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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되지 않는 존재의 가치

by 오동근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제가 했던 선택들에 대해 친구들이 자주 그렇게 묻곤 했습니다. 왜 아침마다 혼잣말처럼 긍정적인 문장을 중얼거리는지 왜 한밤중에도 노트를 펼쳐가며 제 꿈을 반복해서 써 내려가는지 왜 누구도 관심 없는 글을 매일같이 SNS에 올리는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제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바로 그 이상함 속에 제 진짜 모습이 숨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해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믿었습니다. 친구들처럼 안정된 직장을 다니고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길을 선택해야 안심이 되었고 남들과 다르면 불안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삶이 저를 점점 숨막히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기대 속에서 연기하듯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정해진 답안을 따라가는 기분이었고 아무리 바쁘게 살아도 제 안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떠올랐고 그 질문에 진지하게 답을 해보려는 순간 오히려 이해받지 못하는 저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해받는 삶이 옳고 이해받지 못하는 삶은 실패한 것이라고 여깁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남들과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하면 쉽게 눈총을 받기 일쑤이지만 제 경험은 정반대였습니다. 그 눈총이 오히려 제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긍정 확언을 100일 넘게 실천하고 있습니다. “나는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 길을 갑니다” 같은 짧은 문장을 눈 뜨자마자 소리 내어 말합니다. 매일 아침 제게 ‘괜찮다’고 말하는 그 반복이 결국 제 뇌와 마음을 움직였고 남들의 기대가 아닌 ‘제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점점 더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을 말로 설명하면 많은 분들이 고개를 갸웃합니다. “좋은 말이긴 하지만 실제로 효과가 있겠어?”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지만 저는 그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변하기 전에도 그걸 이해하지 못했으니까요.” 중요하고 깊이 있는 변화는 언제나 이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찾아오는 법입니다. 이해받지 못하는 순간이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지금도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이 길이 과연 맞는지 여전히 누군가는 저를 비웃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떠오를 때가 있지만 이제는 그런 불안과 흔들림조차도 제가 선택한 삶의 일부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저를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제가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집니다. 만약 제가 남들과 같았다면 아마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독창적인 글을 쓰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는 삶은 언제나 외로운 길입니다. 하지만 외로운 길이 반드시 틀린 길은 아닙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도 이해받지 못해 외롭거나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그 이상함이 여러분의 진짜 가치가 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배신하지 않는 것입니다. 타인의 이해보다 더 소중한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대하느냐입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제 안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제가 발견한 진정한 자유이며 바로 그것이 이해되지 않는 존재로서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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