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문학을 공부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가?
서양 문학의 최고 고전의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이의 주인공 오디세우스 아시지요? 그는 왜 트로이 전쟁 10년도 모자라서 고국 고향의 이타카로 돌아가는데 또 10년의 여정을 항해하였을까요? 세상의 모든 모험을 겪어도 부족한 것이 무엇이었기에 오디세우스는 고향의 가족들에게 돌아가고자 하였을까요?
호메로스는 이 작품을 통해서 묻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우리가 인문학을 배우게 되는 이유들 중에 하나입니다.
젊어서는 니체나 헤르만 헤세에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문열 작가나 이외수 작가의 작품에서도 동기부여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강렬한 열망을 표출하고 세상에 펼칠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어야겠다는 갈망이었죠. 질풍노도의 시기, 출가하고 싶은 욕망 - 그 시기를 지나고 나니 저 자신과 더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중년이 되어서는 '평정심', '흔들리지 않고 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젊어서 폭발할 것 같은 열정과는 다른 고요하게 정박한 배의 선장이 되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 안에서 바다가 잔잔해질 것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 바다를 오디세우스처럼 항해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습니다.
그것이 인문학을 배우면서 성찰하게 된 성장이었습니다. 자신을 제대로 알아가고 무엇을 해야할지 깨닫게 되고 실천하는 것, 그 모든 것이 평정심에 있었습니다. 스토아 철학이나 불교 철학에서 강조하는 그것입니다. 세상을 바꾸기 보다는 나 스스로 바꾸어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것이 평생의 과업이 되어야 합니다.
오디세우스의 이타카 - 우리의 돌아갈 고향에 가까워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뛰어놀던 어린 시절 행복하던 순간들의 기억들이 있습니다.
그때는 엄마, 아빠의 슬하에서 그저 놀기만 해도 행복하였지요.
하지만, 어른이 되어 더이상 누군가 도와주지 않고 스스로 일어서야 할 때를 깨닫습니다.
그 때, 진정한 나의 집, 고향을 만들어 내는 겁니다.
24년째 해외살이를 하고 있는 나도 남은 인생을 정리할 돌아갈 자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비록 평생을 떠돌아서 세상 곳곳을 누비면서 도전하였더라도 우리는 돌아갈 곳이 필요합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영웅이었습니다. 세상 끝에서 삶과 죽음의 도전에서도
살아남은 자였고 동시에 집으로 고향으로 이타카로 10년만에 돌아가게 됩니다.
우리네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인문학을 배우는 것은 나의 고향, 나의 집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 이유들은 실천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삶의 철학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삶의 철학은 생각, 말, 글, 행동과 실천을 바꾸는 일입니다.
살다보면 내가 텅 비워져 있을 때가 옵니다. 어떻게 채워야 할까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숙제가 인문학이 주는 질문들입니다.
사랑하는 방법은 자신을 바꾸는 일입니다.
인문학의 고대로부터의 지혜들을 통해서 바꿀 수 있습니다.
바꾸는 방법은 생각, 말, 글, 행동을 변화시키는 겁니다.
고대, 고전의 지혜들을 통해서 바른 사람의 나를 만나는 일입니다.
오디세우스가 왜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고자 했는지?
왜 그가 오디세이에서 만난 영생의 유혹도 뿌리쳤는지?
그가 선택한 유한한 삶의 자신과 가족들에게 돌아가려하였는지?
고전은 우리에게 화두를 던집니다.
그 화두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스스로 묻게 되는 것입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의 목마 전술을 창작한 교활한 지성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자만에 빠져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여정에서 인내를 배우게 됩니다.
친절한 도움을 받아서 이타카로 돌아갈 수 있게됩니다.
그 오디세이 여행중에 평정심을 배우게 되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오디세이아 여정 중에서 옮겨봅니다.>
첫번째 싸이렌들의 노래에 직면했을 때의 장면입니다. 싸이렌들은 그들의 달콤한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해 바다에 빠뜨려 죽게 만드는 생물들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이를 예상하고 선원들의 귀에 밀랍을 막아 놓고, 자신은 돛대에 묶여 싸이렌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준비합니다. 그는 싸이렌들의 노래에 이끌리지 않고 그의 목표를 잃지 않는 평정심을 유지하며 위기를 극복합니다.
또 다른 장면은 그가 눈 한쪽이 빠진 거인으로 포세이돈의 아들인 폴리페모스에게 포로로 잡혀 있었을 때입니다. 그는 폴리페모스가 잠든 틈을 타서 그의 눈을 찔러 보는 계획을 세웁니다. 이 계획을 실행하면서 그는 자신의 두려움이나 긴장감을 잘 다스리고, 평정심을 유지합니다. 이런 평정심 덕분에 오디세우스는 결국 폴리페모스를 속이고 탈출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런 여러 장면들을 통해 오디세우스는 신체적인 힘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강인함과 평정심으로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디세이'가 단순히 모험 이야기를 넘어 인간의 정신적 성장과 자기 극복의 이야기임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코로나 시절 한때 우울증이 걸린 나날들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 가장이었던 내가 우울하였고 부정적인 말만 쏟아내었기에,
고국에 있는 가족들이 모두 좌초된 선박의 승무원들처럼 어쩔줄 모르게 되었습니다.
나를 잊어버리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오디세우스를 생각하였습니다.
그 때, 인문학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고전의 지혜를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자신있게 말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게 된 내가 증인입니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들을 뼈저리게 깨달았던 사람입니다.
불안하고 초조한 우리의 삶에서 평정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전과 고대의 지혜들, 적게든 수 십년부터 수 백년 전의 위인들이 전해준
지혜들을 만나고서 불안하게 살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완벽한 평정심과는 아직도 한참 거리가 멀지만,
평온한 마음으로 공부하고 수행하는 것을 글로 적어갑니다.
글로 적어가면서 나를 사랑하게 됩니다.
진정한 나를 다듬고 조각하고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들어 갑니다.
삶은 좋은 깨달음의 연속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내일 공개합니다. 평정심을 위해 깨달은 선순환이 작동되고 있는 것을 공개하겠습니다.
모두 인문학을 통해서 깨달은 점들입니다. 공유하고 싶습니다. 이웃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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