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침, 양말 서랍을 열고 제일 앞에 있는 흰색 양말을 꺼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왜 나는 항상 흰색 양말만 신을까?" 단순한 습관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뒤엔 별다른 고민조차 없었던 '당연함'이 자리 잡고 있었더라고요.
그런데 그 '당연한 것'들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단단하게 묶고 있는지를 요즘 새삼 실감하고 있어요.
얼마 전 유튜브에서 최진석 교수님의 강연을 우연히 보게 됐습니다. 처음엔 그냥 배경음처럼 틀어놨던 영상이었는데 “호기심이 많으면 청춘이고 당연한 것만 믿으면 꼰대다”라는 말에서 갑자기 귀가 쫑긋해졌어요. 특히 나이와 상관없이 ‘청춘’ 일 수 있다는 말이 너무 좋더라고요. 우리가 흔히 ‘꼰대’라고 하면 나이 든 사람을 떠올리잖아요. 하지만 교수님은 꼰대와 청춘의 기준을 ‘나이’가 아니라 ‘태도’에서 찾더라고요.
사실 저도 스스로의 호기심을 눌러왔던 시기가 있어요. 직장에서는 정해진 업무를 충실히 해내는 게 중요하다고 믿었고 일의 효율과 실적이 늘 우선이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뭔가 허전하더라고요. 매일매일 같은 일, 같은 루틴, 같은 대화. 마치 ‘해야만 하는 일’만 하면서 시간을 때우는 기분이었달까요.
그런 저에게 교수님의 강연은 작은 충격이었어요. “우리는 너무 많은 일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 ‘당연함’이 고정관념일 수 있고 우리를 멈추게 만드는 벽일 수도 있다”는 말이 가슴에 확 박히더라고요. 그리고 그 말 뒤에 덧붙인 니체의 비유도 참 인상 깊었어요. 낙타는 ‘해야만 한다’는 자세, 사자는 ‘할 것이다’라는 능동적인 태도, 그리고 어린아이는 ‘즐긴다’는 순수한 호기심. 이 세 가지 단계를 듣고 있자니 나는 지금 어디쯤에 서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됐죠.
지금 나는 낙타 같았어요. “이건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 “어쩔 수 없어”, “다들 이렇게 살아”라는 말들에 둘러싸여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던 거죠. 사자가 되기엔 너무 조심스러웠고 어린아이처럼 즐기는 건 사치라고 생각했어요. 정말 그럴까요? '어린아이처럼 즐기는 삶'이란 게 정말 우리가 멀리해야 할 대상일까요?
강연 중에 교수님이 책에 대한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보통 책은 앞에서부터 시작하잖아요. 그런데 가운데를 1페이지로 삼고 중간부터 시작하는 책을 상상하셨다더라고요. 솔직히 처음엔 “그게 가능해?” 싶었지만 이내 ‘왜 안돼?’라는 질문으로 바뀌었어요. 그리고 그 순간 그동안 삶의 순서, 방식, 구조 모든 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만 있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됐던 부분은 ‘직장을 무조건 그만두라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었어요. 요즘은 자아실현이나 워라밸을 위해 회사를 뛰쳐나오는 게 유행처럼 여겨지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최 교수님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주셨어요. 회사를 다니면서도 ‘당연한 일만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참 현실적이면서도 희망적이더라고요.
사람들은 종종 ‘호기심’이나 ‘창의성’이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요. 어릴 땐 다들 자유롭게 질문하고 상상하잖아요.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직장을 다니면서, 사회의 기대에 맞춰 살다 보면 점점 그런 것들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괜히 나섰다가 괜히 욕만 먹지”, “그건 우리 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이 나이에 무슨 새로운 거야” 같은 생각들이 우리 안의 호기심을 하나둘씩 지워가는 거죠.
다시 생각해 보면 호기심은 꼭 거창할 필요가 없어요. 오늘 같은 날, 출근길에 늘 가던 길 말고 한 블록 옆 골목을 걸어보는 것도, 평소엔 안 보던 장르의 책을 한 번 펼쳐보는 것도, ‘꼭 이렇게 해야 하나?’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도 다 호기심의 시작이에요. 중요한 건 ‘그냥 그런 거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멈춘다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삶이 재밌어질 수 있어요. 변화가 꼭 거대한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저 상상하고 머릿속에서라도 다른 길을 떠올려 보는 그 행위 자체가 우리를 조금은 청춘으로 만들어주니까요.
오늘 하루,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일상 속 무언가에 작게라도 질문을 던져보는 건 어떨까요?
“꼭 이렇게 해야만 할까?”
그 작은 물음 하나가 생각보다 큰 변화를 가져다줄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