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무언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가 참 어럽네요.
한참 글을 쓰다 노트북을 덮고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며 든 생각인데 그 순간은 참 멍하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하고 싶은 걸 찾아야 해’라는 말을 들었는데 막상 지금 내 앞에 하고 싶은 일을 떠올려보라고 하니까 머릿속이 백지장이 된 것처럼 텅 비어 있었어요. 그냥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 기억이 별로 없었습니다.
얼마 전 읽은 책 『창백한 언덕 풍경』에서도 저는 비슷한 깨달음을 마주했습니다. 작고 얇은 일본 문학 작품이었지만 그 안에는 시대의 아픔과 개인의 혼란 그리고 국가와 교육에 대한 묵직한 질문이 담겨 있었습니다.
“오가타상 시대의 일본의 아이들은 끔찍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치명적인 거짓말들을 주입식으로 배웠습니다. 가장 지독한 것은 그들이 보지 못하도록 질문하지 못하도록 배웠다는 겁니다.”
일본의 과거 교육제도에 대한 비판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꼭 우리 사회, 내 모습에 대한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릴 때부터 받아온 교육이 떠올랐고 학교에서 배운 많은 내용 중 ‘왜 그런지를 묻는 수업’은 손에 꼽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정말 오랫동안 질문을 하지 않는 습관 속에 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왜?”라고 묻기보다는 “어떻게 외우면 되지?”라고 생각했고 "내가 이걸 꼭 해야 하나?"보다는 "다들 하니까 나도 해야지"라는 식의 사고에 익숙해졌죠.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새 나는 내가 누구인지도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흘러가게 됩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첫 회사를 들어갔을 때도 그랬어요. 분명히 좋은 직장이고 안정된 생활이었지만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는 평생 이렇게만 살아도 괜찮을까?” 그때도 저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지만 뭐가 잘못됐는지는 몰랐어요. 내가 지금 뭘 원하는지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 묻지 않았기에 그저 모른 채 따라온 겁니다.
질문을 하지 못하는 습관이야말로, 우리 안에 있는 가능성을 묶어두는 가장 큰 덫이라 것을 책을 통해 깨달았습니다.『창백한 언덕 풍경』의 작가는 전쟁을 겪은 일본 사회가 어떻게 무감각하게 국가의 결정에 따르고 또 교육을 통해 비판 없이 사태를 받아들이도록 길들여졌는지를 보여주면서 ‘생각하지 않는 삶’의 위험성을 고발합니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한 나라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개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야기라는 데서 소름이 돋았어요.
책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이 선택을 했을까?’,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이런 질문들이 생기면 그때부터 비로소 내 삶에 ‘나’라는 주어가 들어가기 시작해요. 남들이 짜준 인생이 아니라 내가 직접 설계하는 삶이 시작되는 거죠.
그래서 오늘 저는 다시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어떤 질문을 하셨나요? 혹시 너무 익숙하다는 이유로 너무 당연하다는 이유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멈춘 채 살아가고 있진 않나요? 그 질문 하나만 던져도 삶의 방향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내가 왜 이걸 못 하지?’, ‘나는 정말 이 일밖에 못 하나?’,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 이러한 질문들이 결국 나를 앞으로 이끄는 나침반이 될 수 있어요.
핸드폰을 내려놓고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책을 읽어보세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질문들이 당신 안에서 피어날 거예요. 그리고 그 질문이 당신 안에 잠든 가능성을 하나씩 깨워줄 겁니다. 질문은 불안을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성장의 씨앗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대답보다 더 자주 질문을 연습해야 할지도 몰라요.