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고정관념에서 탈출하자

by 오동근

어느 날, 오후 3시쯤이었어요. 아침에 계획했던 일들을 하나도 못 했다는 자책이 밀려오고 있더라고요. 독서도 못 했고, 운동도 미뤘고, 해야 할 글쓰기는 손도 못 댔죠. “이제 늦었어 오늘은 망했어…” 하고 스스로를 탓하고 있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이 정말 ‘늦은’ 시간일까?


우리는 흔히 ‘새벽’이나 ‘월요일’, ‘새해 첫날’ 같은 특정한 시점에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려고 해요. 아침 6시에 일어나면 상쾌하게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고 1월 1일에는 다이어트든 공부든 뭐든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죠. 그런데 그 모든 게 정말 시간이 달라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믿고 있어서일까요?


생각해 보면 아침 6시는 ‘상쾌한 시간’이고 오후 3시는 ‘이미 늦은 시간’이라는 인식 자체가 우리가 만든 기준이에요. 한국이 새벽 6시일 때 미국은 오후이고 유럽은 한밤중일 수도 있죠. 그런데도 우리는 "아침에 시작하는 게 좋다"는 말에 익숙하잖아요. 사실 시간은 그냥 숫자일 뿐이에요. 진짜 중요한 건 그 시간에 내가 어떤 마음을 갖느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예요. 그 의미에 따라 같은 오후 3시가 완전히 다르게 느껴질 수 있어요.

저도 한때는 “이제 늦었어”라는 생각에 저녁 7시 이후엔 뭘 시작하는 걸 꺼렸어요. 그런데 어느 날 오후 4시에 운동을 시작하고 밤 10시에 책을 펴서 한 챕터를 읽고 나니까 이상하게도 늦게 시작했는데도 하루가 만족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시간은 절대적인 게 아니라 내가 주는 의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또 하나의 착각을 하고 살아요. 바로 완벽주의. 운동도 빠지지 않고 해야 하고 다이어트도 한 번 시작하면 밀가루는 아예 끊어야 하며 공부도 하루도 안 빠지고 해야 의미가 있다고 믿죠. 하루도 안 빠지고 일기를 써보자고 결심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딱 하루를 빼먹었는데, 그날 밤 갑자기 “이제 의미 없어졌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그다음 날부터는 아예 손도 안 대게 되었고요.


근데 생각해 보면 그 하루를 빠뜨렸다고 해서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날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왜 그 하루 때문에 다 포기해야 하죠? 중요한 건 ‘계속하고 있는 것’이고, ‘중간에 쉬더라도 다시 돌아오는 것’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오해에 빠져요. 완벽해야 의미 있다고요.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꾸준함이에요. 그리고 꾸준함이란 쉬었다가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유연함을 포함하고 있어야 오래갈 수 있는 거죠. 하루쯤 빠져도 괜찮고 며칠을 쉬었다고 해도 다시 시작하면 돼요.


어린 왕자의 별은 너무 작아서 의자만 조금 옮기면 해가 지는 장면을 여러 번 볼 수 있잖아요. 예전엔 그냥 동화적인 상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장면이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는 상징처럼 느껴져요. 우리는 시간을 고정된 틀로만 볼 필요가 없어요. 아침이 아니어도 책을 읽을 수 있고 밤이 늦었어도 하루의 루틴을 새롭게 만들 수 있어요. 우리는 늘 “이제 늦었다”라고 말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내지만 그 순간이 바로 가장 이른 순간일 수도 있다는 걸 자주 잊고 살죠.


“지금 오후 3시네. 좋은 시간이다. 상쾌하게 뭔가 하나 시작해 보자.”

예전 같았으면 “이 애매한 시간에 뭘 시작해?”라며 넘겼을 테지만 어느 날 카페에서 우연히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집중이 잘 됐던 경험 이후로는 “나 오후에도 잘할 수 있네?”라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결국 모든 건 마음에서 출발하는 거였어요. 시간이 나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배웠죠.


사람들은 시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요. “지금은 애매한 시간이라 못 해”, “내일부터 제대로 시작할 거야”, “월요일부터는 꼭 할 거야”… 이런 말들은 사실상 “지금은 시작하지 않겠다”는 부드러운 합리화일 때가 많아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자꾸 미루다 보면 결국 안 하게 되더라고요.


시간은 정해진 게 아니기 때문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요. 아침 6시처럼 오후 3시도, 밤 9시도 충분히 상쾌한 시작점이 될 수 있어요.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루 빠졌다고 포기할 이유도 없고요. 꾸준함이라는 건 멈췄다 다시 이어가는 것까지 포함된 거니까요.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이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어요. 더 이상 “이제 늦었어”라는 말로 나를 묶지 마세요. 우리는 시간의 노예가 아니니까요. 지금이 가장 빠른 시간이고 지금이 가장 좋은 시간이에요. 그리고 그걸 믿는 순간 어떤 시간도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어요.


지금부터라도 “괜찮아, 이 시간에도 난 시작할 수 있어”라고 말해보세요. 그 말 한마디가 생각보다 강력하게 하루의 흐름을 바꿔줄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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