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속도는 내가 정합니다.

by 오동근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옆자리에 앉은 분의 휴대폰 화면이 살짝 보았는데 거기에는 “2026년엔 이렇게 살아라”라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더라고요. 그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이 영상 하나가 저 사람의 내년을 계획해 주는 걸까? 나도 비슷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누가 짜놓은 기준에 맞춰 정해진 속도로 질문 한 번 없이 그냥 따라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우리는 그런 기준에 맞춰 사는 게 훨씬 편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회사를 목표로 삼고, 돈을 많이 벌고, 나름 괜찮은 차를 사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이게 정답처럼 보이잖아요. 어릴 적부터 주입된 사회적 통념이기도 하고요.


저도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어요. 누가 뭐래도 괜찮은 회사에 다녔고 사람들이 "너 잘 됐다"라고 말해주는 삶이었죠. 겉으로는 안정되어 보이고 남 부럽지 않았지만 퇴근 후 불 꺼진 방에 앉아 문득 “나는 왜 이걸 하고 있지?”라는 질문이 떠나질 않더라고요.

사실 답은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단지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게 너무 어려웠던 것뿐이죠.


돌이켜보면 내 생각을 체계화하고 내 철학을 만드는 작업은 독사처럼 에너지를 모아 독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비슷했어요. 무섭고 번거롭고 심지어는 도전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든 일이죠.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흩어진 생각들을 하나씩 꺼내고 이게 정말 내 생각인지 남이 심어준 기준인지 구분해 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남이 만들어놓은 생각을 그냥 쓰는 편을 택했어요. 스마트폰만 켜면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지고 누구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죠. 그런 콘텐츠를 읽다 보면 마치 인생의 지침서라도 받은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져요. 더 생각할 필요도 없고 따라가기만 하면 될 것 같은 착각이 들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편안함’만을 좇다 보면 결국 우리는 내가 주인이 아닌 삶을 살게 됩니다. 남이 정해준 길 위에서, 남이 정해준 속도로, 남이 정해준 목표를 향해 뛰고 있죠. 그런데 그 목표에 도달했을 때 내가 원했던 게 이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돼요.


그래서 저는 조금씩 저만의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어요.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나는 어떤 순간에 진짜 살아있다고 느끼는가?

나는 왜 돈을 벌어야 하며 그 돈을 어디에 쓰고 싶은가?

나는 어떤 순간에 자부심을 느끼고 어떤 순간에 고개를 숙이는가?

이런 질문들은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며칠, 몇 주, 아니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어요. 저 역시 여전히 답을 찾는 중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에요. 내 삶의 방향타를 남에게 넘겨주지 않기 위해서 말이죠.


많은 사람들이 ‘나만의 철학을 가지려면 뭔가 대단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오해합니다. 마치 철학이란 건 인생의 선배들만 갖는 고결한 사치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근데 그렇지 않아요. 철학은 ‘지금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솔직한 생각이에요. 아침에 일어나 무얼 먼저 하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지를 아는 것도 철학의 시작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이미 인생의 실험실에서 수많은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다만 그걸 정리하고 내 방식대로 말로 풀어본 적이 없을 뿐이죠. 조용한 방에 앉아 내 삶을 곱씹는 시간이 필요해요.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아무도 보지 않아도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 그 시간이 쌓일수록 남이 정한 기준은 점점 흐릿해지고 내 삶의 윤곽이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이제는 남들이 “그게 맞다”라고 말해도 내가 아니라면 웃으며 거절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 제가 사는 방식이 누군가에겐 비효율적이고 정답이 아니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저한텐 이게 맞거든요. 이 삶이 기쁘고, 이 삶이 나다워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께 조심스럽게 권해보고 싶어요.

하루 10분이라도 조용한 방에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왜 이걸 하고 있지?”,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 걸까?”

답이 금방 나오지 않아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묻는 그 자체예요.

남이 짜준 길은 편합니다. 거기엔 이정표도, 길 안내도 다 있어요.

하지만 그 길 끝에는 진짜 내가 없을 수도 있어요.


힘들어도, 불확실해도, 스스로 만든 길을 한번 걸어보세요.

그 길을 걸을수록 나다운 삶이 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남들이 뭐라고 하든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중심이 생깁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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