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를 읽는 어른이 된다는 것

by 오동근

잠들기 전에 침대에 누워 무심코 집어든 책 한 권이 제 하루의 온도를 바꿔놨습니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이라는 제목이 익숙하지 않아 처음엔 그저 넘겨보다 말겠지 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몇 장 읽지 않았는데 눈앞에 그려지는 장면들, 잊고 있던 감정들, 그리고 쏟아지는 생각들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어릴 땐 동화가 마냥 재미있기만 했습니다. 공주가 나오고, 왕자도 등장하고, 동물들이 말을 하며 교훈을 전해주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그런 이야기들이 더 깊게 다가옵니다. 현실은 점점 무겁고 복잡해지는데 동화 속 세계는 오히려 더 명확하고 솔직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저는 요즘 가끔씩 동화를 읽으며 스스로를 다잡곤 합니다. 마치 어릴 적 친구를 다시 만난 듯한 기분으로요.


동화를 다시 읽기 시작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직장에서 쌓인 피로가 머릿속까지 올라와 책 한 페이지도 집중이 안 되던 어느 날 친구가 추천해 준 책이 ‘사자왕 형제의 모험’이었습니다. 한강 작가가 추천했다는 말에 일단 신뢰가 생겼고 기대 없이 몇 장 넘기다 보니 금세 이야기에 빠져들었습니다. 모험과 판타지가 섞인 서사 속에서 '삶과 죽음', '두려움과 용기' 같은 주제들이 섬세하게 풀려 있었고 그것들이 너무나 담담하게 제 마음에 스며들더군요.


그렇게 동화를 다시 꺼내 읽으면서 저는 한 가지를 확실히 느꼈습니다. 흔히 동화는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정말 큰 오해라는 사실입니다. 어른이 되어 읽는 동화는 단순한 재미를 넘어 삶의 본질에 대해 되묻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복잡한 이론이나 철학 책에서 찾지 못했던 순수한 메시지를 전해주기도 하죠.


특히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다시 읽었을 때는 말 그대로 충격이었습니다. 중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서 발췌된 짧은 글로만 접했을 땐 동물들이 주인공인 우화 정도로만 이해했었죠.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읽어보니 이건 단순한 농장 이야기가 아니더라고요. 각 등장인물은 정치적인 구조 속에서 특정 집단이나 인간 군상을 상징하고 권력이 어떻게 사람을 변하게 하는지 너무나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특히 읽고 쓰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동물들이 겪는 차별과 소외는 요즘 사회에서 정보를 제대로 접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묘하게 겹쳐져 씁쓸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 속에 살면서도 정작 ‘생각하는 시간’은 잃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짧지만 울림 있는 동화 한 편이 큰 전환점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이솝 우화처럼 짧은 이야기 하나로 인생의 원리를 전해주는 경우도 있고,*사자왕 형제의 모험처럼 긴 여정을 통해 깊은 깨달음을 전해주는 경우도 있죠.


저는 개인적으로 동화를 읽으며 내 안의 감정들이 조금씩 살아나는 걸 느꼈습니다. 잊고 살았던 두려움, 반짝이던 용기, 그리고 아주 오래전 품었던 꿈같은 것들 말이죠. 아이처럼 순수하게 세상을 바라보던 시절의 시선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랄까요. 이젠 책장에서 철학서나 자기 계발서를 꺼내기 전에 한 번쯤 동화책을 들춰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짧은 글 속에서 진짜 나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혹시 최근에 책이 잘 안 읽히고,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이 쉽게 지치는 분이 계시다면 꼭 한 권의 동화를 읽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렵고 무거운 책이 아닌 쉬우면서도 가볍지 않은 책. 우리가 어릴 적 즐겨 읽던 동화 속엔 여전히 그 시절의 순수함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동화는 생각보다 훨씬 진지합니다. 그리고 어른에게도 꼭 필요한 장르입니다. 괜히 “우화는 아이의 마음에 남아 어른의 삶을 이끈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닙니다. 가끔은 그 무엇보다 동화가 가장 깊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늘 하루, 마음이 조금 복잡하셨다면 책장 속 동화책을 다시 꺼내보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어릴 적 나와 지금의 내가 그 속에서 다시 만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이렇게 말해줄 겁니다.

“너 잘 살고 있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