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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맨작가 감성 수필 > 쓰러진 나무 그루터기가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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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풀 위로 나비가 날아다녔다. 나비효과일까?


어디에선가 새소리도 들려오고 파동이 커져 전원교향곡이 들린다.


곤충들이 수풀을 성큼 성큼 기어다니고 있었다. 청량한 바람이 일렁이는 곳에서


수풀이 파도를 치고 움직였다.. 마치 피아노 건반 출렁이는 것 같았다.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자연이 나를 부른다.


뜨거웠던 지난여름의 한순간이 가을 바람이 되어 시공간을 휘어지게 하였다.


공간이 담을 수 있는 시간 속에 사람들의 세상이 아니고 식물들, 곤충들, 새들의 세상에 들어간다.



나비가 곁에 있는 나의 존재를 무시하고, 시치미를 떼고 수풀 사이를 누빈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나의 어깻죽지에서 이상의 그 날개가 돋았으면 좋겠다.



지난밤 폭풍우가 공기의 충돌에서 오는 무서운 괴기 영화의 휘파람 소리를 들려주었다.


인터넷 신호도 느리게 하고 사람들의 세상을 지배하였다. 대자연이 이따금 경고를 준다.


나무들은 뿌리부터 휘청거리는 것 같았다. 비폭탄이 물웅덩이를 패이게 할 정도로 간밤은 긴장이었다.



오늘 아침의 내 작은 정원 뜰에서는 모두가 평화로왔다.


새들이 나무를 쉼터 삼아서 이리저리 오르락내리락하여도 건강한 나무들을 꿈쩍하지 않는다.


이 평화 속에서 가늘어진 바람을 흥건하게 젖어들면서 정원의 멋들어진 나무가 된다.


그것은 간밤의 비명을 뚫고 모두를 위해서 희생한 한 존재를 통해 이루어낸 평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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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충격의 현장, 한쪽에 시선이 멈춘다. 그 사건의 현장에서 쓰러진 나무 그루터기가 되어본다.


처음에는 간밤에 쓰러진 이 나무의 시체를 보고 슬퍼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천상 성품이 형사는 못된다. 추리소설도 탐정소설도 쓸 수가 없다. 대신 애도의 시를 짓고 싶었다.


모두가 평화로운 지금 저 한 그루 나무의 완전한 죽음을 애도할 수 있다.







네가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하늘에 뻗었을 때


네 주변에는 새들, 곤충, 바람이 머물렀고,


사람에게도 그늘을 주었겠지.


그들이 너의 희생을 기억할 수 있을까!


지금의 평화는 쓰러진 너를 애도하고 싶구나.


너무 슬퍼하지 않으련다.


너의 그루터키가 생명의 부활을 위한 씨앗이 되리라.


살아있는 나의 삶에도 주변에 희망이 되면 좋겠다.


오래 묵은 나무는 다중 다층의 거대한 생태계로 퍼지는


죽어서도 전하는 희망의 개체다.



차라리 흙 속에 묻힌 나무의 그루터기가 되고 싶다.


뽐내는 잎사귀와 열매가 되기 보다


그루터기에서 무너지지 않는 희망을


겹겹이 쌓고 싶다.


<호프맨작가의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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