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치 있는 기술 : 기다림

by 오동근

우리는 모두 다양한 방식으로 기다림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험 결과를 기다리고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고 어떤 목표의 달성을 기다립니다. 어쩌면 인생이란 끊임없는 기다림의 연속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기다림은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것으로만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느린 속도는 곧 비효율로 여겨지는 분위기 때문입니다. ‘빨리빨리’가 미덕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 기다림은 무능력처럼 비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런 것일까요?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장 어려운 선택을 감내하는 용기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원래 참을성이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빨리 끝내야 속이 시원했고 결과가 보이지 않으면 쉽게 지치고 포기하곤 했습니다. 책을 읽을 때도 더 빠르게 읽고 더 많은 내용을 빨리 흡수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책을 왜 빨리 읽어야 하나? 책은 본래 천천히 읽는 것이 아닐까?’ 그 이후부터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문장을 음미하며 천천히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독서는 제게 기다림을 훈련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글 한 줄을 이해하려고 잠시 멈추다 보면 어느새 급한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문장이 끝날 때까지 한 권을 완독 할 때까지 시간을 들이다 보니 자연스레 기다리는 연습이 되었고 그 시간이 쌓이면서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기다림이란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닙니다. 포기하고 싶은 유혹과 충동을 누르며 미래의 가능성을 지키는 일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만둘 줄 아는 것도 용기다"라는 말을 자주 하십니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저는 너무 이른 포기가 더 안타깝다고 느낀 적이 많습니다. 어떤 목표든 이루어지기 직전이 가장 견디기 힘든 시기입니다. 이는 독서를 통해 몸소 배운 사실이기도 합니다. 한 권의 책도 끝까지 읽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끝까지 읽은 책만이 주는 울림은 곧 삶의 전환점이 되어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 하나로 원하는 정보를 즉시 얻고 상품도 하루 만에 배송받으며 음식도 10분이면 도착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점점 더 느린 것을 참지 못하게 되었고 기다리는 시간이 손해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기다리다가 기회를 놓친다"거나 "더 빨리 결정했어야 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과연 그 기회를 놓친 이유가 정말 기다림 때문이었을까요? 어쩌면 기다림을 무의미하게 여긴 조급함이 문제였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기다림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아무 방향 없이 머무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일이라면 기다림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가집니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단단하게 다져가는 시간으로 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의 고수는 소란스럽지 않게 자신의 시간을 쌓아갑니다. 느리게 움직이지만 결국 멀리 갑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시간이 지루하지 않으려면 그 시간을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제게는 그것이 독서였습니다. 누군가에겐 음악이 될 수도 있고 산책이나 글쓰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기다림은 멈춤이 아니라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지혜를 배우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통해 우리는 삶의 진짜 맛을 알게 됩니다.


요즘 저는 무언가 잘 풀리지 않을 때면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지금이 아마 제일 힘든 순간일 거야." 그 말 한마디가 포기하려던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워줍니다. 하루만 더, 일주일만 더. 그렇게 기다림을 붙든 날들이 결국 의미 있는 결과로 돌아왔던 순간들을 저는 여러 차례 경험하였습니다. 기다림은 결코 공짜가 아닙니다. 그 시간만큼의 대가를 치른 사람에게 삶은 반드시 보답해 줍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도 지금 기다리고 있는 무언가가 있으신가요? 그리고 마음속 어딘가에서 '그만둘까?'라는 목소리가 들려오시나요? 그렇다면 오늘 하루만 아니 일주일만 더 기다려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결과가 아닐지라도 그 기다림 안에서 분명히 스스로를 더 잘 알게 되는 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빠름이 일상이 된 시대일수록 우리는 ‘기다릴 수 있는 능력’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성장을 만들어주는 가장 인간적인 힘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동화를 읽는 어른이 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