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사피엔스 여행기 평창동언덕 버스 여행
저는 서울이 고향입니다. 서울을 사랑하지만.. 너무 오래 떠나 26년째 타향살이기에.. 서울의 관광 명소들이 더욱 그립습니다. 서울의 명품 언덕 마을, 평창동 언덕을 40분 만에 쾌속 왕복하는 가장 좋은 대중교통을 아시나요?
평창동의 꼬불꼬불한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걸어가지 못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버스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마을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는 8003번 교통편은 럭셔리 관광버스 저리 가라입니다.
관광버스의 노선도에 맞추어서 평창동 언덕에는
박물관, 전시회, 갤러리, 사찰, 교회부터 인왕산을 등반하는 코스까지 즐비합니다.
작년 가을 여행의 마지막 전날 시간이 없어서 버스 창가에서만 평창동 언덕을 즐겼습니다.
버스 여행 감상으로도 충분히 좋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원래는 북한 남파 무장공비단 김신조 일당 때문에 마을이 형성되었고,
무명 예술가들일 살던 평창동 언덕은... 70년대 이후 부자들, 연예인들의 거주지로 유명세를 얻게 됩니다.
산 만큼 높은 평창동 언덕에 태양이 떠오를 때 지난 늦가을에 다녀온 사진입니다.
이렇게 언덕 위의 집들이 인왕산과 함께 붉게 타오르는 광경은 너무도 설레였습니다.
사람들은 아니 저는 왜 그리 언덕의 집들이 좋은지요!
어린 시절 언덕의 집에 살았던 그때가 생각나서일까요!
평창동이 부자동네라고 하는데,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었어요.
언덕 위의 집은 불편한데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고 있는
특별한 이유들이 있을 겁니다. 평창동만의 매력이 무엇일까요?
높은 언덕에 살고 있으면 낮은 동네와 다른 수준 높은 고립감이 아니라 은둔의 쾌감이 있는 것인지?
그저 맑은 공기 이외에 평창동의 매력은 산 높이만큼 높은 지대에 사는 독보적인 소속감일 겁니다.
마치 비버리힐즈의 부자촌 같은 그런 기분일지도 모릅니다.
특히 교통편은 자가 자동차 아니면 정말로 계단으로 걸어 다니면서 운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평창동 언덕 꼭대기에 오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인왕산의 최고봉을 바라보면서 그곳에 같은 높이의 집에 살고 있다는 쾌감입니다.
그곳의 공기는 낮은 도시의 그것과 달랐고, 그곳의 햇살도 산 정상의 그것과 같았습니다.
심지어 산사찰이 평창동 언덕 꼭대기에 있었지요. 원래는 포장도로가 없었던 곳에 지어진
사찰이었다고 합니다. 평창동이 개발되면서 이렇게 부자들을 위한 사찰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교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높은 곳에 세워진 교회도 마을버스 아니면 걸어오기 힘든 위치에 있어요.
평창동 언덕 집들의 여행은 8003번 마을버스가 안내하였습니다. 그 언덕을 최고의 운전 기술로 오르내리는 8003번 마을버스 기사님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꼬불꼬불 그 언덕길이 너무도 안전하였습니다.
평창동의 집들도 서울을 상징하는 동네입니다. 부촌이라고 하지만 저에게는 그저 언덕 위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정감 있는 마을처럼 느껴졌습니다.
비록 자동차를 세워두기에도 좁은 골목길, 주차 기술이 필요한 그런 부촌들이지만,
서울이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북한산과 인왕산이 병풍 배경인 산동네가
바로 서울의 명물 동네 평창동입니다.
어려서 아차산 풍경의 언덕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왠지 언덕 마을들이 더욱 정겹습니다.
<나무위키 백과사전 인용>
역사[평창동]
이 지역의 이름은 시대에 따라 바뀌어 왔으나, 지금의 평창동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때 있던 선혜청이라는 곳의 평창 세금으로 온 곡식들을 저장한 창고에서 유래하여 명명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세도 정치를 한 반남 박씨(潘南 朴氏), 장동 김씨(壯洞 金氏) 등의 명문 양반가들이 종로구 일대에 모여 살던 곳이다. 이후에 가회동으로 거처를 옮기며 무명 예술인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평창동은 전체의 65%가 개발제한구역이다. 즉, 평창동 전체에서 35%의 구역에만 주민들이 살고 있다는 뜻이다. 본래는 북한산 국립공원 인근 지역이다 보니 개발제한구역의 비율이 더 높았으나, 1968년 김신조 일당이 이 인근 지역을 침투한 이후로 청와대의 뒤편에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어야 침투로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여 정부 차원에서 마을을 활성화시켰다.
평창동은 원래 성저십리 상평방에 속했던 지역이었으나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성부의 관할 지역이 축소되면서 1914년부터 1949년까지는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평창리였다. 그러다가 1949년에 서대문구에 편입되었고, 1950년에는 평창리에서 평창동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955~1970년 사이에는 동명이 잠시 구평동이었지만 1970년에 평창동으로 환원되었고, 1975년에 서대문구에서 종로구로 편입되었다.
동네가 한적해서 동네 개발 초창기인 1970년대 초에는 무명의 예술가들이 살았던 곳이다. 하지만 이후 정부 차원에서 평창동을 활성화시키면서 부자들의 거주지가 되었으며, 정재계 인물들을 비롯한 톱스타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이웅열 코오롱 회장, 홍정욱 올가니카 회장, 홍영철 고려제강 회장, 박상환 하나투어 회장, 노소영 아트센터나비미술관 관장,... 많은 연예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2004년 당시만 해도 평창동의 땅의 시세는 1평당 300만 원 수준으로 보통이었으나, 서울 도심권의 땅값이 오르며 평당 1천만 원대를 넘겼으며, 현재는 평당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지역이 되었다. 지어지는 단독주택들도 대부분 100평이 넘어가는 초호화 단독주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