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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초대합니다<첫 시집 북토크 피아노 연주> 시인으로

호프맨작가나는누구인가시집


시인이고 싶었습니다. 스무 살 방랑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헤르만 헤세처럼 유랑 시인이 되고자 가출하였습니다.


출가라고 우겼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저 막무가내 청년의 가출이었습니다.


나가 누구인지? 나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카오스의 가출이었습니다.


그렇게 35여 년 세월이 흘러서야 시집 한 권을 모아봅니다.



눈물과 빗물이 섞여서 흘러내리는 시집입니다.


눈물과 빗물을 접착제로 붙일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이 흘러내렸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답을 하게 된 시집입니다


35년 만에 답을 하게 된 꽤나 늦어버린 시집입니다.



그 사랑은 살아있는 것도 아니 존재하는 모든 것들 사물들에게로 향하는 겁니다.


그 사랑은 사람에 대한 사연의 것이고 대자연에 대한 공경의 것입니다.




드뷔시 달빛을 연주하는 호프맨작가 영상입니다.


내일 이 곡을 연주하는 호프맨작가 북토크 + 피아노 연주에 초대합니다.


#호프맨작가 감성 인문학 #인문학향기 충전소


https://m.blog.naver.com/seolhon/clip/12121259



헤르만 헤세가 싱클레어로 <데미안>을 출간하였듯,


저도 <호프맨작가>의 필명으로 당당하게 출간했습니다.


시인이 이 시들 한편 한편에 울었기 때문에,


이 시들에 젖어들 사람들도 울 수 있을 거라고 믿어보고 싶습니다.



첫날 광화문 교보문고에 처음 와서 감격적으로 저의 첫 시집책을 처음 서점에서 만났습니다.


<나는 누구인가>시세이집을 출간한지 한 달 동안 고향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네요.


2023년 인문학 교양서 <스니커즈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을까> 이후 세 번째 단행본


출간 기쁨입니다. 작가는 출간한 책과 블로그 글쓰기로 이력을 보여주는 것이니까요..


물론 올봄 출간, 글벗들과의 공저 <나의 중년은 청춘보다 아름답다> 에세이도 뭉클한 감동이었습니다.





세상에 내어놓을 때까지 50여 편의 시를 깎고 다듬고 광을 내었습니다.


누가 읽어도 거칠게 느껴지지 않도록


어떤 분이 감상을 해도 쓰거나 해롭지 않도록


누구라도 삶을 사랑할 수 있도록


보기 좋게 듣기 좋게 삼키기 좋게 절차탁마 마무리를 하였지만,


퇴고는 해도 해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집을 내는 일도 꼭 조각품을 깎아내고 다듬는 것과 같네요..



미켈란젤로는 형체 없는 돌을 보고 그 안에 형상을 그리면서 만들어 갔다고 합니다.


시인은 꼭 언어들을 그렇게 갈고닦고 눈부시게 만드는 조각가와 같은 작업을 합니다.



시들을 조각하여 더 이상 다듬을 필요가 없을 때까지


낭송하고 또 낭송하렵니다.


시인이 자신의 시를 먼저 낭송하여야 그 시어들이 어떻게 들리는지 알게 됩니다.


낭송하여 시를 감상하는 것은 악보 속의 노래를 직접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시는 절대 악보 속에 모셔져서는 안됩니다.


노래하고 낭독하여야 비로소 시의 생명력을 얻게 된다고 믿습니다.



호프맨작가의 첫 시집.. 35년 만에 처음 시집을 출간하였습니다.


내일 10월 25일 북토크에 많은 분들을 초대 싶습니다.


저의 피아노 연주를 배경으로 시 낭송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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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질문은 기원전 수백 년 전부터 시작된 인류의 질문이었습니다.


인도에서는 베다 문헌과 우파니샤드에서 기원한 <아트만>에서 자아에 대한 탐구가 수백 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아트만은 개인이 지닌 본질적 자아, 영혼을 뜻하며, 인간의 내면에서 변하지 않는 실체로 여겨집니다.



이를 불교 철학에서 자아는 무아로부터 해탈에 이르는, 나의 집착을 버리는 경지까지 발전하였습니다.



동양 철학에서는 나 자신을 아는 것에 대하여 강조한 어록이 있습니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知之爲知之),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不知爲不知), 이것이 아는 것(是知也)이라 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서양 철학의 진정한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사실 (그리스어로 γνῶθι σεαυτόν 그노티 세아우톤)는 고대 그리스의 오래된 유명한 격언입니다 그리스의 여행담 작가인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의 프로나오스(앞마당)에 새겨져 있던 것입니다.



인간의 철학은 나 자신을 아는 것, 무지를 아는 것으로, 모르는 것을 아는 것에서 출발한 것이지요.


그렇게 시작된 철학의 시작은 오늘날까지도 참나는 발견해가는 인생을 완성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어서 깨닫지 못하였더라도 나이를 먹으면서 <나>라는 사람은 무엇을 해야할지? 어떻게 살아야할지 찾게 되는 것이 사람의 생애입니다. 중년이 되어도 그 지점을 찾지 못하고 산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특히 중년에 이르면 이 질문에 답변할 수 있는 나의 정체성을 찾은 사람은 충만한 삶을 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적은 시, '억새풀'이 다 자라면 자신을 곧추 서서 흔들려서 절대 쓰러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그 억새풀은 누구와도 대체될 수 없는 존재인데, 사람의 삶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나는 누구인가>의 제목으로 저의 첫번째 시세이집을 출간하였습니다.


중년의 한 사람이 작가로서 정체성을 찾아간 스토리의 에피소드를 시로 옮겼습니다.


특히 예술이 주는 참된 영감이 작가에게 주는 뭉클한 감동을 시집에 실었습니다.


저의 솔직한 고백들을 시로 엮어서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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