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맨작가 블로그사피엔스 겨울이 지나 봄은 온다
혹독한 겨울 한복판, 세상이 얼어붙어도 멈추는 것이 아니다.
얼은 땅 아래 봄을 기다리는 씨앗들이 움트는 새싹을 기다린다.
우주가 돌고 돌아 운행되듯, 계절은 순환하고 2월의 봄기운이 오리라!
'도道'는 멈추는 것이 아니기에 생각이 한곳에 머무르지 않게 해준다.
함박눈이 앞을 가리고 손발이 시려워 얼어붙는 겨울철에도 '도道'는 희망꽃을 피워 오르게 하리라!
하늘은 누가 움직이는가?
땅은 누가 멈추게
하는가?
해와 달은 누가 자리를
다투게 하는가?
누가 천지 일월의 질서를
부여하는가?
혹은 (기계장치)에 묻혀서 어쩔 수 없이 하늘이 움직이는가?
아니면 저절로 돌아가서 멈출 수 없이 천지가 움직이는가?
장자의 <천운天運편>
주재자가 계속 주재하고 관리하지 않는다면? 운행의 질서에 의해서 움직이지 않는가?
질서를 부여한 것인 누구인가? 움직이는 힘은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에 답을 하고 싶어진다.
겨울의 한복판, 동토의 세상, 동면이라고 해도, 생명은 도道에 의해 스스로 운행하고 있다.
장자의 해석가는 답한다. 세상을 작동시키는 주재자는 없다. 다만 세상이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능동자는 있다. 천지 운행의 주재자는 없지만 주관하고 있는 질서는 있다는 것이다.
장자를 읽고 이해하려고 하면 세상의 이치를 가늠할 수 없는 경계 너머로 생각하게 된다.
장자의 내편 1장 <소요유逍遙遊>에서 거대한 물고기- 곤, 거대한 새- 붕이 등장하는 우화가 있다.
붕이 날아가는 남쪽의 천지의 연못이 그려진다. 거대한 우주적 크기의 세상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 나의 상상은 아지랑이 같은 작은 자연의 세상도 그려진다.
곤충들과 그보다 작은 미토콘드리아의 세포들은 움직인다.
세상을 움직이는 질서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장자처럼 세상을 바라보면 갈등과 다툼이 쓸데없이 보인다.
그리고 그 위에 하늘의 질서에 빠지게 된다. 그 질서를 노장사상에서는 <도道>라고 하였다.
그러나 독재국가의 독재자들의 한줌도 안되는 짧은 생애의 권력, 강대국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그들의
제국주의적 권력이 도道에 어긋난 것을 모른 척한다.
세상에 수많은 도道가 존재한다. 그 도는 장자가 전하고자 하였던 <도道>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장자의 <도>를 다시 해석한다. 스스로 도道를 찾지 못하고 죽는다면 이 생이 허무하지 않은가!
우리 각자의 도道가 있겠다고 생각한다. 각자도생이라고 하지 않는가!
각자가 내다볼 수 있는 도道의 세상, 삶을 작동시키는 도道이다.
그 도道는 작을 수도 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도道를 깨닫고 다가서려고 노력하는 우리들이 아름답다.
이제 한겨울이다. 혹독하고 거친 칼바람이 불어와 몸을 움츠리게 된다.
이 또한 지구촌을 운행하는 사계절의 순환이기에 피할 수 없다.
다만, 나의 <도道>는 실천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이 계절을 이겨내리다.
하루의 시간, 한달의 시간, 계절의 시간, 겨울과 봄이 바뀌는 시간 속에 나는 도道룰 찾아낸다.
겨울을 이겨내는 것이 꼭 칼을 베는 것이 아니고, 소요유逍遙遊처럼 유유자적 즐길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 겨울은 나에게 두려움이 아니다. 성탄절과 새해 첫날이 있는, 12월 말과 1월 초를 기쁘게 맞이하였다.
이제 2월 설에 고향에 갈 날을 기쁘게 기다리는 순환의 계절이다.
인류의 지혜는 혹독한 겨울에 오히려 기쁜 날들, 명절과 이벤트를 많이 만들어놓았다.
이 세상을 움직이고 작동하는 것은 결국 나의 <도道>에 질서가 부여되는 것이다.
원래 청년시절 나의 호는 雪魂이었기에 겨울의 혼령이 되어도 좋다.
겨울에 바뀌는 연말 연초가 좋기 때문이다. 2월의 설 휴가가 기다리고 있다.
세상이 바뀌고 새롭게 순환하는 겨울이 좋다. 기다림이 있어서 좋다.
우리들 마음의 도道는 겨울에 부활한다. 봄에 단단해지고, 여름에 왕성한 기운이 되어
가을에는 수확을 거두어야 한다. 계절이 도道를 부른다.
시간과 공간이 교차되는 나의 존재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소망한다.
계절은 반드시 순환하여 봄을 맞이하게 된다. 머지않아 2월이 다가올 것이다.
오히려 한겨울 1월이면 봄을 그리워하면서도 봄을 준비하는데 바빠진다.
우주의 운행 - 계절의 순환- 도의 순화 - 장자의 철학을 공부하면 그러한 거시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나에게 다가오는 2월의 한 계절 희망의 약속이면 나의 도道는 꿈을 품고 자란다.
얼마나 기다리던 2월인가! 1월이 흘러가는 하루 하루 나의 도道는 감미롭다.
학창 시절, 거리에서 "도를 아시나요?" "도를 알려드립니다." 그렇게 철학관에서 나온 사람들이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질문들과 안내를 받았다. 그때, 나는 뜻도 모르고 도망쳤다. 어려서 도道가 두려웠던 모양이었다. 나에게 갇혀서 도道라면 모두 광신자들의 믿음으로 이해하였던 시절이었다. 이제 중년이 되니까 나의 <도道>에 걸맞은 깨달음을 스스로 찾아가는 지혜와 용기가 생겼다.
중년에 맞이하는 '도道'는 겨울의 질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이벤트로 -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
나는 겨울에 다시 태어난다. 인생은 이벤트로 순환하니 즐겁고, 우주 천지의 운행은 '도'로 선순환하나니....
나의 도道는 장자의 것처럼 크지도 않고 소박한 유희 기다림이 되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