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맨작가의 피아노 콘서트 북토크 나는 누구인가
중년이 되어서 5.5년 가까이 그토록 열심히 날마다 글쓰기 열정을 실천하는 이유를 고백합니다.
다시는 후회하지도 실패하지도 않기 위해서랍니다.
10대 시절 피아노 연주가가 되고 싶었는데 실력이 안되어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음악에 한이 맺혀 있었을 때, 그때 글을 만났습니다.
글쓰기 세상에서 문학에서 새로운 세상을 보았습니다.
글을 음악처럼 예술 창작품처럼 쓰고 싶었지요.
글쓰기가 음악처럼 세상의 울림이 되고 싶었습니다.
미술 작품처럼 감동의 색채로 글을 쓰고 싶었지요.
그렇게 문학을 욕망하는 것이 머나먼 꿈이었습니다.
새파랗던 그 젊은 시절, 너무도 세상이 두려웠고 패기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절감하고 절망하였습니다.
그로부터 40년이 흘러 중년이 되어서야 '피아노 치는 작가, 시인'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음악을 큰 마음으로 여유롭게 즐기는 '소요유'를 알게 된 것도,
음악과 예술정신과 글쓰기 작가정신이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되는 것도,
피아노니스트 전문 연주가 아닌 보통 사람으로서 오히려 더 편안하게 연주하고 즐길 수 있게 된 겁니다.
사랑하는 인문학 공부를 하게 되면서 그렇게 푸근하게 넓은 가슴으로 나를 품어줄 수 있게 된 거지요.
오랜 세월 작가의 꿈도 접고 가장의 역할에 충실한 사회인이 되어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30여년 피아노 음악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렸고,
문학작품을 접할 때마다 눈물이 시렸습니다. 저의 깊은 본성은 피아노를 연주하는 작가였던 겁니다.
장자는 이렇게 음악론을 펼칩니다.
"음악은 순간의 예술이고 자연의 변화를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연주한다"라고 했습니다.
음악의 각각의 순간이 절정이라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음악 연주는 최선의 음을 나타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장자의 함지 음악, 음악론에서는
인위적인 의도성, 예측성을 해체하는 음악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나는 또한 음양의 조화에 해와 달의 밝음에 따라 ... (중략)
옛 가락에 구애받지 않았다
인위적인 변화가 아니다. 하늘의 음악은 패턴에서 벗어난다.
골짜기를 만나면 구더기를 만나면
마음의 욕망의 틈을 막고
정신을 지키면서...
우리 마음의 흔들림은 과거의 관행이 만든 틈이다.
자연적 정신의 순수성을 지킨다.
무의식적 의도성이 틈이 생길 때, 음악으로 메워준다.
순간의 절정에 머무르면서도
변화의 흐름에 나아간다. "
<장자의 음악론>
10월 25일 저의 북콘서트에서 제가 <피아노 연주와 시낭독>을 함께 합니다.
그간 연습한 곡들 중에서 드뷔시의 피아노곡들과 영화 음악 등으로 연주합니다.
신비스럽고 몽환적인 드뷔시에게 하늘의 음악, 장자의 사상을 떠올리게 됩니다.
피아노를 연습하고 연주하면 장자의 음악론이 참으로 기가 막히게 들어맞습니다.
음악은 사람이 연주하지만 대자연- 하늘의 음악이 되어야 합니다.
천락(天樂)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하늘의 음악, 하늘의 즐거움이 음악이라는 겁니다.
공자도 먹는 것을 잊고 음악을 수 개월동안 즐기고 연주하였다고 하는 그 '하늘의 즐거움'입니다.
사람이 연주하는 것이지만 사람의 인위적인 것을 벗어나는 하늘, 대자연을 연주하는 것이지요.
음양의 조화를 연주하는 것이지만, 때때로 관행적인 패턴을 초월하는 음악이어야 합니다.
그러한 음악적 영감에서 시를 짓고 문학을 할 수 있기에 문예는 뭉클한 감동이 됩니다.
