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내가 가진 직책, 사회에서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이름들이 정말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내가 원하던 모습일까?” 회사에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고 직장에서 주어진 책임을 다하며 사회에서 인정받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 모든 걸 내려놓으면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사르트르가 말한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문장을 들었을 때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 말장난 같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말이 왜 그토록 많은 철학자와 작가들에게 중요한 통찰이었는지 서서히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나 자신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사실은 사회가 정해준 본질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졸업 후 저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기업에 입사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 누가 봐도 성공적인 커리어였고 주변에서도 다들 부러워했죠. “진짜 잘됐다”, “이제 걱정 없겠다.” 그 말들 사이사이에서 저도 모르게 안심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을 때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이 공허했습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이게 맞을까?” 그 질문 앞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단지 힐링이 필요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 속에 나오는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니 그들이 겪는 혼란과 갈등이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고 그들의 선택이 나에게도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은 먼저 존재하고, 그다음 스스로를 만들어간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태어날 때 어떤 이름도 없이 태어납니다. 그저 ‘존재’ 일뿐이죠. 그런데 자라면서 부모, 학교, 사회가 하나씩 이름을 붙여줍니다. 학생, 딸, 친구, 대학생, 신입사원, 대리, 과장… 그 수많은 이름이 어느 순간부터는 나를 규정짓기 시작합니다. 마치 그 이름에서 벗어나는 순간 나는 실패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죠.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너무 일찍 하나의 이름에 스스로를 가둡니다. “나는 이걸 해야만 해.” “나는 이 직업을 절대 놓을 수 없어.” 그렇게 스스로를 한 방향으로 밀어 넣고 다른 가능성은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는 거죠.
당신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당신이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에 따라 계속 달라질 수 있다고 실존주의는 말합니다. 이 말이 제겐 해방감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전부가 아닐 수 있어. 나는 또 다른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사람이야. 그 생각만으로도 다시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한 우물만 파야 성공한다.” 저도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여러 우물을 깊게 팔 수도 있다는 것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저는 경험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어디에 얼마 큼의 열정을 쏟느냐지 하나만 해야 한다는 법은 없더라고요.
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본질을 부여받습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나를 설명하는 전부라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건 일부일 뿐이에요. 지금의 내가 어떤 본질을 갖고 있든 그건 잠깐 붙여진 이름일 뿐이며 언제든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도 지금의 자신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전부일까?’라는 의문이 드는 분들도 있을 거고요. 그럴 때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
당신은 지금 어떤 본질에 갇혀 있든 그게 당신의 전부는 아닙니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수많은 가능성이 당신 안에 있습니다. 그 존재들이 지금도 조용히 눈을 뜨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리고 그들을 깨우는 열쇠는 어쩌면 아주 작은 호기심 아주 작은 질문에서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이름으로 살아가고 싶은가?
이 질문 앞에서 멈춰 서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존재’로서의 첫걸음을 내딛는 게 아닐까요?
오늘부터 한번 그 질문을 곱씹어 보며 살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책이라는 작은 양탄자를 타고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나’를 만나러 가보세요.
그 여정은 생각보다 훨씬 재밌고 꽤 근사한 선물처럼 다가올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