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치 사카모토 일본의 세계적인 음악가 <나는 앞으로

류이치 사카모토 일본의 세계적인 음악가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그의 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사카모토 류이치 >을 읽었습니다.


투병생활 중에 쓴 생애 마지막 책이기에 그의 인생을 읽었습니다.



하나, 그는 진정한 예술가였습니다.


연주를 이토록 사랑한 음악가로서 그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연주가는 청중들 앞에서 공연을 할 때 진정한 연주가"라고 생각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창작 연주가 예술가로서 공연 연주를 즐기고 몰두하지 않고서 이렇게 무대를 탐미할 수 없을 겁니다.


예술가의 본질은 자신의 예술 작품 공연이 대중과 호흡할 때 생존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드뷔시를 사랑하였다고 고백한 드뷔시의 현대판 부활이 아닐까 생각한 그는 천재적인 음악 작곡가로서, 연주가의 삶을 최고의 절정으로 이끈 성공적인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드뷔시의 음악과 다른 21세기 현대 음악의 업적을 이루어낸 그의 음악은 인상주의, 표제음악, 영화음악, 재즈, 공연예술, 시험적인 온라인 공연 음악, 전시 음악 등 다양한 음악 장르를 개척하였습니다.




둘, 그는 세계시민이었습니다.


백남준 작가와 독일인 친구의 우정을 언급하는 그에게,


일본인들은 하나의 민족이 아니라는 믿음을 조목조목 사례를 드는 그의 생각에서


그에 대한 공경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본인들은 대륙에서 온 도래인이라는 그의 믿음을 두고


흔한 국뽕이 아니고 솔직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일본인이었지만, 국가 민족에 갇혀있는 것을 싫어 한 그는 세계 시민의 풍모를 가진 세계인의 예술가였습니다. 예술을 사랑하게 되면 세계 곳곳의 예술작품과 예술가들 교류는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편향된 예술관으로 인류 예술사의 유산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독일 이탈리아 유럽 등지와 미국 서방세계를 비롯하여, 중국, 한국, 일본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을 공연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일본 현지보다 세계 곳곳에서 연주 공연한 그의 세월이 더욱 길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음악 세계가 빛을 발하지 않은 곳이 세계 곳곳에 없으니 그는 진정한 세계 시민이었습니다.



그의 말년 우크라이나가 침략당하였을 때 우크라이나의 스무 살 바이올리니스트와 작품을 함께 공연하는 그의 예술 세상은 민족, 국가의 경계를 허물고 세계 인류 정신을 위한 작품들을 전파하였습니다.



특히 영화, 드라마 음악가로서 영상과의 화합과 조화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사카모토는 일본인 음악가로서 동방과 서방 모두를 아우르는 세계 영화계의 찬사를 받은 21세기 현대 음악계 최대의 갈채를 받은 세계적인 위인이었습니다.



셋, 그는 죽어가는 한 사람의 인간이었지만 죽을 때까지 혁신가로 살았습니다.


그의 책 제목처럼 직장암 등의 재발, 전이와 재수술 또 재수술로 그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죽는 날까지 공연, 시험적인 작품을 접목하여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종합예술, 음악이 현대적인 기술과 접목하여 어떻게 사후에도 좋은 공연과 시험적인 연주를 세상에 남길 수 있는지 끊임없이 연구와 실천을 보여주었던 혁신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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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제에서 그의 감동적인 음악을 알게 되었고, 영화 <남한산성>의 주제가에서 그의 음악적인 깊이에 다시 한번 감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시아인으로서 국경을 허물었던 그의 예술 음악은 그렇게 대중적인 친화력을 갖고 성공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연주를 정말 사랑하였던 피아니스트였고, 그의 연주는 정말 현대적인 선율의 시험적인 면마저도 낭만성을 품은 아름다운 미학의 극치였습니다.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그렇게 병상에서 나지막하게 외치면서 마지막 음악 예술 창작을 마무리하였던 사카모토!


그가 하늘로 귀환한지 3년이 흘러서 이제 그의 이름도 흘러간 한 시대가 되었지요.


하지만 그의 예술은 불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는 병마와 싸우면서 삶에 끝까지 애착을 갖은 만큼, 그의 예술 음악을 세상에 선보이기 위한 노력을


마지막 보름달이 오를 때까지 멈추지 않았던 겁니다. 그의 예술정신이 눈부신 이유들입니다.




그의 시대가 창조한 21세기의 음악, 영상 음악, 공연 음악은 21세기 음악의 사라지지 않는 전설의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그를 공경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죽는 날 때까지 음악, 예술 창작에 손을 놓지 않고 세계 곳곳에 그의 예술 사랑을 뿌린 겁니다. 그의 삶이 예술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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