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저녁, 집에 돌아와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오늘도 정말 힘들었다"라고 말해본 적이 있으시죠? 그 피로감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떨까요? 혹시 그 피로감이 마치 무거운 돌덩이처럼 가슴을 짓누르는 느낌인가요 아니면 운동 후 느끼는 개운한 피로감처럼 어딘가 뿌듯함이 섞여 있나요?
최근 직장 동료와의 대화 중 깨달음을 준 문구가 있었는데요. 그 동료는 평소 업무량이 많기로 유명한 사람인데 "요즘 일이 정말 많은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힘들지 않아요. 매일 작은 목표를 세우고 그걸 달성할 때마다 느끼는 성취감이 있거든요. 그런 작은 성취감들이 쌓이다 보니 큰 프로젝트도 자연스럽게 완성되더라고요."
이 말을 듣는 순간『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남편의 눈꺼풀 위로 피로가 덮개를 이루듯 쌓여 있었다. 금방이라도 까무러질 것 같다." 같은 피로감이지만 얼마나 다른 느낌인지요. 하나는 삶을 짓누르는 무게이고 다른 하나는 성장의 증거입니다.
사실 우리는 피로감에 대해 많이 오해하고 있습니다. 피로감을 무조건 나쁜 것 피해야 할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피로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억지로 끌려다니며 하기 싫은 일을 할 때 느끼는 수동적 피로감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선택한 일에서 오는 능동적 피로감 즉 '자발적 피로감'입니다.
수동적 피로감은 마치 짐을 떠맡듯 느끼는 것입니다. 시간은 더디게 흘러가고 몸과 마음이 모두 무겁습니다. 이런 피로감은 회복되기도 어렵고 쌓일수록 우리를 더욱 지치게 만듭니다. 반면 자발적 피로감은 운동 후의 피로감과 비슷합니다.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상쾌하고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이 함께 따라옵니다.
동료의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그가 스스로 자신의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고 이는 저는 '나'라는 장기짝을 내가 둔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장기에서 남이 내 말을 움직이면 그저 끌려다닐 뿐이지만 내가 직접 말을 두면 전략적 사고와 주도권을 갖게 됩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업무라도 누군가에게 떠밀려서 하는 일과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해 나가는 일은 완전히 다른 경험을 가져다줍니다. 전자는 하루하루가 버거운 반면 후자는 하루하루가 쌓여가는 성장의 계단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변화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시키는 일 힘든 일을 하면서 수동적 피로감을 느끼겠지만 점진적으로 자발적 피로감을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조정해 나가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 동료가 말한 "작은 성취감을 계속 쌓다 보면"이라는 표현이 참 인상적입니다. 성취감은 단순히 기분 좋은 감정이 아니라 다음 도전에 대한 동력이 됩니다. 작은 성공이 쌓이면 자신감이 생기고 자신감이 생기면 더 큰 도전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선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면 피로감조차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아, 오늘도 열심히 했구나"라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를 일기를 통해 실천해보고 있습니다. 하루 일과를 정리하면서 "오늘 내가 주도적으로 한 일은 무엇인가?", "어떤 작은 성취감을 느꼈는가?"를 적어보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쓸 것이 별로 없었지만 의식적으로 찾다 보니 점점 더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 "녹슬어 사라지지 않고 달아서 사라지는 삶"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녹슨다는 것은 서서히 소모되어 사라지는 것이고 달아서 사라진다는 것은 활활 타오르며 사라지는 것입니다. 같은 소멸이지만 그 과정이 완전히 다릅니다.
자발적 피로감을 추구한다는 것은 결국 달아서 사라지는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무작정 열심히 살라는 뜻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방향성입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그 길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확신이 있을 때 비로소 피로감조차 의미 있는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피로감을 단순히 피해야 할 것으로만 생각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피로감 자체가 아니라 그 피로감의 성격입니다. 억지로 끌려다니는 피로감은 우리를 소모시키지만 스스로 선택한 피로감은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앞서 언급한 동료처럼 "이 일을 하고 있는 게 가장 즐겁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저는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둘째, 그것을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셋째, 작은 성취감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축적해 나가야 합니다.
결국 자발적 피로감이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피로감을 느끼고 있습니까?" 만약 그것이 억지로 끌려다니는 피로감이라면 조금씩이라도 자발적 피로감으로 바꿔나갈 방법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 작은 변화가 모여 언젠가는 당신도 "이 일을 하고 있는 게 가장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인생은 결국 선택의 연속입니다. 녹슬어 사라질 것인가 달아서 사라질 것인가. 그 선택권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