노나라 교외에 바다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노나라의 제후는 이 일을 길조로 생각해서 다소 흥분했다. 그는 새를 신성한 종묘로 모셔서 술을 바치고 음악을 연주하고 온갖 고기를 내놓는 등 극진한 대접을 했다. 하지만 새가 눈의 초점을 잃더니 술도 고기도 입에 대지 않고 사흘 만에 죽어버렸다.
노나라 제후는 새에게 최상의 대접을 한다고 했지만 최악의 결과가 일어난 것이다. 그는 바다새를 사람의 방식이 아니라 새의 생태로 대접했더라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터이다. 이런 일은 우리 주위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어떤 사람이 우울하던 차에 명상 음악을 듣고서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도 들어보라고 권한다. 상대가 싫다고 해도 자주 들으면 좋아하게 될 것이라며 강권하기까지 한다. 내가 좋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당연히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물론」에서 장자는 철저하게 양식화된 사람의 퉁소[인뢰], 바람이 불어야만 울리는 땅의 퉁소[지뢰]와 자유로운 하늘의 퉁소[천뢰]를 구분했다. 천뢰天籟는 사물이 제도와 타자의 구속을 받지 않고 제 본성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음악으로 한정하면 천뢰는 모든 사물이 다른 것에 의지할 필요가 없이 그 자체로 악기라는 것을 말한다. 즉 “모든 사물이 악기이다.” 이 주장이 우리의 언어 습관과도 그다지 어긋나지 않는다. 새가 지저귀는 것을 “새가 노래 부른다”라고 하고 가수가 아니더라도 보통 사람이 제 속내를 풀어내는 것을 “마음을 읊는다”라고 한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든 존재가 제 소리로 살아가는 악기인 것이다.
이처럼 천뢰는 사물이 제 본성대로 노래 부르는 자유로운 삶의 음악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천뢰의 특성이 알려지지 않으면 어떤 게 자유로운 삶의 음악인지 알 수가 없다. 장자는 함지咸池 음악론을 통해서 하늘의 퉁소가 과연 어떻게 울리는지를 설명하고 있다.(「천운」)
북문성北門成은 황제黃帝가 들려주는 함지 음악을 세 번이나 듣고서 그때마다 색다른 경험을 했다. 처음에는 깜짝 놀라서 두려움의 충격을 받게 되었고 다음에는 충격에서 벗어나 경계심을 늦추게 되었고 마지막에는 자신이 가진 생각이 옳고 그른지 모르게 되었다.
<동양철학자 신정근님의 글 인용>
글을 쓰는 것도 대자연의 음악처럼 연주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장자의 이야기처럼 글쓰기도 악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통해서 나의 마음 나의 영혼의 악기를 잘 연주하면 좋겠습니다.
자신을 다스리고 깨달어가는 작가, 그렇게 자신을 성장시키는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경계를 넘어설 수도 있는 글쓰기가 되도록 노력하는 작가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이 세상의 도리와 이치, 세상의 철학을 담고 싶고, 하늘의 뭉클한 감동을 전하고 싶습니다.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지만, 우주와 대자연의 가르침을 읽고 써내고 싶습니다.
그렇게 음악처럼 예술처럼 글쓰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번 저의 책 <나는 누구인가> 출간 북토크의 한 주제는 <음악처럼, 예술처럼 글쓰기>입니다.
많은 참여 환영합니다. 좌석이 절반정도 남았습니다.
호프맨작가의 <클래식 음악 피아노 연주 + 북토크>에 초대합니다.
seolhon@naver.com
10월25일, 토요일 오전 10시, 오목교역 도보 5분거리의 피아노 홀입니다.
선착순 좌석 확보로 좌석이 마감될 수 있습니다.
<인문학 향기 충전소> 정규모임 10월 25일 북토크에서,
'피아노 치는 시인' 호프맨작가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10월 25일 호프맨작가의 <피아노 연주 + 북토크> 참가 네이버 폼 신청서 링크 클릭해주셔요.
20초면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