필하는 것도 하나의 구도 여행과 같다.
장편소설 한 작품은 일반 책의 사이즈로 보면 약 400여페이지 이상의 분량이다. (하단 캡처 문서정보)
일요일 시간 5시간을 투입하여 드디어 퇴고 완료한다. 하지만 끝에 이르면 언제나 다시 초심이다.
세상에 내어보내는 나의 책들이 모두 빛을 발하는 것도 욕심이다.
나의 소설에 등장하는 무대는 19세기 말 ~ 20세기 미국 동부, 광복 직전 상하이, 한국의 경제성장기, 가까운 미래까지 망라한 무대를 여행한다. 여행으로 치면 동서양을 횡단하고, 시공간이 연대기 순으로 펼쳐진다. 이 소설의 집필도 나에게 하나의 집필 여행이었다. 1년 가까이 집필, 내 인생의 경험이 담겨 있다.
7월부터 새로운 시공간의 무대로, 인문학적 소설의 집필로 구도 여행을 다시 시작한다. 새로운 인생 작품을 다시 출발하려고 한다. 에머슨의 글처럼 세계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나의 구도 여행은 창작과 집필에서 끊임없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