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를 하면 정말 뭐가 달라질까?”
솔직히 말해서 저도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죠. 무언가를 베껴 쓴다고 해서 내 것이 된다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시간이 아까운 건 아닐까 차라리 그 시간에 새로운 걸 배우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사람 인생이란 참 재밌어서 우연히 경험한 작은 행동 하나가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때가 있더라고요. 제게는 그게 바로 "필사"였어요.
어느 날, 정말 무심코 마음에 남은 한 문장을 수첩에 적어봤어요.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뭔가 그 문장을 손으로 직접 써보니까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글자를 따라 쓰다 보니 그 문장이 품고 있는 의미를 자연스럽게 더 깊게 생각하게 됐고 어느새 제 생각까지 끄적이게 됐어요. 그렇게 한 줄, 한 줄 덧붙이다 보니 처음에는 단순한 필사였던 것이 결국 저만의 이야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아, 이게 바로 필사의 힘이구나.'라고 으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필사를 ‘그냥 따라 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뭔가 창의성과는 거리가 먼 정적인 활동처럼 느껴졌지만 직접 해보니까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어요. 단순히 글자를 베끼는 게 아니라 그 문장을 내 안으로 천천히 들여오는 과정이었거든요.
우리는 평소에 좋은 글귀를 보면 “아, 좋은 말이네” 하고 넘기기 쉽잖아요. 마음에 남기는 듯하지만 사실은 며칠만 지나도 까먹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런데 필사는 다릅니다.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그 의미를 곱씹게 되고 그 과정에서 문장이 내 언어가 돼요. 단순히 읽고 넘어갈 때는 스쳐 지나갔던 감정들이 필사를 통해서는 내 안에 깊게 새겨지더라고요.
정말 신기했던 건 필사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제 생각을 끼워 넣게 된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단순한 옮겨 적기였지만 어느새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 경험이 떠오르네’ 하면서 문장이 이어졌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완전히 제 글이 되어 있었어요. 이 경험을 하고 나니까 ‘필사는 무조건 따라 쓰는 거라서 창의성이 없다’는 생각은 정말 큰 오해였구나 싶었어요.
"글을 써보세요."
이 한마디가 때론 참 잔인하게 들리기도 해요. 글을 써본 적 없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죠. 머릿속에 생각은 많은데 막상 써보려 하면 손이 멈추고 '이걸 어떻게 써야 하지?' 막막하기만 하거든요.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그럴 때 ‘필사’를 시작하면 부담이 훨씬 줄어요. 완전히 백지상태에서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좋은 문장을 따라 쓰면서 자연스럽게 나만의 생각을 추가하는 방식이니까요. 특히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고를 때부터 이미 나와 닮은 언어를 찾는 과정이 시작돼요. 거기에 내 감정, 내 경험을 조금씩 얹다 보면 처음에는 남의 문장을 따라 했지만 끝에는 전혀 다른 내 이야기가 탄생하게 됩니다.
글을 써보면 알게 돼요. ‘아,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내 마음속에는 이런 감정이 있었구나’ 하고요. 필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내 안을 들여다보게 되고 글이 거울처럼 나를 비춰주거든요. 결국 글쓰기는 타인을 설득하거나 대단한 철학을 전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몸으로 깨닫게 됩니다.
요즘 세상은 뭐든 빨리빨리 돌아가잖아요. 그러다 보니 필사처럼 느린 활동은 뭔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고 시간 낭비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그런데 오히려 그런 시대일수록 필사의 가치는 커진다고 생각해요. 느리게 한 문장을 따라 적는 동안 우리는 멈춰서 생각할 수 있고, 순간순간을 제대로 살아낼 수 있으니까요.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도 없습니다. 글씨가 삐뚤빼뚤해도 괜찮아요. 틀린 철자를 고치느라 시간을 보내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그 과정을 통해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렇게 천천히, 조금씩 내 마음과 생각을 적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놀랄 만큼 단단해진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누군가가 필사를 하면 정말 변화가 생기냐고 묻는다면 저는 확신을 가지고 "네"라고 답할 거예요. 다만 그 변화는 외부에서 금방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조용하고 은은하게 내 안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요.
필사는 단순한 베끼기가 아니에요. 내 안에 스며드는 작은 시작이고 내 생각을 키워나가는 힘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에게는 가장 따뜻하고 쉬운 첫걸음이 되어줄 거예요.
조금은 느리고 서툴러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는 그 시간 속에서 진짜 나를 만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하루, 마음에 남는 한 문장을 필사해 보는 건 어떨까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아주 소중한 나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